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말론자들은 ‘신성한 산’이 있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부가라치가 지구의 대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성지로 믿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사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만큼 ‘2012년 종말론’은 일반인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종말론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면 2012년 종말론은 마야인의 예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즉, 먼 옛날 마야인이 제작한 달력이 이상하게 2012년 12월 21일로 끝이 났는데 이 점이 바로 지구 종말을 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는 허튼 소리”라고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맞아떨어진 적이 없는 과거의 수많은 예언들처럼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코웃음치고 있다. 과연 지구 멸망의 날은 올까. 진실이 무엇이든 12월 21일이 오기 전까지 이런 갑론을박은 올 한해 계속될 전망이다.
9세기 중반 지구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고대 마야인들은 수학과 천문학에 능통했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한 천문학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불리는 마야력을 제작했다.
▲ 마야달력 |
하지만 지구 종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 2012년 12월 21일은 파멸이 아닌 변화와 재생, 즉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마야 문명 전문가이자 호주 라트로브 대학 교수인 스벤 그로네메이어 박사는 “2012년 12월 21일은 한 주기의 마지막 날인 동시에 또 다른 주기의 시작이다. 마야인들은 서구 사람들의 눈에 특별하고 신비로운 지식을 갖고 있는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이런 기대감과 경외심이 아마 마야 달력에 투영되어 종말론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과거 Y2K(밀레니엄 버그) 때처럼 아마 이번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종말론 예언에 매료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항상 최악을 상정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섣부른 추측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미항공우주국(NASA) 역시 지구 종말론이 터무니없는 헛소문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2012년 12월 21일은 결코 지구 최후의 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나사를 대상으로 “위협적인 행성 하나가 지구로 다가오고 있다. 나사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며 음모론을 주장하는 일부 블로거들과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한 해명이기도 하다.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위협적인 행성이란 ‘행성 X’ 또는 ‘니비루(Nibiru)’라고 이름 붙여진 행성이다. 이들은 이 행성이 2012년 지구와 충돌하고, 이로 인해 지구에 대재앙이 벌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나사 측은 “절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모두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문이다. 실제 그런 행성이 존재해서 지구에 접근하고 있다면 천문학자들이 이미 10년 전부터 이 행성의 움직임을 추적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아마 육안으로도 관찰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행성들이 은하계의 중심과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는 현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일어난다 하더라도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관광청은 1년간 마야 문명을 주제로 한 500여 개의 행사를 벌일 예정이며, 마야 유적지 인근의 마을들 역시 손님 맞을 채비를 서두르면서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가령 타파츌라는 지난해 높이 2.5m의 ‘지구 종말 시계’를 세워 놓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는가 하면, 캐리비안 해변가의 마을에서는 50년 후에 개봉하는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가 벌어질 예정이다. 또한 유카탄 주에는 올여름까지 ‘마야 문명 박물관’이 완공될 예정이며, 마을 곳곳마다 새로운 호텔들이 속속 건설될 예정이다.
이밖에도 2012년을 맞아 유난히 시끌벅적해진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서 종말론자가 대거 몰려오고 있는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마을인 부가라치가 바로 그곳이다. 인구 200명가량에 불과한 이곳이 대체 지구 종말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이곳이 종말론자의 목적지가 된 이유는 바로 외계인을 믿는 일부 ‘UFO 신봉자’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부가라치는 2012년 지구 대재앙이 발생할 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곳이며, 이는 바로 부가라치산 아래 동굴 속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 덕분이다.
다시 말해 지구 멸망의 날이 다가오면 수천 년 동안 동굴 안에 숨어있던 외계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일제히 지구를 탈출하는데 이때 지구인들을 함께 구출해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부가라치산을 둘러싼 신비로운 현상과 미스터리한 이야기들, 그리고 10년 전 실제 이곳에서 UFO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부터다. 가령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이 산속에 비밀스런 벌집 형태의 동굴들이 다수 존재한다거나 먼 옛날 화산 폭발로 인해 산꼭대기와 아래가 뒤집혔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실제 지질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산 꼭대기층이 아래층보다 수백만 년 더 오래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이 산은 오래 전부터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신성한 산’이라고 불렸다.
이밖에도 산 정상 주변에서 우주선처럼 생긴 구름이 종종 목격된다거나 강력하게 방출되는 전자파 때문에 어떤 비행기도 산 위를 정상적으로 비행한 적이 없다는 소문도 있다.
과거 유명인사들이 비밀리에 이 산을 찾았다는 점도 흥미롭긴 마찬가지다.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는 산 아래 인근 마을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으며,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산 정상에 착륙한 적이 있었다. 또한 히틀러와 모사드(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는 과거 이 산을 찾아 비밀리에 구멍을 팠던 것으로 알려져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까닭에서일까. 이곳은 오래 전부터 공상과학 영화와 소설의 단골 소재로도 유명했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저자인 쥘 베른은 부가라치산에서 영감을 얻어 SF 소설인 <지구 속 여행>을 집필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구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스네펠스산이 바로 부가라치산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에도 부가라치산은 등장한다. 부가라치의 이웃 마을인 렌르샤토에 템플 기사단의 보물과 성배가 숨겨져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다빈치 코드>의 성공으로 인해 이 마을이 한때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밀려드는 외지인들 때문에 당황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 “종말론자 때문에 마을이 엉망이 되고 있다”면서 불만이 가득하다. 과거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이 너무 시끄러워졌다는 것이다.
22년 전 영국에서 이주해온 발레리 오스틴은 “더 이상 조용하게 산책을 할 수 없게 됐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이곳이 이제는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로 가득해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번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손을 엑스자 모양으로 교차한 상태로 성모 마리아상을 들고 줄을 지어서 부가라치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도 말했다.
또 다른 마을 주민 역시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라며 “하루는 흰 옷을 입거나 또는 알몸인 채로 산을 오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봤다”며 불쾌해했다.
이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거주지를 사들이는 통에 부동산값이 지나치게 오르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산자락에 벙커를 짓기 위해서 무작위로 땅을 사들이고 있는가 하면, 매주 열리는 종말론 관련 세미나 때문에 호텔은 늘 만원 사례다.
마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지그리트 베르나르는 “처음에는 손님들의 72%가 등산객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68%가 UFO 신봉자다”라고 말했다. 또한 “겨울에는 보통 문을 닫지만 2년 전부터는 갑자기 전 세계에서 예약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12월 초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는 이미 예약이 꽉 찼다”고 말했다.
점차 ‘그날’이 다가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한 장-삐에르 들로르 부가라치 시장은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홍수처럼 몰려오고 있다. 내일 당장 1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경우 마을 주민들은 이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오는 12월 21일까지 마을의 경비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힌 그는 필요하다면 정부에 군대를 요청해서 외지인들의 마을 진입을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특히 일부 종말론자가 마을에 모여들어 집단 자살을 하진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만일 2012년 12월 21일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오레곤주립대학의 사회학자인 리처드 미첼은 “아마 이들은 곧바로 다음 멸망의 날을 찾아 두리번거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이를 나타내듯 실제 몇몇 지구 종말론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가령 2014년 스위스의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가 빅뱅 직후의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만든 강입자충돌기(LHC)가 전출력에 도달해 지구에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와 관련, 캠브리지대학의 니콜라스 보일 교수는 자신의 저서 <2014: 다음에 벌어질 세계 재앙에서 살아남는 법>에서 LHC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또한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웨일의 예측을 토대로 2029년과 2045년이 위기의 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커즈웨일은 2029년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 수준이 동일해지는 해로, 그리고 2045년은 극적인 세계 변화가 일어나는 해로 묘사한 바 있다.
2060년은 아이삭 뉴턴이 예언한 지구 종말의 해다. 50년간 성경 해독에 매달렸던 뉴턴은 2060년 지구가 전염병, 화재, 재앙 등으로 멸망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혜성’ 떴다하면 집단 자살
▲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
▲ 1843년 4월 23일, 윌리엄 밀러
뉴잉글랜드의 농부였던 윌리엄 밀러는 몇 년에 걸쳐 성경을 꼼꼼히 연구한 결과 ‘1843년 3월 21일~1844년 3월 21일 사이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곧 그의 예언을 믿는 수천 명의 신도들이 생겼으며, 이들을 가리켜 ‘밀러파 운동가(Millerites)’라고 불렀다. 얼마 후 밀러는 신도들에게 1843년 4월 23일이 지구 종말의 날이라고 발표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처분하는 등 최후의 날을 맞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4월 23일이 됐는데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훗날 이들 중 일부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를 창설했다.
▲ 1910년, 핼리 혜성
당시만 해도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던 혜성이 1910년 지구에 근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구 종말론이 대두됐다. 이는 1881년 일부 과학자들이 핼리 혜성의 꼬리에 청산가리의 원료인 ‘시안’이라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지구 전체가 독가스에 질식되어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해독제와 방독면을 사재기했는가 하면, 일부는 집단 자살까지 했다.
하지만 그해 핼리 혜성이 다가와도 지구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986년 혜성이 다시 나타났을 당시 ‘시안’과 같은 독가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근거 없는 공포였음이 드러났다.
▲ 1997년, ‘천국의 문’
1997년 핼리 혜성보다 훨씬 밝은 혜성인 ‘핼리 밥’ 혜성이 나타나자 또 다시 괴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즉 혜성 꼬리를 따라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는 것이었다.
이는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루는 라디오 토크쇼 ‘코스트 투 코스트 AM’이 퍼뜨린 것으로 당시 천문학자들이 근거 없다며 부인했는데도 불구하고 UFO 추종 단체인 ‘천국의 문’ 회원들로 하여금 지구 종말이 다가왔다고 믿게 만들었다. 결국 이들 가운데 39명은 1997년 3월 26일,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집단 자살하고 말았다.
▲ 1999년 8월, 노스트라다무스
은유가 많아서 저마다 해석이 분분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지난 400년간 많은 호기심과 의문을 불러 일으켜왔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999의 해, 일곱 번째 달에 /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4행시였다. 하지만 우려했던 바와 달리 1999년은 지구 종말의 해는 아니었다.
▲ 2000년 1월 1일, Y2K
90년대 말, 새천년의 시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컴퓨터의 오류로 인해 세계 종말이 올 것이라는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컴퓨터들이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인식하지 못해 일대 혼란이 벌어져 온 세상이 마비되고, 그로 인해 대규모 정전이나 핵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미미한 결함만 발생했을 뿐 우려했던 일들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 2011년, 해롤드 캠핑
기독교 라디오 방송사인 ‘패밀리 라디오’의 창립자인 해롤드 캠핑은 “2011년 5월 21일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날이 되면 전 세계에서 대지진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 5월 21일이 조용히 지나가자 뒤늦게 “이날은 영혼을 심판하는 날이었다. 정신적인 지진이 일어나는 날”이라고 말을 바꾸었으며 “진정한 종말은 10월 21일에 찾아올 것”이라고 다시 예언했다. 이에 많은 추종자들이 직장을 그만 두거나 자살을 했지만 역시 10월 21일에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