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미제 2001~2003년 대전 현금수송차량 절도 3건 수법 유사…내부 정보 준 공범 있을 가능성도
2003년 1월 22일 오전 8시 20분에서 40분 사이 대전시 중구 은행동 소재 쇼핑몰 밀라노21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현금 4억 7000여만 원이 실린 채 세워져 있던 한국금융안전(주)의 ‘서울 83도 ○○○○호’ 진녹색 이스타나 현금수송차량이 도난당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도심에서, 그것도 출근 시간에 벌어진 현금수송차량 도난 사건이다.
현장에 있던 한국금융안전(주) 직원 백 아무개 씨(당시 28세)는 언론 인터뷰에서 “리모컨으로 차량 문을 잠근 뒤 밀라노21 지하 1층과 지상 5층 등에 있는 은행 현금자동지급기(ATM) 3대에 2000만 원씩 6000만 원을 채워 놓고 나와 보니 현금수송차량이 없어졌다”며 “누군가 차량 문을 억지로 열면 도난경보장치가 작동했어야 하는데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진녹색 이스타나 현금수송차량에는 백 씨 외에 또 다른 직원도 1명 더 있었지만 그 직원 역시 현금지급기에 돈을 넣는 작업을 위해 차량을 비운 상황이었다.
이날 백 씨와 또 다른 직원은 현금 5억 3000여만 원을 현금수송차량에 싣고 중구 유천동 대전영업소 사무실을 출발해 쇼핑몰 밀라노21과 대전역, 고속버스터미널 등에 설치된 현금지급기에 현금을 채우는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첫 번째 작업 장소인 은행동 밀라노21에서 도난사고를 당했다.
도난당한 차량은 몇 시간 뒤 사건 현장인 밀라노21에서 1.5km쯤 떨어진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됐지만 이미 현금 4억 7000만 원이 사라진 뒤였다.
경찰은 차량에서 범인이 남긴 지문을 찾고 유류품 등에 대한 감식작업을 벌였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출근 시간대에 대로변에서 벌어진 차량 절도 사건이었지만 현장 주변 목격자 등을 대상으로 한 탐문수사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현금수송차량의 동선 등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터라 경찰은 이 회사 퇴직자로 수사망을 넓혔다. 직원들이 차량만 두고 현금자동지급기에 돈을 채우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현금이 가장 많이 실려 있는 첫 행선지에서 절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후 동일수법 전과자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했지만 결국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 사건은 장기미제 사건이 됐다.
최근 이 사건의 범인이 검거됐다.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 주범 이승만이 바로 ‘은행동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의 범인이었다.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의 공범 이정학이 유전자라는 확실한 증거로 체포돼 범행을 시인한 데 반해 수사 초기에는 범행을 부인했던 이승만은 이후 자신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후 이승만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2003년 대전 중구 은행동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도 내가 했다”고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결국 이승만은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 1년 1개월여 뒤 다시 유사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절도당한 진녹색 이스타나 현금수송차량은 차량 문을 억지로 열면 도난경보장치가 작동하는 데 어떻게 훔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이승만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우연히 현금수송차량 열쇠를 보고 비슷한 모양의 열쇠를 여러 개 제작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그 차에 맞아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어 훔쳤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번 범죄는 이정학과는 무관하다. 이승만이 공범 없이 혼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건은 살인이 아닌 특수절도 사건이라 공소시효가 이미 2008년 만료됐다. 이보다 먼저 벌어진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2016년 12월이었지만 공소시효 소멸 1년 5개월 전인 2015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으로 인해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과 동일범 내지는 모방범일 가능성이 높았던 은행동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인 이승만으로 밝혀지면서 또 다른 장기미제 사건 가운데 여죄가 있는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9개월여 뒤인 2003년 9월 26일 오전 8시 22시 무렵 대전시 중구 태평동 버드내아파트 1단지 116동 앞 하나은행 현금자동지급기 부스 인근에서 현금수송차량이 도난당한 사건이 눈길을 끈다. 당시 도난당한 차량은 한국금융안전(KFS) 소속 현금수송차량인 ‘서울 85머 ○○○○호’ 감청색 그레이스 승합차로 현금 7억 500만 원이 실려 있었다.
현금수송 용역업체 KFS 직원 김 아무개 씨(당시 26세)는 언론 인터뷰에서 “부스 건너편 길가에 차를 세우고 현금자동지급기 2대에 2000만 원씩 채워 넣은 뒤 보니 차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애초 그 차량에는 김 씨와 윤 아무개 씨(당시 27세), 주 아무개 씨(당시 28세) 등도 함께 있었지만 모두 현금자동지급기에 현금을 채우는 등의 업무를 위해 차량을 떠나 있었다. 게다가 이 차량은 도난경보장치와 연결된 자동 잠금 리모컨이 고장 난 상태였다.
이번에도 사라진 현금수송차량은 사건 발생 1시간 뒤인 오전 9시 26분 무렵 사건 현장에서 500여m 떨어진 한 주차장에서 발견됐는데 역시 현금은 모두 사라진 뒤였다. 당시 경찰은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과 범행수법이 같아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역시 내부 공모자가 있을 가능성도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은행동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찰이 아무리 수사망을 넓혀도 범인을 끝내 검거하지 못하며 결국 장기미제 사건이 됐다.
역시 특수절도 사건으로 공소시효가 이미 2008년에 만료된 상태다. 그렇지만 이승만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태평동 버드내아파트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태평동 버드내아파트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은 이승만과 무관한 모방범일 수도 있지만 범행 수법이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과 너무 유사하다. 현금을 옮기던 은행 직원들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에선 결국 권총을 발사해 사람이 사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이승만이 직원들이 차를 세우고 업무를 보러 가 현금수송차량만 남아 있는 시점에 절도하는 것으로 범행 패턴을 바꿨다. 바로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인데 이런 방식은 태평동 버드내아파트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과 동일하다.
항간에선 아직 검거되지 못한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 역시 이승만과 이정학 2인조 범행으로 드러났지만 오랜 기간 범인이 3인조였을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의 경우 이승만은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범행 방식과 소요 시간 등을 감안하면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내부 정보가 필요한 범죄라는 점도 공범 존재 가능성을 더한다. 밀라노21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을 자백하며 이승만은 “길을 가는데 현금수송차량이 보여 본능적으로 훔쳐 달아났다”고 밝혔지만 사건 자체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자’의 조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많다. 또한 현금수송차량 열쇠를 확보한 과정에 대한 진술도 이해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오랜 기간 경찰이 역시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했던 태평동 버드내아파트 현금수송차량 절도사건에 대해 이승만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행여 제3의 공범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경찰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자백해 경위 등 자세한 진술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며 “송치 이후 검찰과 협조해 정확한 경위와 추가 공범 여부 등을 밝히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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