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치르던 중 발목 부상으로 수술…“단점 보완해 나갈 시간 벌었다” 마음 다잡아
데이비슨 대학의 에이스에서 NBA 진출을 위해 드래프트 도전에 나섰던 이현중. 드래프트를 앞두고 미국 전역을 돌며 NBA 팀들의 워크아웃을 치르던 중 공교롭게 데이비슨 대학의 인근에 있는 샬럿 호네츠 팀의 워크아웃 도중 왼쪽 발등 뼈와 인대를 다치고 말았다. 워크아웃을 거듭할수록 NBA 팀들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고, 이현중도 조금씩 자신감을 쌓던 터라 당시의 부상은 너무 뼈아팠고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현중의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술 후 재활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부상이었고, 오히려 이 기회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만남 이후 약 5개월 만에 마주한 이현중은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기자 앞에 나타났다.
지난 4월 말 이현중이 NBA 드래프트에 공식 참가를 발표하기 전까지 그는 데이비슨 대학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농구부를 이끈 밥 맥킬롭 감독의 허락을 받고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 맥킬롭 감독과 수차례 면담을 가졌던 것이다. 물론 감독 허락 없이 드래프트에 나갈 순 있었다. 그러나 이현중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맥킬롭 감독의 응원을 뒤에 엎고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님의 허락 대신 통보를 하고 학교를 떠나는 선수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의 허락을 받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서너 차례 미팅을 가졌고, 감독님을 설득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 면담 자리에서 비로소 감독님이 프로에 진출하는 걸 허락해주셨다. 아마 감독님 입장에서는 나의 부족한 부분이 더 눈에 띄었을 것이다. 단점을 보완하지 않고선 NBA에 진출한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에 만류하셨다고 이해했다.”
이현중은 마지막 면담을 마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밥 맥킬롭 감독도 눈물을 보이며 애제자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감독의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3년 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 데이비슨 대학을 떠난 이현중은 곧장 캘리포니아에 있는 산타바바라로 향했다. 그곳에서 스킬 트레이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산타바바라 공항에 도착한 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수화물로 부친 짐 두 개 중 한 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머지 1개는 다른 지역으로 갔던 모양이다. 그때 느꼈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인생이 험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현중은 산타바바라에서 훈련하던 중 우연히 그곳에서 배구 월드 스타 김연경을 만났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었다. 처음엔 월드 스타라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연경 누나가 먼저 다가오셨다. 같이 힘든 훈련을 소화하고 나서는 밖에 나가 저녁 식사를 한 적도 있었고, 한두 번은 연경 누나의 집에 초대돼 손수해 주신 음식을 먹기도 했다. 방송에서 보는 것처럼 성격도 시원시원하셨고, 마치 친동생 대하듯 편하게 챙겨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이현중은 그 즈음 BDA(Bill Duffy Associates) 에이전시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NBA의 야오밍, 스티브 내쉬, 루카 돈치치 등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빌 더피가 대표로 있는 회사였다. BDA 외에도 이현중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기 원한 곳이 무려 여섯 개 회사였다. 이현중은 그들과 모두 화상 회의를 가졌고, 여러 차례의 미팅 끝에 자신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온 빌 더피의 BDA 손을 잡았다.
NBA 드래프트에 나서려면 영향력 있는 에이전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현중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BDA가 자신을 잘 이끌어 주리라 믿었다.
에이전시에선 드래프트를 앞두고 이현중을 적극 홍보했다. 덕분에 첫 번째 워크아웃 팀이 스테픈 커리가 뛰고 있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다. 워크아웃은 드래프트 직전에 갖는 중요한 퍼포먼스다. 특히 이현중처럼 2라운드 지명이 예상되는 선수들은 워크아웃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 워크아웃 기회도 아무한테나 주어지지 않는다. 구단에서 워크아웃에 초대한 선수들에게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과 숙소 등을 제공하기 때문에 워크아웃 초대를 받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선수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워크아웃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그로 인해 서부에서 동부로 갔다가 다음 날 다시 서부로 간 적도 있었다. 팀마다 워크아웃 진행 방법에 차이가 있었는데 메디컬 체크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의 기량을 체크했다. 처음에는 그런 스케줄에 적응이 안돼 고전했지만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샬럿 호네츠와의 워크아웃 때 부상을 당한 것이다.
이현중을 기다리는 워크아웃만 16개 정도 됐다고 한다. 즉 NBA 16개 팀에서 이현중을 보고 싶어 했다는 의미다. 이현중은 9번째 워크아웃이었던 샬럿 호네츠에서의 부상으로 모든 일정을 멈추게 된다.
“돌이켜 보면 그 워크아웃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워크아웃 직전에 한 선수가 코로나19에 걸려 체육관을 떠났고, 다른 선수는 레이업을 하다가 다쳤다. 6명 중 2명이 빠진 상태에서 2대 2 수비를 벌이다 나까지 부상을 당한 것이다. 부상 직후 샬럿 호네츠 팀과 연결된 병원으로 옮겨져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에이전시에선 LA로 돌아와 발 전문의인 리처드 퍼켈 박사한테 다시 진료를 받자고 권유했다. 그런데 발등이 부은 상태라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일주일 후에 LA로 돌아가 퍼켈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퍼켈 박사를 만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가운데 NBA 신인 드래프트가 시작됐다. 이현중은 드래프트를 라이브로 시청하면서 자신과 함께 훈련했거나 워크아웃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NBA 팀 유니폼을 입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처음엔 담담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복잡해지더라. 워크아웃 때 만난 미네소타 팀의 한 코치는 내게 백만장자가 될 거라는 덕담을 건넸다. 그 팀의 감독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회복한 터라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드래프트 중계가 끝나니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심 재활을 기대했는데 수술이라니…, 마치 원투펀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현중은 수술 후 한동안 아무 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NBA 게임도 관심 밖이었다. 그렇게 방에서 두문불출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까짓 부상으로 내 농구 인생을 망칠 순 없다’라고 말이다.
“난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내가 처한 상황들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더라. 오른발이 아닌 왼발이라 운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허리가 아닌 발 부상으로 상체 훈련도 할 수 있었다. 수술 후 목발을 짚고 다닐 땐 삼두근 훈련을 대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워크아웃을 할 때마다, 나의 단점들이 부각될 때마다, ‘내가 과연 NBA 무대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뛸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의구심이 들 때마다 불안했는데 부상으로 인해 시간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 후 목발을 짚고 한국으로 들어온 이현중은 현재 목발을 내려놓고 두 발로 걸어 다니며 3Ps 퍼포먼스 강성우 박사의 도움으로 재활에 매달리고 있다. 서서 슈팅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진 몸을 끌어 올렸는데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단계를 밟아 훈련을 소화해나갈 예정이다.
어쩌면 이현중의 부상은 그에게 많은 걸 잃게 한 게 아니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하며 단단한 내면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을지 모른다. 이현중 또한 지금은 모든 의구심과 내적 불안을 거둔 채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일어서는지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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