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국가나 도시 혹은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시설이나 건축물을 뜻한다. 전쟁 등을 거치며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랜드마크라고 불릴 만한 건물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각 지역마다 랜드마크 반열에 올라서는 건물이 하나둘씩 생겼다. 이들 건물은 대부분 당시 비약적으로 사세를 키우던 기업들과 연관이 깊다. 이 때문에 해당 랜드마크의 역사는 기업 또는 산업의 역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새롭게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물은 시장과 산업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일요신문이 각 지역 랜드마크와 기업이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다.[일요신문] 서울역은 경부선, 경의선, 인천국제공항철도의 기점으로 대한민국 철도의 심장이다. 서울역 앞에는 서울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버스 정류장인 서울역버스환승센터가 있고, 그 뒤쪽에는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서울스퀘어는 대지면적 1만 500㎡(약 3176평) 위에 23층 높이로 세워진 정사각형 건물로 주변 경관을 압도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서울스퀘어는 과거 대우그룹 본사 사옥으로 그룹의 위상과 성공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한때 서울 최대 규모의 오피스 빌딩이었다. 당시 남다른 위상 때문인지 여전히 서울스퀘어가 아닌 대우빌딩으로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우그룹의 화려했던 역사를 함께한 이 건물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전과는 다른 운명에 놓인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후,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걷고 있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67년 원단업체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대우실업은 명동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시작했지만 곧 김 전 회장의 영업 능력을 바탕으로 사세를 키웠다. 이에 따라 사무실 규모를 확장할 필요를 느낀 대우실업은 을지로 동영빌딩, 명동 성보빌딩, 을지로 동화빌딩 등으로 사무실을 옮겨 다녔다. 그러던 1973년 대우실업은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대형 빌딩 삼주빌딩(현 메트로타워)을 인수해 사옥으로 활용했다.
김우중 전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매머드급 사옥 건설을 추진했다. 마침 눈에 띈 곳이 삼주빌딩 바로 옆에 위치한 교통센터 건설 현장이었다.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역 인근에 교통센터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사업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교통센터 건설 현장에 1970년 대형 화재가 발생한 후에는 사실상 공사 작업도 중단된 상태였다. 이에 대우그룹은 1975년 LG그룹에 삼주빌딩을 매각하고, 교통센터 부지를 약 48억 원에 사들였다.
당시 국회에서는 야당인 신민당을 중심으로 정부의 교통센터 부지 매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교통센터 건설을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우그룹에 헐값 매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동화 당시 철도청장은 국회에 출석해 “교통센터 완공을 위해서는 아직도 38억 원의 비용이 소모되는데 재원이 여의치 못해 매각했다”며 “연말까지 대금을 일시불한다는 조건에 따라 보다 저렴하게 매각했다”고 해명했다.
대우그룹은 교통센터 부지 건물 공사를 재개해 1976년 지하 2층 지상 23층 규모의 매머드급 건물로 완성시켰다. 대우그룹은 건물 이름을 ‘대우센터빌딩’으로 명명하고, 본사로 사용했다. 김우중 전 회장의 집무실도 대우센터빌딩 23층이었다. 고층 빌딩이 많지 않던 시절 대우센터빌딩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서울역 앞이라는 최적의 위치 덕에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건물이기도 했다. 당시 대우센터빌딩을 바라보면 돈을 내야 한다는 사기꾼들이 있을 정도로 주변 경관을 압도했다.
대우그룹은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오르면서 승승장구했지만 IMF 외환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해체되고 만다. 해체 후 대우센터빌딩 소유주는 채권단 관리를 받던 대우건설이었다. 대우건설은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에 인수됐고, 대우센터빌딩도 자연스럽게 금호그룹 소유로 넘어갔다.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은 대우센터빌딩에 관심이 높았는지 옛 김우중 전 회장의 집무실을 개조해 본인의 집무실로 사용했다.
대우그룹 해체 후에도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서울스퀘어에 본사를 두는 등 대우그룹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2008년 서울시 종로구로 본사를 이전했고, 대우인터내셔널 역시 2015년 인천 송도로 본사를 옮기면서 현재는 대우그룹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스퀘어가 드라마를 통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4년 방영된 ‘미생’ 덕분이다. 드라마 속 배경은 종합상사인 원인터내셔널으로 촬영지가 서울스퀘어였다. 자연스럽게 같은 위치에 있었고 사명도 유사한 대우인터내셔널을 연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스퀘어는 여전히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건물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한 후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다. 금호그룹은 결국 1년 후인 2007년 모건스탠리에 9600억 원을 받고 대우센터빌딩을 매각했다. 모건스탠리는 대우센터빌딩 개보수작업을 거쳐 2009년 현재의 서울스퀘어로 재개관했다. 하지만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공실 문제가 심각해졌고, 수익 창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모건스탠리는 2010년 8000억 원에 서울스퀘어를 싱가포르계 투자회사 알파인베스트먼트에 재매각했다. 모건스탠리는 서울스퀘어로 인해 수천억 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알파인베스트먼트 역시 한동안 서울스퀘어 공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2014년 이후 외국계 기업 유치를 통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했다. 수익성 개선에 힘입은 알파인베스트먼트는 2018년 NH투자증권에 서울스퀘어를 매각했다. 매각가는 9800억 원으로 1800억 원의 이익을 본 셈이다. 이후 NH투자증권은 서울스퀘어를 계열사인 NH프라임리츠에 넘겼다.
NH투자증권은 펀드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서울스퀘어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해당 펀드 운용 기간은 2026년 2월 28일까지다. NH프라임리츠는 펀드 운용 기간 만료 후 서울스퀘어를 매각할 것이라고 수차례 밝혀왔다. 이에 따르면 서울스퀘어는 2026년 3월 재매각될 전망이다.
매각가는 서울스퀘어 공실률과 부동산 경기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서울시가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인근 지역 사무실 공급 과잉 우려가 나온다.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 사업의 주요 내용은 중구 봉래동2가에 지하5층~지상40층 규모 건물 다섯 개 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은 “북부역세권이 주변 역사·문화와 어우러진 지역의 랜드마크로 탈바꿈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전체로 살펴봐도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등 예정된 공급이 넘쳐난다. 공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공실률도 늘어날 수 있고, 이는 NH프라임리츠의 서울스퀘어 매각 작업에 좋지 않은 신호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2023년 3분기까지 공급이 감소하다가 2023년 4분기부터 기타권역 중심으로 오피스 공급이 재개될 전망”이라며 “2024년 말부터 공실은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