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비상선언’ 개봉 한 달여 만에 쿠팡행…OTT 치열한 경쟁 속 극장 관객 파이 더 줄어들 듯
아무래도 쿠팡플레이가 생략된 과정에서 발생할 수익을 넘어서는 거액을 제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극장 흥행 성적이 저조한 상황에서 더 큰 수익이 보장되는 쿠팡플레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영화 제작사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일 수 있지만 역작용도 분명 존재한다. 관객들이 극장이 아닌 OTT로 영화를 관람하는 행태가 더욱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23일 영화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쿠팡플레이가 올여름 성수기 극장가 최고 흥행작 ‘한산: 용의 출현’을 8월 29일 저녁 8시 독점 공개한다고 밝힌 것. 8월 23일 기준 ‘한산: 용의 출현’은 스크린 수 1037개, 상영횟수 3912회를 기록하며 한창 극장 상영 중이었다. 7월 27일 개봉해 극장 상영 한 달도 채 안 된 상황이다. 이날 ‘한산: 용의 출현’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일일 박스오피스에서 여전히 일일 관객수 2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스크린 수와 상영횟수도 2위였다. 이날 기준 누적 관객 수는 679만 363명.
사실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아예 ‘극장 동시 상영’이라며 IPTV와 OTT의 유료 VOD 서비스를 시작하는 영화들이 꽤 있었다. 극장 관람료 수준인 1만 원에서 1만 5000원 정도를 콘텐츠 비용으로 내걸고 서비스를 시작해 상당한 수익을 올린 영화들도 많다. 게다가 8월 말 9월 초는 추석 연휴가 임박해 신작 영화에 대한 유료 VOD 수요가 늘어날 시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산: 용의 출현’은 이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쿠팡클레이에서 독점 공개됐다. 쿠팡플레이는 쿠팡 와우 회원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쿠팡 와우 회원은 매달 4900원을 내야 한다. 기존 극장 개봉 신작은 웨이브나 티빙 등 국내 OTT나 IPTV에서 1만 5000원가량의 VOD 이용 금액을 추가 지불해야 볼 수 있는 유료 VOD 콘텐츠였는데 ‘한산: 용의 출현’은 아예 OTT 가입 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다.
8월 29일에는 쿠팡플레이가 또 다른 이번 여름 성수기 개봉 대작 한국영화인 ‘비상선언’도 9월 7일 저녁 8시부터 독점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번 여름 극장가 한국 영화 빅4 가운데 두 편이 개봉 한 달여 만에 쿠팡플레이에서 독점 공개되는 것으로 매우 파격적인 조치다.
영화계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 결정이라는 반응이다. ‘한산: 용의 출현’은 손익분기점인 600만 관객은 넘기면서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1000만 관객, 잘 되면 전편 ‘명량’이 기록한 한국 영화 최대 흥행 기록인 1761만 명까지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집중된 영화였다. 그런데 실제 성적표는 700만 명을 겨우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플레이가 IPTV와 국내 OTT 업체 등을 통한 유료 VOD 서비스 수익을 상회하는 금액을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비상선언’은 더 심각하다. 손익분기점이 500만 관객인 이 영화의 최종 성적표는 205만 명으로 손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쿠팡플레이의 손짓은 분명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CJ 계열사 티빙이 2021년 4월 영화 ‘서복’을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 개봉한 것이다. ‘서복’이 CJ 계열사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 및 투자·배급한 영화이기에 가능한 과감한 조치였는데 사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극장 관객 수가 급감한 외부 요인이 컸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사실 요즘 쿠팡플레이는 상당히 다급한 상황이었다. 9월 4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가 발표한 8월 국내 OTT 월간활성이용자수(MAU) 순위에서 1위는 웨이브로 452만 명이었다. 티빙이 450만 명으로 웨이브와의 격차를 2만 명대까지 줄였다. 6월 22만 명대 차이에서 7월 12만 명으로 차이를 줄었고, 이번엔 2만 명대까지 좁혔다.
반면 쿠팡플레이는 397만 명으로 3위다. 6월에만 해도 373만 명대로 423만 명대를 기록한 웨이브에 50만 명 차이로 밀리던 쿠팡플레이는 7월 481만 명을 기록하며 웨이브를 57만 명 앞서는 압도적인 1위가 됐다. 그렇지만 8월 다시 397만 명을 기록하며 웨이브에 55만 명 뒤지는 3위로 원위치했다.
역시 OTT는 콘텐츠 싸움이다. 티빙의 8월 약진은 임영웅 콘서트 ‘아임 히어로(I'm HERO)’의 단독 공개와 ‘환승연애2’를 필두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힘 때문이다. 쿠팡플레이의 7월 대약진 역시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 친선 경기 단독 생중계가 결정적 요인이 됐고 여기에 수지 주연의 ‘안나’도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토트넘 친선 경기는 일회성 이벤트였고 ‘안나’는 편집권 침해 논란에 휘말렸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플레이가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으로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쿠팡플레이는 별도의 요금제 없이 쿠팡 와우 회원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다시 말해 쿠팡 와우 회원들에게 주는 부가 혜택의 개념으로 시작됐다. 그렇지만 쿠팡플레이가 경쟁력을 갖추면서 이제는 쿠팡플레이를 즐기기 위해 쿠팡 와우 회원을 가입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아마존이 OTT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OTT 시장 2위로 성장시키며 이커머스 플랫폼 아마존 가입자 유치에 긍정적 효과를 유도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쿠팡은 쿠팡플레이가 웨이브, 티빙 등 국내 OTT 서비스와 경쟁하는 것은 물론이고 네이버플러스 멤버십과의 회원 유치 경쟁까지 벌여야 한다. 이런 현실이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의 단독 공개로 이어진 셈이다.
다만 영화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를 거치며 OTT 사용자가 급증하며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의 개봉 직후 OTT 행이 이런 흐름을 더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서 볼 수 있으니 극장에선 큰 스크린으로 볼 필요가 있는 영화만 보겠다는 심리가 관객들에게 확산될 수 있다. 극장을 찾는 관객의 파이 자체가 줄어든다면 점차 극장 개봉 한국 영화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이 처한 상황은 이해하면서도 이로 인해 점점 극장 개봉 영화를 제작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영화 관계자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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