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스펙트럼에 기술이전, 목돈 대신 연도별 수취로 계약 변경…한미약품 “장기간 안정적 수익 창출 전략”
지난 9월 9일(현지시각) 한미약품이 2012년 미국 제약사 스펙트럼에 기술이전한 호중구감소증 신약 ‘롤론티스(미국 제품명 롤베돈)’가 FDA 승인을 받았다. 호중구감소증은 항암 치료 등으로 백혈구 내 호중구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해 면역력이 떨어지는 질환이다. 올해 안에 미국에서 정식 출시될 예정인 롤론티스는 LG화학 ‘팩티브’, 동아에스티 ‘시벡스트로’, SK케미칼 ‘앱스틸라’, SK바이오팜 ‘수노시’와 ‘엑스코프리’에 이어 FDA에서 허가받은 국산 신약이 됐다.
#FDA 승인으로 얻는 긍정적 효과 적잖지만…
한미약품은 세 번째 도전 만에 롤론티스 FDA 승인을 얻어냈다. 스펙트럼은 2018년 FDA에 롤론티스의 품목허가(BLA) 신청을 했다가 2019년 3월 추가 자료 보완을 위해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같은 해 10월 다시 허가를 신청했으나 코로나19로 허가가 잠정 연기됐다. 지난해 3월 FDA는 롤론티스 원액 생산 공장인 한미약품의 평택 바이오공장 재실사가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올해 3월 스펙트럼은 세 번째 BLA를 제출했고 6월 실사를 다시 거친 끝에 9일 FDA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았다.
한미약품 입장에선 여러 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라는 평가가 시장에서 나온다. 우선 한미약품의 신약 플랫폼인 ‘랩스커버리’의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 랩스커버리는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기술로 바이오의약품의 약효를 늘려주는 데에 활용된다. 롤론티스에 처음 적용됐다.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신약 플랫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 플랫폼 기술이 적용된 한미약품의 다른 파이프라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나온다.
또 한미약품은 과거 기술이전한 신약의 권리 반환이 잦았다는 비판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한미약품에는 유독 기술이전한 신약 후보물질의 권리반환 사례가 잇따랐다. 한미약품은 지금까지 10개의 기술수출 계약을 이뤄냈는데, 이 중 5개 물질에 대한 권리가 반환됐다. 2016년에서 2020년 사이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일라이릴리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한미약품으로부터 사갔던 후보물질을 반환하며 계약을 파기했다.
이처럼 한미약품에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지만, 한미약품 입장에서 ‘남는 장사’를 하려면 FDA 승인보다도 상업화 성공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올해 초 한미약품과 스펙트럼이 롤론티스 관련 기술이전 조건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앞서 1월 한미약품은 롤론티스 미국 시판허가와 함께 스펙트럼으로부터 수취할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제품 출시 이후 ‘추가 로열티(기술 이전으로 생산된 제품의 매출에 따라 받게 되는 금액)’로 조정해 연도별로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로열티를 연간 순매출액의 두 자릿수대 비율로 유지하다가, 마일스톤 금액만큼 로열티를 받은 이후엔 이 비율을 한 자릿수대로 조정하기로 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FDA 허가에 따른 마일스톤 금액은 1000만 달러(약 139억 원)인데, 한미약품 입장에선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한 셈이다. 결국 시판 이후 매출이 중요한 구조가 됐다.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양사 간 계약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으나, 예상 외로 매출이 좋지 않으면 마일스톤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기까지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수정된 계약은 목돈을 안 줘도 되는 파트너사(스펙트럼)에 유리한 계약으로 보인다. 약이 많이 팔린다고 추가 로열티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마일스톤 규모만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계약조건 변경에 합의한 것은 롤론티스가 FDA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계약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적응증 확보 및 파트너사 영업능력 관건
관건은 롤론티스의 미국 시장 안착 여부다. 롤론티스 진출이 예정된 미국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시장은 3조~4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시장은 암젠의 ‘뉴라스타’가 주도하고 있다. 암젠은 기존 피하 주사제에서 패치제(뉴라스타 온프로)로 제형을 확대한 덕에 시장에서 6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라스타 온프로는 몸에 부착하면 환자가 병원에 들를 필요 없이 다음날 약물이 자동으로 투약되는 방식이다.
한미약품은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와도 경쟁해야 한다. 오리지널 의약품인 뉴라스타 특허가 2015년 만료되면서 여섯 개의 바이오시밀러가 시장에 나온 상황이다. 노바티스와 화이자도 바이오시밀러로 이 시장에 진출했다.
한미약품은 약효 지속성 면에서의 기존 제품과 차별화에 나설 전망이다. 주요 타깃 장기인 골수에 분포하며 지속해서 작용해, 뉴라스타 등 기존 제품 대비 조혈모세포 분화 및 증식 효능을 지녔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러한 강점을 내세워 한미약품 롤론티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내년 2%를 시작으로 점차 늘어날 것이란 증권업계의 전망도 나온다. 한미약품의 목표 점유율은 10% 수준이다.
다만 미국 현지 파트너사 스펙트럼의 영업 능력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판매 경험과 영업망이 넓은 글로벌 제약사 대비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제약업계 다른 관계자는 “부작용과 환자 편의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으면 의사는 기존 약을 처방한다. 때문에 마케팅과 영업의 중요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의 롤론티스는 기존 치료제들처럼 항암화학요법을 투여 받은 뒤 24시간이 지나 피하 주사해야 한다. 현재 항암화학요법을 투여한 당일에 롤론티스를 투약하도록 하기 위한 임상 1상을 미국에서 진행 중으로, 해당 적응증 확보 여부가 점유율 확대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한편 한미약품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판권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출시됐다. 올해 롤론티스 국내 매출은 30억 원 정도로 전망된다. 한미약품 측은 중국, 일본보다는 일단 미국 시장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관련, 한미약품 관계자는 “(계약 내용 변경은) 스펙트럼의 초기 상업화 비용 부담을 줄여 미국 시장 개척을 돕는 동시에, 한미의 로열티 유입 비중을 높여 장기간의 안정적 수익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스펙트럼은 미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전문 세일즈 인력을 올해 초부터 충원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의 각 주 핵심 암센터를 중심으로 항암전문 의료진과의 접촉면을 늘려 나가고 있다. 또 스펙트럼 경영진 중에는 뉴라스타 개발사인 암젠 출신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공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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