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YE 위해 구축한 데이터가 배송로봇 마중물로…호찌민서도 동일한 사업 진행 “현장 중심 접근 중요”
#'기술'이 아닌 '이해'가 먼저였다
1976년생 이시완 대표는 미국 이스턴프라임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SDS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 최초 웹기획 전문가로 멀티캠퍼스라는 교육기관에서 기획전문가 과정 강의를 하던 이 대표는 운명을 바꾸는 경험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경영자로 스카우트된 것.
그 자리는 험난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직원들 60여 명을 이끌며 회사를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다. 약 10개월간 고군분투를 하다가 스트레스로 쓰러져 일주일간 생사를 오간 끝에 이시완 대표는 ‘내가 감당할 수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일을 그만뒀다. 그러나 이후 이 대표는 개발자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경영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MBA과정을 밟은 후 컨설팅 업체에 입사한 이시완 대표는 정작 컨설팅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이 컨설팅을 받지 않는 현실에 착안해 ‘중소기업 기업화 전략’을 테마로 잡았다. 이 대표가 이후 약 8년간 중소기업을 컨설팅해주며 쌓은 경험은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귀국한 이 대표는 2017년 판교에서 엘비에스테크를 창업했다.
이 대표가 처음 개발한 것은 ‘공간 감지기’였다. 외국인이나 시각장애인 등 정보 약자들이 직접 가리키는 건물에 무엇이 있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게끔 리모컨을 개발한 것이다. 근데 시각장애인인 사촌동생한테 ‘이런 거 만들었어, 써봐’ 했더니 동생이 화를 냈다. 이 대표는 “동생이 형 같은 사람이 제일 나쁘다고 하더라. 많이 안다고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필요할 거라고 예측하고 만든다고. 그때 아차 싶었다”고 말했다.
기술력이 아니라 이해력이 필요한 프로젝트임을 깨달으면서 관점이 크게 바뀌었다. 연구실을 벗어나 현장에서 직접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시완 대표는 매주 실제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만나 컨설팅을 받고 2주 안에 솔루션을 찾아내는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지아이(G-EYE)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자리잡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문'을 열어준 규제 샌드박스
엘비에스테크는 2018년에 각종 공모전을 휩쓸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G-EYE로 2018년 공공데이터 활용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공모전 참가를 기획했던 이시완 대표의 전략이 들어맞은 셈이었다. 문제는 규제였다. 출입구를 직접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하려면 출입구까지 안내하는 정보가 필수인데 보안 문제로 ‘문’의 정보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물 대장의 기재 및 관리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건물 출입구 정보는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발급 또는 열람이 가능했다. 일일이 동의를 얻어 지도를 구축하는 건 불가능했다.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았다. 규제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될 즈음에 기업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정보가 올라온 것이다. 개인사업자로 2년을 지내다가 법인을 신설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업력이 짧아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G-EYE의 혁신성을 알아본 정부 부처들이 앞다퉈 승인해주겠다고 나섰다.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당시 극찬과 함께 발 벗고 나서며 도왔다. 정부는 엘비에스테크가 4년간 G-EYE 서비스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실증특례를 승인했다. 이후 장애인의 이용 편의 및 공익 목적을 위해서는 건축물 평면도의 열람이 가능하도록 규칙을 개정했다.
엘비에스테크의 G-EYE는 시각장애인 이용자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G-EYE 시스템으로 주문·결제하는 데 협조한 업장의 매출도 14~27% 늘어나며 ‘윈윈’이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로 정보 구축이 엉뚱하게도 배송로봇 시장을 열어젖히는 데 기여했다.
#'G-EYE'가 인도한 새로운 문
업력 4년차인 엘비에스테크의 매출액 성장률은 204%, 영업이익 성장률은 558%에 달하고 있다. 이시완 대표는 “지난해 저희가 배송로봇 업체들과 직접적으로 협업하게 되면서 수익이 확 늘었다. 심지어 올해는 매출 흐름이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엘비에스테크는 2021년부터 세종시와 부산시에서 배송로봇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엘비에스테크가 구축한 보행로 정보가 배송로봇 사업에도 주효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이시완 대표는 “배송로봇은 차도가 아니라 보행로로 다닌다. 일반 자동차 자율주행 업체에서 모으는 단순 도로 정보로는 운영이 불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1~3차선으로 단순하게 나뉘어 구획된 차도와 다르게 보행로는 폭도 다 다르고 언덕이나 계단도 고려해야 한다. 불법주차에 쓰레기까지 장애물도 수없이 많다. 엘비에스테크가 시각장애인 길 안내를 위해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해 둔 덕분에 곧바로 배송로봇이 배달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이시완 대표는 “저희도 피드백을 수용하면서 데이터를 평가하고 체계화할 수 있어 ‘윈윈’이다. 국내에서 당장 이것으로 수익을 창출할 생각보다는 한국에서 충분히 테스트함으로써 공간정보에 대한 글로벌 표준을 빠르게 구축해 시장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엘비에스테크는 현재 행정안전부와 협업해 ‘대체주소’ 제작에 힘쓰고 있다. 건물의 모든 출입구와 동호수마다 번호 혹은 기호를 부여해 고도로 정밀한 경로로 길을 안내할 수 있게끔 시스템화하는 작업이다. 이시완 대표는 “일반적으로는 건물 한가운데로 주소가 찍히지만 시각장애인들이나 배송로봇에 필요한 건 정확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입구’다. 특히 입구가 회전문인지 미닫이문인지 자동인지 수동인지에 대한 정보도 고려한다”고 말했다.
엘비에스테크는 현재 마곡·세종·대전에서 G-EYE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점차 전국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현재는 베트남 호찌민에서도 약 100여 개의 매장과 협업해 국내와 동일하게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시완 대표는 “베트남은 보행로 위에 오토바이가 올라 다녀서 깜짝 놀랐다. 여기서 사업화에 성공하면 어디서든 할 수 있겠다는 도전정신이 생기더라”라고 말했다.
이시완 대표는 “재밌는 건 베트남에서는 미용실과 피트니스에도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더라. 우리 생각과 너무 달랐다. 다시금 우리의 추측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니즈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겼다”며 “앞으로도 이용자들의 수요에 집중해 연구 중심이 아니라 현장 중심으로 접근하는 기업과 프로젝트가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특히 장애인 쪽 사업이 그렇게 됐으면 좋겠고 엘비에스테크를 통해 사회적 기업도 ‘유니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포부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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