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선거판에 끼어들어 덕 볼 일은 거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2년 14대 대선 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출마다. 당시 현대 계열사의 주가는 반토막 났다. 그 때부터 사실상 현대그룹의 해체는 시작됐다. 1997년 대선 때는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출마의사를 비쳤다가 그룹 기업들이 곤욕을 치렀고, 끝내 부도났다. 2002년 대선 때는 현대중공업 회장인 정몽준 의원이 후보로 나섰다가 중도 퇴진했지만 현대중공업은 물론 현대 관련 회사들을 아연 긴장케 했다.
이들 기업인 출신 대선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낮았던 게 공통점이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치보복을 당해 기업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예측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올해 선거의 최대 정치테마주는 안철수연구소다.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원 원장은 대선출마 여부는커녕 정치참여 여부도 결정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그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주가는 천정부지다. 과거 정치테마주와는 정반대 현상이다. 작년 7월 초까지 2만 원 미만이었던 주가가 정치참여를 시사한 10월부터 급등해 지난 2012년 1월 4일엔 8배 이상인 15만 9000원까지 올라 시가 총액이 1조 6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그가 작년 11월 안철수 연구소의 지분 절반을 사회환원한다고 했을 때 1500억 원이었던 주식가액이 3000억 원대로 커졌다. 이러자 금감원이 투자자를 보호한답시고 ‘주가가 오르는 이유를 대라’고 하자 회사는 ‘우리도 모른다’고 코미디 같은 선문답을 했다.
그러나 오를 이유는 분명히 있다. 과거 대선후보들과는 달리 안 원장은 지속적으로 여론조사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된다한들 매출이나 이익이 몇 배씩 늘어날 수 있는 안철수연구소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그 점에서 ‘묻지마 투자’다. 보통 묻지마 투자는 맹목적 탐욕에 기반하지만 이것은 좀 다르다. 손해나도 어려운 사람에게 좋은 일한 것으로 치겠다는 로또 방식의 투자다. 그의 재산사회환원 선언이 투자자들의 가슴을 울린 공명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난주 미국여행을 떠났다. 세계적인 IT기업의 총수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구글의 에릭 슈미트를 만나기 위해서다. 과거 대선 후보들이 미국에 가서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을 만나 사진을 찍고,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 한마디 하는 것으로 위상을 과시하던 방식과 차별화된다.
이번 방미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의 멘토 격인 빌 게이츠와의 만남이다. 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2011년 기준 매출이 700억 달러, 순익 231억 달러이고, 게이츠 자신은 안 원장처럼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 사재 370억 달러를 들여 만든 자선재단 운영에 전념하고 있다.
게이츠는 안철수 원장에게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보다 1000배 이상 큰 회사, 100배 이상 큰 자선재단을 만들었는데 대통령 해보라는 사람이 없으니 미국은 나쁜 나라야. 내가 대통령 출마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당장 반토막 날걸.”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