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국가위기관리센터 초석 마련…이명박, NSC 축소했다가 위기 봉착…박근혜, 세월호 대처 미흡으로 거센 비판
#윤석열, 태풍에 철야 비상 대기
9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은 귀가하지 않고 태풍 힌남노 대비 태세를 실시간으로 챙기며 용산 대통령실에서 철야 비상 대기했다. 윤 대통령 철야 근무는 취임 후 처음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수면 관련 준비가 됐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바지가 달라졌던데, 단단히 준비하고 온 것 같다”고 답했다. 다음 날 6일 윤 대통령은 집무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오가며 태풍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회의를 주재했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태풍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 대통령실 설명이다.
이 같은 행보는 ‘재택 전화 지휘’ 논란을 불식시키고 재난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8월 8일 수도권 집중호우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자택에서 전화로 지휘를 내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결국 8월 10일 윤 대통령은 집중호우 피해와 관련해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관련해서 직접 사과한 것은 취임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의힘 한 보좌진은 “대통령실이 태풍 관련해서 언론 브리핑을 6차례나 하고, 심야 브리핑까지 했다. 저번 집중호우 때 잘못을 만회하고자 태풍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노무현, 국가태풍센터 설립 지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하자마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확대 개편해 국가위기관리체계의 종합적 기획 조정 역할을 하는 중심기구로 탈바꿈시켰다. 이때 NSC 산하에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처음으로 두게 됐다. 국가위기관리센터는 외교·안보·군사적 위기와 각종 자연재해 및 대형 사고·재난에 대비해 관련 정보 수집과 총체적 기획·조정, 부처 간 유기적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곳이다.
국가태풍센터도 노무현 전 대통령 지시로 추진돼 2008년 설립됐다. 역대 가장 많은 재산 피해를 낸 2002년 루사와 2003년 매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시스템 부재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태풍 루사·매미의 합계 추산 재산 피해액은 약 9조 3000억 원이었고, 사망·실종자는 376명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주 언론인 간담회에서 “태풍 관측을 위한 국가센터를 제주에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현재 국가태풍센터는 제주 서귀포 한라산 중턱에 있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태풍 매미가 상륙한 2003년 9월 12일에 뮤지컬을 관람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청와대 비서실장 인책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뮤지컬 관람한 것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며 “NSC로부터 2차례에 걸쳐 태풍 상황을 보고 받았으며 공연 직전과 직후에도 상황을 보고 받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명박, 천안함 피격 후 위기센터 확대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NSC를 축소·분산시켰다가 위기에 봉착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NSC를 비상설 기구로 바꾸고 NSC 사무처를 폐지했다. NSC 사무처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마저 해체될 뻔했지만, 위기정보상황팀으로 격하되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2008년 7월 14일 금강산 관광 도중 박왕자 씨가 피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보고되는 데 무려 2시간 이상 걸린 것은 정부 위기 대응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며 “위기대응 시스템의 개선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청와대는 위기정보상황팀을 비서관급으로 격상해 위기상황센터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하지만 국가위기상황 발생 시 컨트롤타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청와대의 위기 대응 시스템과 사건 대응 과정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었다. 그해 5월 청와대는 위기상황센터를 위기관리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2010년 8월 북한의 연평도 공격 징후를 감지하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그해 12월 청와대는 위기관리센터를 다시 위기관리실로 확대 개편했다. MB 정부 시절 폐지될 뻔한 위기관리 조직은 잇단 국가 위기 관련 대처 논란을 겪으면서 네 차례나 간판을 바꿔 달았다.
2010년 9월 추석 연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중 호우로 수해를 입은 피해 현장을 방문해 수재민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니까, (마음을) 편안하게”라고 말하면서 구설에 휩싸였다. 수재민에게 건넨 위로의 말로는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1년 1월 8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난 상황에서 뮤지컬 관람을 했다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전국은 '구제역 대란'이었다. 이미 12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살처분 된 상황이었고, 구제역에 동원된 경북 영양군 공무원 김경선 씨와 안동시 공무원 금찬수 씨가 과로와 사고로 사망하기까지 했다. 2011년 1월 10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이 전 대통령은 구제역 발생 후 단 한 차례도 구제역 현장을 찾지 않았다”며 “납치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서까지 방문한 대통령이 아니었던가”라고 성명을 냈다.
#박근혜, 메르스 부실 대응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12월 NSC 운영과 국가안보실 기능을 보강할 수 있도록 NSC 사무처를 복원시켰다. 하지만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초동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국가 재난사태 위기관리 컨트롤타워 역할을 상실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안보실은 재난 대처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사퇴했다. 이후 2014년 5월 19일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에서 “그동안 국민의 안전과 재난을 관리하는 기능이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어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컨트롤타워의 문제도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2015년에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 관련 부실 대응 논란이 터졌다. 2015년 5월 20일 국내에서 최초 메르스 확진자가 2명 나왔지만, 정부는 9일 뒤인 5월 29일에서야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메르스대책본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별다른 사과 없이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경질하는 데 그쳤다. 메르스 종식일은 2015년 12월 24일 0시였다. 보건당국의 메르스 부실 대처로 국민 38명이 숨졌고, 186명이 힘겨운 치료를 받았다. 치명률은 20%를 기록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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