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작품 함께한 윤종빈 감독과 손잡고 재기 도전…‘보스턴 1947’ 등 다른 출연작 공개에 영향 미칠 듯
좀처럼 흔들리지 않던 하정우의 인기가 위기를 맞은 것은 마약류로 지정된 수면유도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다. 관련 논란과 후유증에 시달리던 지난 2년 동안 출연작이 단 한 편도 공개되지 않은 탓에 하정우는 데뷔 이래 가장 오랜 기간의 공백기까지 보냈다. 1년에 두 편 이상의 작품을 소화하면서 ‘다작’의 상징으로 꼽혔던 배우였지만 프로포폴 논란으로 데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 하정우가 대중 앞에 다시 나선다. 추석 연휴 첫날인 9일 넷플릭스가 공개하는 6부작 드라마 ‘수리남’이 그의 복귀작이다. 2020년 2월 개봉한 주연 영화 ‘클로젯’ 이후 정확히 2년 7개월 만에 돌아오는 하정우는 데뷔 때부터 함께 해왔던 오랜 영화 파트너 윤종빈 감독과 손을 잡았다. 함께할 때마다 흥행 성과를 냈던 든든한 아군과 함께 배우로서 과거 인기를 되찾기 위한 시험대에 오른다.
#승승장구하던 하정우, 이미지 타격 극복 관건
왕성하게 영화 출연을 이어가던 2020년 8월 하정우는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평소 ‘걷기 전도사’로 통할 만큼 열정적이고 건강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그가 향정신성 의약품을 불법으로 투약했다는 의혹에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검찰은 하정우가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19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불법으로 투약했다고 밝혔다. 이런 의혹에 하정우는 즉각 반발했다. 특수분장으로 생긴 얼굴 흉터 등 트러블을 치료하는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수면 마취를 했다는 해명이었다. 하지만 이후 검찰 수사에서 하정우는 차명으로 해당 병원을 예약하고, 9차례에 걸쳐 진료 기록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가 추가로 확인돼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하정우는 2021년 9월 1심에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이 구형한 형량(벌금 1000만 원)보다 더 높은 금액이 선고된 것을 두고 그만큼 하정우의 불법 투약 혐의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일었다. 하정우는 항소를 포기해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수면유도제로 쓰이는 프로포폴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돼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앞서 이를 불법 투약한 혐의가 드러난 연예인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을 일으키고 그 여파로 연예계 활동을 중단한 사례도 빈번했다. 하정우 역시 이미지 추락을 막지 못했다. 건강미 넘치는 이미지로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스타 배우가 재판에서 고개를 숙인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한 하정우의 모습 또한 낯설었다. 평소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사랑받았던 그이지만 재판에 참석했을 때는 긴장한 표정도 역력했다. 당시 하정우는 법원에서 마주친 취재진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 너무 죄송하다”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조심하며 건강히 살겠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1년여 동안 하정우는 모습을 감췄다. 촬영은 마친 영화의 공개가 미뤄지고, 모델을 맡았던 CF도 일제히 중단됐다.
#하정우가 직접 소재 아이디어 제안
하정우가 다시 대중 곁으로 돌아오는 작품 ‘수리남’은 남미 대륙 북부에 위치한 국가 수리남을 배경으로 실제 현지에서 마약왕이 된 한국인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하정우가 공교롭게도 마약왕 이야기를 통해 복귀하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사실 ‘수리남’이 제작될 수 있던 데는 하정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남미의 국가에 한국인 마약 대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접한 하정우가 ‘영화 동지’인 윤종빈 감독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처음엔 영화로 기획됐지만 코로나19 확산과 남미 로케에 따른 제작비 상승 과정에서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로 선회해, 6부작 드라마로 탄생하게 됐다. 총 제작비가 350억 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다.
‘수리남’은 한인 마약왕으로 인해 누명을 쓴 민간 사업가가 국정원 비밀작전에 협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정우는 큰돈을 벌기 위해 남미에 온 민간 사업가 강인구 역할을 맡았고, 실존인물인 조봉행에서 모티프를 얻은 마약 대부 전요환 역할은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다. 하정우와 황정민이 같은 작품에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정우는 복귀작인 ‘수리남’에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다. 데뷔 후 가장 오랜 기간인 2년의 공백을 메울 작품인 데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 탄생한 이야기이기에 애착도 강하다. 하정우는 ‘수리남’ 제작진을 통해 “전체적인 스토리와 전개가 흥미롭다”며 “캐릭터들도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작품 공개 직전에는 취재진과 만나 작품을 소개하고 지난 논란에 대한 소회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하정우‧윤종빈 합작, 이번에도 성공할까
이제 관심은 하정우가 ‘수리남’을 통해 만족스러운 복귀 성적표를 거둘지 여부로 쏠린다. 업계의 기대는 긍정적이다.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의 파트너십에 거는 신뢰가 그만큼 두텁기 때문이다. 중앙대 선후배 사이인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은 2005년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까지 4편을 함께했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하정우가 ‘수리남’ 한 편의 작품으로 하락한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작품의 완성도가 탁월하고, 배우로서도 진가를 발휘한다면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비교적 쉽게 되찾을 수 있지만 반대의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내세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카터’ ‘모범가족’ 등 작품들이 줄줄이 혹평을 받은 상황을 고려하면 ‘수리남’으로서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하정우에게 ‘수리남’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복귀작이란 상징성 외에도 이후 공개를 앞둔 또 다른 작품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가늠해보는 시험대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하정우는 프로포폴 논란에 휘말리기 전 시대극인 영화 ‘보스턴 1947’의 촬영을 마쳤고, 2021년 벌금형을 받은 직후에도 영화 ‘야행’과 ‘피랍’ 촬영을 진행했다. 저마다 편당 제작비가 100억 원에서 200억 원대에 달하는 대작이다.
논란 이전이라면 하정우의 출연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한국 영화 기대작으로 꼽혔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복귀작인 ‘수리남’의 결과가 향후 하정우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개봉을 앞둔 영화 제작진들 역시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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