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TK 인사 중용, 이준석은 부모 고향 TK 탈환 노려…민주당과 전면전에 ‘윤심’ 재집결 전망도
보수 지지층을 확실하게 잡아놓으려는 ‘베이스캠프’ 쟁탈전이 추석 밥상은 물론 이후에도 펼쳐질 전망이다. 집토끼를 다잡아 대통령 지지율을 확실하게 반등시켜야 하는 집권여당 국민의힘 주류 세력, 그리고 뒤집기를 시도하는 이준석 전 대표 사이에서 벌어지는 보수결집 세력전이다.
#윤석열의 텃밭 다지기
윤석열 대통령은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에 인명 피해를 포함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자 9월 7일 포항을 직접 찾아 피해상황을 살폈다. 폭우로 물에 잠긴 포항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9월 6일 생존자 수색이 밤늦게까지 진행되자,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지하 벙커 국가위기관리센터에 머무르며 구조작업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전언도 나왔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대통령 일정이 부인 김건희 여사 팬클럽을 통해 사전에 노출되는 중대한 경호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불구, 8월 26일 대구 서문시장 방문을 강행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5월 24일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제28차 세계가스총회(WGC) 개회식에 참석했고, 당선인 신분인 4월 12일에도 서문시장을 찾은 바 있다. 8월 대구 방문은 미룬다 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가장 경호가 어렵다는 전통시장 방문을, 일정이 사전에 노출됐음에도 소화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을 찾아 “어려울 때도 우리 서문시장과 대구 시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오늘 기운을 받고 가겠다”며 지역 정서에 한껏 기대는 발언도 내놨다. 또한 서문시장 상인회 간담회에서 “여러분의 아주 열정적인 지지로 제가 이 위치에까지 왔으니 미흡한 점이 많더라도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대구 75.14%, 경북 72.76% 등 자신의 전국 득표율(48.56%)을 훨씬 웃도는 득표율을 TK에서 달성하면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TK도 “대통령이 잘 못하고 있다”고 응답하는 등 지지율 하락세가 명확하게 관측되면서, 정치적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었다. 이에 ‘믿을 구석은 여러분뿐’이라는 메시지를 적극 발신한 것으로 읽혔다.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 방문에 앞서 오전에는 대구 성서산업단지의 한 중소기업에서 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첫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민간 주도하에 일관된 규제혁신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 진행된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 식을 넘어서 “절대 안되는 것 빼고는 모두 풀겠다” 식의 전면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에서 첫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연 것 역시 전통적 보수 지지층에 대한 구애 작전 일환으로 보인다.
지지율 급락이라는 위기 속에서 이를 끊어줄 처방책으로 취임 103일 만인 지난 8월 21일 처음 단행한 대통령실 개편 역시 보수 지지층을 확실히 껴안아야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목격됐다. 신설된 정책기획수석에 TK 출신인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이 임명된 것이다.
이관섭 수석을 앉힌 의도는 대통령실의 정책 ‘브레인’을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부처 간 정책 조율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긴 모양새다. 정책기획수석 산하에는 국정과제비서관을 비롯해 기획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을 배치하기로 해, 이 수석이 정책뿐 아니라 정무와 메시지까지 총괄하도록 힘을 실어줬다.
이로써 대통령실 지휘 라인 상부에 이 수석이 새로이 보임됐고, 정부 쪽 핵심 라인이라 할 수 있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리에 역시 TK 출신 추경호 의원이 이미 배치돼 있어, 인사 구도만 놓고 봐도 핵심 지지층에 대한 호소전략이 눈에 보인다.
이런 가운데 당직을 맡고 있는 TK 의원들을 비롯해 당의 신주류로 불리는 초·재선 의원들이 이른바 ‘윤심’에 적극 부응하면서 비대위 체제 전환 등에서 한 목소리를 내주고 있어,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원군을 확보한 형세다.
대구의 한 국회의원은 “누구나 믿는 구석이라는 게 있는데 국민의힘은 TK가 1번이고 PK(부산·울산·경남)가 2번 아닌가”라며 “그런데 1번 타자가 당장 흔들리니까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당이 조바심이 나는 것인데 최근 대구 방문에서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환호가 나왔으니 핵심 지지층에 대한 호소가 지지층에게로 흡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준석, TK를 교두보로
이준석 전 대표는 법원의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인용을 이끌어낸 다음날인 8월 27일 경북 칠곡으로 간 뒤 경북과 대구를 오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오랜 세월 집안이 터전 잡고 살아왔던 칠곡에 머무르면서 책을 쓰겠다”며 당분간 TK를 거처로 삼겠다는 뜻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칠곡은 대구에 바로 붙어있는 지역으로, 이 대표의 친가 쪽 고향이다.
이어 이 전 대표는 9월 4일 대구 김광석거리에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직격했다. 특히 ‘신윤핵관’이라고 평가받는 의원들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 “당대표가 내부총질한다며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도 자유요, 그를 내친 뒤에 뒷담화하는 것도 자유”라면서 “하지만 그 자유를 넘어서 당헌·당규를 마음대로 개정하고 당무를 뒤흔들어 놓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국정가치인 ‘자유’를 전면에 내세워 윤 대통령을 공격한 것이다.
또한 이 전 대표는 “2022년 지금, 대구는 다시 한 번 죽비를 들어야 한다”며 “대구도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달라. 그들의 침묵에 대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암묵적 동조에 대구는 암묵적으로 추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 달라.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타성에 젖은 정치인들이 대구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정치인들은 오늘도 초선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전위대가 되어서 활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윤심만 바라보는 대구 현역 의원들을 모조리 때린 것이다. 이 전 대표가 ‘보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TK에서, TK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실로 향한 윤 대통령을 난타한 것은 젊은 싸움닭의 무모하고 거친 행동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TK에 연고가 전혀 없어 콘크리트 지지층이 보수층에서 형성되기 힘든 윤 대통령 약점을 이 전 대표는 파고들고 있다. TK가 보수의 대선 승리를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카드가 윤 대통령일 뿐, 보수 핵심 지지층과 정서적 유대감은 약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전 대표는 자신 부모의 연고지가 TK인 점을 부각시키면서, 윤 대통령과는 차별화되는 보수 핵심 지지층과 자신과의 연대성을 부각시키는 중이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이 전 대표가 TK를 교두보로 삼아 당권 재탈환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해석했다.
“아직도 우리나라 정서는 부모 고향을 대면 동향으로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당대표 출마 때 대구에서 집중유세를 하면서 ‘이준석 부모가 TK 출신’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며 상대적으로 자신이 약했던 당원 투표에서도 괄목할 만한 득표력 신장세를 보인 바 있다.”
#위기 때는 원팀?
앞서 정치권에서는 당대표직에서 밀려난 이 전 대표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것으로 봤고, 이 전 대표의 탈락으로 당·정·대를 아우르는 ‘윤심 직할 체제’가 완성될 것으로 관측했다. 당 안팎에 이 전 대표 우군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지지율이 급락했다 해도 취임 100일밖에 안 된 대통령과 겨루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었다.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가진 대통령의 막강한 힘을 고려하면, 임기 초반에는 현역 의원 중심으로 대통령 주변에 인적 자원이 집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대표는 예상 밖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법원에서 일단 1차 판정승을 거둔 것도 기폭제가 됐고, 이 전 대표를 받치고 있는 팬덤층이 두텁다는 것도 이 전 대표에게는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때문에 이 전 대표는 자신감을 갖고 보수의 중심부인 TK 한복판에 들어가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그러나 추석연휴 직전 만들어진 여야 대치 상황은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힘 주류 세력에 유리한 지형을 제공해주고 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검찰 출석 통보 여파, 그 반작용으로 나온 김건희 여사 특검 요구가 여당과 제1야당의 일대일 대결 구도를 조성, 집권여당 내부에서 강한 내부 결속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이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출석 통보를 ‘정치탄압’이자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면서 지난 대선 양자 대결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는 점도 여당 내 원팀 결속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키워내고 있다. 또한 정기국회가 시작돼 거대 야당의 다수결 횡포에 전면전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런 기류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비대위 체제가 다시 완성돼 당이 다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당대표에 대한 방탄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며 “여당이 뭉쳐서 비상식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보수 지지층의 추석밥상 민심이 확인되고 있는 만큼 이 전 대표를 비롯한 장외 스피커는 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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