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미치겠어요.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은 성치 않아서 매일 피곤했고, 상처도 잘 낫지 않고, 병도 잘 낫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내 조카도 왕따였다.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그 아이는 추웠던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왕따당하는 아이들을 보면 유형이 있어요. 아주 내성적이거나, 자신감이 없거나, 작거나, 머리가 나쁘거나, 잘난 척을 하거나, 아니면 나처럼 살이 쪘거나…. 그러면 아이들은 걔를 표적으로 삼아 괴롭히는 것으로 편을 만들며 놀아요.”
왜 우리는 그때 조카가 왕따였다는 것을 몰랐을까? 조카가 말한다. “그때 엄마에게 이야기했지요. 애들이 뚱뚱하다고 놀린다고. 그래서 엄마가 학교에 오고 난리가 났는데,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이모! 엄마가 왔다 가니까 선생님이 아이들을 야단치는데, 그게 내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 거예요. 선생님이 그 문제를 설 건드려만 놓은 거지요. 나는 아예 선생님께 고자질만 하는 못난 애까지 된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내 나이 열두 살에! 학교 가기 무지 싫었지만 꾹 참고 다니면서 배운 게 있는데, 왕따하는 아이들도 실은 참 약한 아이들이란 거예요. 그렇게 편 가르기에 에너지를 보태주지 않으면 자기 자리가 없는, 약고 보잘 것 없는 아이였던 거지요.”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도 가지 못한다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패거리를 만들며 ‘패’에 들지 못한 아이들을 왕따하며 노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은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 한다. 그래서 남과 다른 아이를 공격하며 노는 것이다.
아이들은 돌을 던지며 노는 것이지만, 개구리는 죽는 법이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남은 나와 다를 수 있고, 우리와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와 다른 남,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해주는 것이 남과 다른 ‘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을.
인간은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나’의 방식으로 생존할 권리가 있다. 내가 작거나 뚱뚱하거나, 머리가 나쁘거나, 내성적이거나, 장애가 있거나, 가난하거나, 할 수 있다. 그런 조건들이 폭력의 이유가 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왕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설 건드려서는 안 되고, 끝까지 추적해서, 친구를 상대로 때리고 모욕하고 약탈하고 하는 행위는 안 된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