TK 지지층 잡는 동시에 윤핵관 힘 빼기 정황…또다시 ‘내편 챙기기’ 논란은 정치적 부담
대통령실은 ‘핀셋형 쇄신 인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하지만 최측근으로 불리는 김은혜 전 국민의힘 의원을 홍보수석비서관으로 기용하는 등 ‘위기인데 내편 챙기기 할 때냐’라는 목소리가 인사 직후 불거진 것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야당의 혹평이 따라 붙게 된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고 끝 집토끼 끌어안기
윤 대통령은 한 번 쓴 사람은 쉽게 내치지 않는다는 인사 스타일을 갖고 있다. 지난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참모가 잘못하면 호되게 질타를 하지만 바로 내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실력이 모자란다는 판단이 서도 바로 자리를 뺏는 방식이 아니라 조금 일이 적은 자리로 보내 명예를 충분히 지켜주는 식이었다”고 떠올렸다.
윤 대통령은 8월 초 휴가 기간 중 대통령실에 대한 강한 인적 개편 압력을 받았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여겨지는 보수 언론조차 연일 인적 쇄신에 대한 요구 강도를 높여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자 취임 4개월 만에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 전원을 교체했던 사례가 있는데 왜 개편을 주저하느냐”는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인적 개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휴가 복귀 후 첫 출근이었던 8월 8일 아침 출근길 기자들과의 문답에서도 명쾌하게 인적 개편에 대한 긍정 사인을 내지 않았다. “국민의 관점에서 잘 살피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했을 뿐이었다. 8월 16일 출근길 문답에서도 “어떤 정치적인 득실을 따져서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아끼는 자신의 ‘인사 철학’을 고수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 직언이 잇따라 올라왔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지금 상황을 심각한 정치적 위기라고 판단, 비대위 체제로 간 판국에 대통령실이 아무런 인적 쇄신 없이 그냥 간다는 것은 국민 앞에 명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윤 대통령은 핀셋형 개편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김대기 비서실장 체제의 큰 틀을 유지하되 정책 기능을 강화하고 홍보를 보강하는 선이었다.
‘해야 된다’ ‘안 된다’ 논란이 벌어지는 속에 단행된 이번 개편엔 윤 대통령의 다중포석이 담겨 있다는 평가다. 우선, 웬만해서는 참모들을 쉽게 내치지 않는 윤 대통령 인사 철학을 다시 보여줌으로써 대통령실은 물론, 공직 사회 전반에 대통령의 통 큰 이미지를 보여주고 사기를 높여주는 인사관리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국정의 최고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정책기획수석을 신설, 대구·경북(TK) 출신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이 자리에 앉힌 것은 핵심 지지기반을 우선적으로 잡아두는 방법으로 정치적 위기 때 든든한 방파제를 삼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최근 지지율 급락 상황에서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이자 윤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버팀목 역할을 해줬던 TK마저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여론에 가담하는 행렬이 크게 늘어났다. 결국 윤 대통령으로서는 어떤 위기에서도 집토끼를 확실히 잡아놓는 전략이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신설 핵심 보직에 이관섭 수석을 보임함으로써 대통령실은 물론, 당과 정부 요직에 TK 출신이 자리 잡게 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에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대구 수성갑), 정부 내 최고 요직으로 불리는 정부 곳간지기 자리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대구 달성)이 버티고 있다. 국민의힘 한 TK 의원은 이렇게 해석했다.
“보수정당 TK 출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서울이 고향이라 콘크리트 지지층이 없다.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어도 지지율이 출렁인다. 이관섭 수석 임명은 TK라는 핵심 지지층 강화작업으로 보이고, 8월 26일에는 대구를 방문해 현장 민심을 윤 대통령이 직접 확인했다. 이제 핵심 진지를 확실히 다잡았다고 판단된 만큼 과감한 민생 현장 행보를 통해 적극적인 지지율 상승 견인에 나설 것이다.”
#김은혜 이어 40년지기 석동현 '콕'
이번 대통령실 인사에서 “또 내편만 챙겼다”는 지적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새로 들어온 김은혜 홍보수석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김 수석은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그가 지난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면서 먼저 출마를 선언한 정치 거물 유승민 전 의원과 겨룰 결심을 한 것도 윤 대통령이 뒷배였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직후인 4월 22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바보처럼 또 졌다. 권력의 뒤끝이 대단하다. 공정도, 상식도 아닌 경선이었다”고 털어놨다. 유 전 의원은 또 “윤석열 당선자와의 대결에서 졌다”고도 언급,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에서 44.56%를 얻어 52.67%를 얻은 김은혜 수석에게 패배했다. 유 전 의원은 일반 여론에서 김 수석을 비교적 크게 앞섰지만 이른바 ‘윤심’을 내세우며 조직표를 대거 흡수한 김 수석에게 밀렸다.
경기지사 경선을 전후해 당시 당내에서는 윤 대통령이 김 수석을 챙기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문제지만, 한 명의 우군이라도 더 필요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경선 때 맞붙었던 유 전 의원을 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은 이번 대통령실 개편을 두고 ‘내편 인사’로 규정하며 강하게 질타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8월 21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김 수석을 겨냥 “가짜 경기맘을 홍보수석으로 내세웠다. 사적 인연을 쳐내라니니까 더 측근을 임명했다”고 몰아붙였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자문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김무성 전 의원이, 사무처장에는 석동현 변호사가 내정됐다는 얘기가 여권 내부발로 전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또 뒷말이 나왔다. 호평보다는 비판이 더 많을 가능성이 큰 인선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당내에서는 “친한 사람, 아는 사람에다 검사 출신만 선호한다는 윤 대통령 인사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는데 이번 인선은 또다시 아쉬움을 낳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석동현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 ‘40년 지기’로 알려졌다.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정치에 입문했으며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 대외협력특보를 지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마디 정치’를 통해 우군이 됐다는 평가가 있어 민주평통으로 간다면 보은 성격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전 의원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이준석 전 대표가 윤 대통령 흔들기를 하고 있다며 지난해 11월 15일 싸잡아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는 등 전·현직 국회의원 모임인 마포 포럼을 이끌면서 윤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8월 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과 관련해 “야당이 인사를 비판하는 지점이 있지 않나. 검찰 출신을 너무 많이 쓴다거나, 아는 사람 위주로 쓴다는 것도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존재감 높아진 김대기 비서실장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 개편이 나오면서 권력의 시계추가 다소 변화하는 양상도 나타난다. 윤핵관의 입김이 다소 약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최근 대통령실 내부에 대규모 감찰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런 연장선상에서 여러 명의 대통령실 직원들이 자리를 뜨고 있다는 전언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해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윤핵관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비서관실, 교육비서관실, 부속실 등의 일부 행정관들이 대통령실을 아예 떠나거나 다른 기관으로 옮겼다. 윤핵관 빼내기 작업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핵관의 입김이 약해진 자리는 인적개편 대상에서 벗어나 유임된 김대기 비서실장이 그립을 세게 잡는 방식으로 대통령실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 관료 출신인 김 실장은 공무원 출신답게 먼저 나서는 스타일은 아닌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대통령실에 여러 번 근무해본 경험을 살려 소리 없이 힘을 키우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 대통령실 관계자들 얘기다. 김 실장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근무를 포함해 5차례나 대통령실에 근무했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자신이 공무원 출신인 만큼 직업 공무원들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 대통령실 직원 인선에서도 어공(어쩌다 공무원)보다는 늘공(직업공무원)을 선호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수출이 급감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등 우리 경제가 비상상황인 만큼 경제 전문가인 김 실장과 최상목 경제수석 등 경제 라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자연스럽게 김 실장이 대통령실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핀셋 인사’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세를 보이는 것도 김 실장 중심의 대통령실에 힘이 쏠리는 분위기와 연결된다. 경질 위기에서 벗어나 유임된 이후 김 실장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언론과의 대면을 늘리고 있으며 국회에 나가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답변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김 실장은 그동안 ‘비서는 말이 없다’며 조용한 보좌를 강조했지만, 최근엔 공개석상에 나서는 빈도를 늘리고 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대통령실에 파견된 당직자, 보좌관들이 있는데 지금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권력의 시계추가 이동하면서 소리 없이 인적 개편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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