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4위 자리 롯데카드에 내줘…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독립 시나리오 수정될지 주목
지난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카드의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976억 원으로 전년 동기 2217억 원 대비 10.8% 감소했다. 이 기간 당기순이익은 1556억 원을 기록해 전년 1823억 원보다 14.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현대카드는 업계 4위 자리를 롯데카드에 내주고 5위로 내려앉았다. 올 상반기 롯데카드는 1772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1086억 원 대비 63.2%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올 상반기 현대카드 실적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현대카드가 현대차그룹을 대상으로 올린 영업수익 규모가 크게 축소된 점이다. 현대카드가 상반기 그룹사를 통해 올린 영업수익(개별 기준·카드수익 한정)은 1173억 원으로 전년 동기 1328억 원 대비 1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두 자릿수 감소는 최근 5년 사이 보지 못한 것이다. 현대카드와 현대차그룹의 결속력이 약해진 모양새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현대카드의 실적을 세부적으로 보면 정태영 부회장 체제에서 현대카드에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띈다. 현대카드의 올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수익은 1조 4952억 원이다. 전년 1조 3562억 원에서 10.2% 성장한 것이지만, 주력 사업인 카드수익(1.8% 증가)과 유효이자율법이자수익(7.5%)이 전체 성장률을 밑돌았다. 영업수익이 10% 넘게 성장한 것은 기타영업수익에 힙입었다. 이 기간 기타영업수익은 2480억 원으로 전년 1693억 원대 대비 46.4% 증가했다.
기타영업수익이 급증한 것은 파생상품평가이익이 135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5.3% 불어난 덕이다. 하지만 파생상품평가이익은 환율 방어용 실적으로 파악된다는 점에서 내실 있는 외연 성장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같은 기간 외화환산 손실은 1332억 원으로 전년보다 11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를 제외한 금융사가 파생상품을 주력으로 운용하지는 않는다”며 “현대카드의 파생상품평가이익은 환율 방어 목적의 파생상품 평가 이익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각자대표로 현대카드를 이끌고 있는 정태영 부회장과 김덕환 부사장의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태영 부회장의 계열분리 시나리오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을 끌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사위이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부회장은 정의선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면 현대차그룹 내 금융 3사(현대캐피탈·현대카드·현대커머셜)를 가지고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지분구조상 계열분리가 쉽게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강했다. 정 부회장과 정명이 사장은 이들 금융 3사의 지분 가운데 현대커머셜 지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정 부회장이 현대커머셜 지분 12.50%, 정 사장이 25%를 가지고 있는 것. 해당 지분 규모는 현대차가 가지고 있는 지분율인 37.5%와 같아 현대커머셜을 완벽히 장악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대커머셜이 현대카드 지분 28.56%를 가져가면서 정 부회장 부부는 현대카드에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미치고 있다. 이마저도 현대차(36.96%)와 기아(11.48%)가 확보한 현대카드 지분율에 못 미친다. 현대캐피탈에서는 정태영 부부의 지배력이 확인되지 않는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2020년 경영에서 물러나고 정의선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올랐지만, 정태영 부회장은 오히려 지난해 겸직으로 대표직을 맡고 있던 3개 금융사 가운데 현대캐피탈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정태영 부회장 부부의 계열분리 시나리오는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 2개사를 중심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이번 상반기 현대카드 실적이 부진하게 나오면서 정 부회장 부부의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또 한 번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진한 실적을 보이는 현대카드의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판단되면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정태영 부회장이나 김덕환 부사장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차그룹 주력계열사 현대차와 기아가 확보한 현대카드 지분은 50%(48.44%)에 육박한다. 정태영 부회장 부부가 자칫 현대커머셜만 손에 쥘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일요신문i는 현대카드 실적 하락의 원인과 경영진의 책임론에 대해서 질의하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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