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연기 20년, DJ 10년, 송해 닮은 다재다능 희극인 궤적…2008년 무한도전 예언짤 뒤늦게 화제
왜 첫 녹화 장소가 대구 달서구일까.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자동차로 12km 남짓, 20여 분 이동하면 34년 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온 송해가 잠든 송해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KBS 제작진의 깊은 고민과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고인이 된 송해가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후임 MC 자리를 두고 하마평이 이어졌다. 가장 많이 언급된 이는 송해의 고향 후배 이상벽으로 고인이 생전에 마음으로 정해 둔 후임이라고 종종 말했었다. 그런가 하면 고인은 ‘뽀빠이’ 이상용도 후계자로 생각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수근도 있다. 2010년 방송된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강호동, 이경규, 유재석 가운데 누가 차기 MC감이냐는 질문에 송해 선생은 “없다”면서 “이수근이 제일 적합하다”고 말했었다. 이외에도 이택림, 임백천 등도 유력 후보군으로 언급됐었다. 당시엔 그 누구도 김신영을 후보군으로 분류하지 않았었다.
기막힌 예언이 하나 있어 뒤늦게 화제가 됐다. 2008년 7월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무한걸스’ 특집편에서 호응을 유도하는 김신영의 모습에 제작진이 ‘분위기 딱’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자막을 넣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김태호 PD가 최근 이를 두고 “무한도전에 없는 게 없다. 저도 예언짤을 보면 무섭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사실 자막은 자막일 뿐 의미는 없다. 오히려 그가 ‘전국노래자랑’ MC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기에 그런 자막이 가능했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해 보인다. 그만큼 김신영의 발탁은 예상치 못한 깜짝 소식이었다.
8월 29일 김상미 책임 프로듀서는 “무엇보다 대중들과 함께하는 무대 경험이 풍부해 새로운 전국노래자랑 MC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송해 선생님의 후임이라 어깨가 무겁겠지만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김신영의 MC 발탁을 발표했다.
김신영은 2003년 SBS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벌써 데뷔 20년 차 베테랑 방송인이다. 그가 송해 후임으로 ‘전국노래자랑’ MC가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손꼽힌다. 우선 김신영이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개그우먼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보여준 ‘생활 연기’다. 당시 김신영은 워낙 순발력이 좋고 연기력도 뛰어난 개그우먼이었지만 진정한 매력은 생생한 생활 연기였다. 단순히 웃기는 데 그치지 않는, 평소의 꼼꼼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표현하는 연기였던 터라 시청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상 목포와 청도 등 친척 집을 오가며 살았던 경험이 생활 연기의 기반이 됐고, 어린 시절 할머니와 오랜 기간 함께 지낸 기억은 성대모사 등으로 특화돼 생활 연기의 색채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런 부분은 전국 각지를 누비며 다양한 국민들을 만나 호흡해야 하는 ‘전국노래자랑’ MC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다.
김신영은 2010년 이후 활동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는데 특히 2012년 10월부터 MBC FM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를 맡아 벌써 10년째 장수 DJ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 큰 점수를 받았다.
김상미 책임프로듀서는 30일 “송해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후임이 희극인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송해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을 처음 맡았을 때 ‘가로수를 누비며’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고 계셨는데, 김신영도 10년 동안 생방송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청취자들을 만나 순발력과 성실성에 믿음이 갔다”고 섭외 계기를 들려줬다.
여기 더해 김신영은 만능 엔터테이너다. ‘둘째이모 김다비’라는 부캐로 트롯가수 활동을 한 것은 물론이고 5인조 걸그룹 셀럽파이브 활동도 했다. 최근에는 ‘헤어질 결심’으로 영화배우로도 활약했다. 희극인들이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과거에도 자주 있었지만 김신영은 희극인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정극 배우로 진지하게 도전했다. 게다가 그를 캐스팅한 것은 세계적인 거장 박찬욱이다. 송해 역시 1970년대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주연작도 몇 편 된다. 그 역시 앨범도 여러 개 갖고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김상미 책임프로듀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김신영은 데뷔 20년 차의 베테랑 희극인으로 TV, 라디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영화계에서도 인정하는 천재 방송인”이라고 극찬하며 섭외 이유를 설명했다.
8월 30일 오전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김신영은 “정말로 경주 김씨 가문의 영광이다. 가족 친지들에게도 문자가 오고 많은 분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어제 많이 실감했다. 정말 많은 국민이 ‘전국노래자랑’을 사랑해준다고 생각했다”며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뛰겠다. 앞으로 출연하실 분들에게 인생을 배우겠다. 버터처럼 스며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선 세상을 떠난 할머니 관련 이야기가 가장 울림이 있었다. 할머니 기준에선 ‘가족오락관’과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야 인기 연예인인데, 당시의 김신영에게는 큰 연관이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까닭에 셀럽파이브로 ‘전국노래자랑’ 연말 특집 무대에 섰을 때 할머니가 정말로 좋아했다고 한다. 김신영은 “처음 제의받았을 때 놀랐다. 지금 할머니가 하늘에 계시겠지만 정말 뿌듯해하실 것 같다”면서 “그 자리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신영은 왜 자신이 ‘전국노래자랑’ MC로 발탁됐다고 생각할까. 이 질문에 그는 “전국 어디 다 둬도 있을 법한 사람이다. 문턱이 낮고 어디든 있을 사람. 그래서 편하게 말을 할 수 있고 장난을 칠 수 있다”면서 “희극인 20년 차라 많은 행사를 다녔다. 철저하게 푸근하고 편안한 동네 동생, 손녀, 이모가 될 수 있어 선정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을 방송인들의 꿈의 무대라고 표현하며 “전국 팔도를 가기 때문에 수면욕을 버리겠다. 내 인생 모든 걸 ‘전국노래자랑’에 힘 싣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김신영이 MC로 나서는 첫 녹화가 진행되는 ‘전국노래자랑’은 10월 16일 방송된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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