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왕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찰스 3세(73)가 마침내 왕위를 물려받았다. 무려 70년 214일 동안 왕좌를 지켜온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면서 자동으로 왕위를 승계받게 된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쓰게 된 왕관이지만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왕실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여왕이 즉위했던 1950년대와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해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데다, 찰스 3세 개인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감도 만만치 않다. 불륜 스캔들로 얼룩진 결혼 생활과 이혼녀가 왕비 자리에 올랐다는 점도 걸림돌이긴 마찬가지다.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과연 그는 선왕에 버금가는 존경과 칭송을 받을 수 있을까.
찰스 3세는 어린 시절부터 엘리자베스 2세의 뜻에 따라 왕실 전통을 깨는 파격적인 교육을 받았다. 과거의 왕위 계승자들이 개인교사들로부터 일대일 교육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왕은 장남을 일반 학교에 보냈다. 따라서 찰스 3세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받은 최초의 후계자가 됐다.
웨스트 런던에 있는 힐하우스 스쿨에 입학한 그는 왕족으로서 딱히 특혜를 받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수업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모레이에 있는 고든스토운 기숙학교에 입학해서는 동급생들과 방을 함께 쓰면서 공동 생활을 하기도 했다.
영국의 대학입학시험인 ‘에이레벨’을 마친 후에는 군에 입대하지 않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시 한 번 왕실의 전통을 깼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했으며, 훗날 역사학으로 전환해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로써 찰스 3세는 대학 학위를 받은 최초의 왕위 계승자가 됐다. 영국 왕실의 전통에 따라 영국 공군과 해군에 복무했으며, 이 과정에서 낙하산 부대의 훈련 과정을 수료한 최초의 왕족이 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과거의 후계자들에 비해서는 평범한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세자가 됐기 때문에 그의 일상생활은 일반인과 결코 같을 수 없었다. 그의 곁에는 늘 시중을 드는 하인들이 따라다녔으며,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늘 보살핌을 받았다.
찰스 3세의 성격에 대해 과거 여왕의 대변인을 지낸 사이먼 루이스는 “그를 말로 설명하기란 복잡하다. 나는 그처럼 세상에 대해 그렇게 궁금해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열정적이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닌 헌신적인 사람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른 왕실 직원은 그를 가리켜 “재미있지만,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쉽게 화를 내는 스타일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왕실의 전통과 의무에 충실한 그는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집착에 가까울 정도다. 매일같이 고수하는 독특한 루틴이 있으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위식에서 목격된 짜증내는 태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다이애나비의 집사였던 폴 버렐은 다큐멘터리 ‘서빙 더 로열’에서 찰스 3세의 독특한 루틴을 세세히 밝힌 바 있었다. 버렐은 “매일 아침 잠옷은 빳빳하게, 신발끈은 납작하게 눌러서 다림질해놓아야 했다. 욕조 마개는 늘 일정한 위치에 있어야 했고, 물 온도는 뜨뜻미지근해야 했다”고 폭로했다. 또한 직원들에게 미리 칫솔을 준비하도록 주문했는데, 이때 반드시 치약은 딱 1인치(약 2.5cm) 정도 짜놓아야 했다.
버렐은 또한 찰스 3세가 쓰레기통에 떨어진 편지를 대신 꺼내 달라고 요청했던 때를 회상했다. 그는 “한번은 그가 서재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오, 폴. 여왕이 보낸 편지가 휴지통에 떨어졌는데, 와서 좀 꺼내줄래’라고 요청했다”면서 “나는 휴지통으로 몸을 굽혀 편지를 찾아낸 다음 다시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게 전부입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네. 대단히 고맙네’라고 대답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가 하면 찰스 3세의 공보 비서관이었던 줄리안 페인이 밝힌 그의 일상은 이렇다. 왕세자로서 보낸 60년여 동안 그의 하루는 거의 매일 정확하게 계획대로 움직였다. 매일 아침 BBC 라디오 뉴스를 듣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아침 식사는 언제나 제철 과일 샐러드와 씨앗류에 차를 곁들였다. 그리고 매일 오후 4~5시에는 스콘이나 샌드위치, 과일 케이크와 함께 삶은 달걀 일곱 개 가운데 하나를 골라 먹으면서 티타임을 가졌다. 이때 달걀은 정확히 7분 동안 삶아야 했다. 또한 모든 식사에는 수란을 곁들여야 하고, 채소는 특정한 종류의 미네랄워터로 조리해야 하며, 하이그로브에서 재배된 오렌지와 과일로 진을 만들어서 마시기도 했다.
오후 1시가 되면 휴식을 취했지만, 점심을 먹지는 않았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하루에 두 끼만 먹는 습관을 고수하고 있다. 종종 버킹엄궁의 정원이나 하이그로브나 밸모럴 인근 농장으로 산책을 나가곤 하며, 걸음이 빨라서 젊은 사람들도 속도를 맞추기 위해 빨리 걸어야 할 정도라고 알려졌다.
대개는 저녁 8시 30분까지 대외 업무가 계속되며, 오후 10시가 되면 개인 책상 앞에 앉아 자정까지 업무를 보고 잠자리에 들곤 한다. 아내인 커밀라 볼스의 말에 따르면, 매일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후원 및 조언 요청에 응답하는 글을 쓴 후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보면 철저한 완벽주의자 같지만 때로는 즉흥적인 행동과 언사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언론과의 사이에서도 종종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2005년에는 BBC 기자가 곧 있을 볼스와의 결혼식에 대해 묻자 찰스 3세는 “이 빌어먹을 사람들 같으니라구. 저 자를 참을 수가 없네. 정말 끔찍해, 정말 그렇단 말이지”라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한번은 카타르 총리인 셰이크 하마드 빈 자심 빈 자베르 알 타니로부터 300만 유로(약 42억 원)의 기부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찰스 3세는 현금 다발이 든 가방을 직접 받았으며, 이에 대해 대변인 측은 “이 기부금은 왕세자의 자선 단체 가운데 한 곳에 즉시 전달되었고, 모든 절차가 올바르게 준수됐다”고 해명했다. 비록 기부금 지불은 합법적이었지만, 문제는 그가 카타르의 심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점에 있었다.
짐바브웨의 독재자이자 대통령이었던 로버트 무가베와 악수를 나누었던 행동에 대해서도 무책임하고 경솔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무가베는 대선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유럽연합(EU)의 입국이 금지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잊은 채 찰스 3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서 만난 그와 악수를 나누었으며, 이에 대해 영국 언론은 ‘바보 같다’ ‘분별없는 행동이다’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변인은 당시 “왕세자 역시 깜짝 놀랐고 무가베의 악수를 피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다른 무엇보다 왕좌에 오른 찰스 3세의 행적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가 모친과 달리 공개 자리에서 정치적 발언을 툭툭 내던질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여왕은 사망할 때까지 군주로서 엄격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이에 따라 심지어 투표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 찰스 3세 역시 취임 연설에서 “더 이상 내가 매우 아끼는 자선단체와 이슈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치적 발언을 자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018년, BBC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다” “난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라면서 왕으로서의 규칙을 따르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왕세자 시절 보여주었던 발언과 행동을 생각하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게 사실. 유전자 변형 작물에서부터 동종요법 의약과 건축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위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의견을 말해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15년 불거졌던 이른바 ‘블랙 스파이더 메모’ 스캔들이었다. 이 메모는 찰스 3세의 독특한 필체가 검은 거미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찰스 3세가 수년간 영국 정부 각료와 정치인들에게 쓴 손편지와 메모를 가리킨다. 총 27개의 메모가 유출됐으며, 이를 통해 찰스 3세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을 위한 군장비 개선 긴급 조치부터 파타고니아 치어 불법 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에 대해 영국 고위 정치인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왔다. 또한 동종요법이 국민건강서비스(NHS)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로비한 혐의도 받았다.
당시 이 메모는 찰스 3세가 사적인 자격으로 보낸 편지긴 했지만, 영국 정부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문제가 됐다. 또한 찰스 3세가 일부 선출된 장관들조차 볼 수 없었던 영국 정부와 관련된 기밀문서를 열람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에 당시 영국 언론은 찰스 3세를 가리켜 ‘참견하는 왕자’라는 별명으로 부르면서 비꼬기도 했다.
이 밖에도 경솔한 외교적 행동도 도마 위에 올랐다. 2014년에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을 아돌프 히틀러와 비교한 후 외교적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캐나다를 방문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도망친 유대인 여성에게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은 히틀러와 거의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올해 초에는 수천 명의 망명 신청자들을 르완다로 이송하려는 영국 정부의 계획을 은밀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4월, 부활절 메시지에서 그는 “고향을 떠나 피난처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비극”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들에게는 환영과 휴식,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석에서는 영국 정부의 정책을 가리켜 “끔찍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찰스 3세에게 이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그가 군주로서 자격이 충분할 만큼 따뜻한 마음씨와 아량이 있다고 추켜세운다. 페인은 “지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로 찰스 3세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은 거의 실패했다”고 말하면서 “그는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지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007영화 ‘노 타임 투 다이’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도 이런 배려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당시 왕세자였던 찰스는 주인공인 대니얼 크레이그에게 곧바로 가지 않고 그 전에 세트 디자이너, 경비원 등등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기 위해 계속 걸음을 멈췄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인기 배우든 아니든 모두가 동일하게 대우를 받았다.
찰스 3세가 자선사업과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1976년 해군 퇴직금을 바탕으로 설립한 ‘프린스 트러스트’를 통해 그는 지금까지 수백 만 명의 청년들을 지원해왔다. 현재 그는 420개 이상의 단체의 회장이자 후원자며, 매년 그의 자선단체는 1억 파운드(약 1600억 원) 이상을 모금하면서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열렬한 환경운동가로서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해왔던 찰스 3세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의 주요 지지자였으며, 당시 트럼프가 탈퇴를 고려하고 있을 당시에는 직접 만나 차를 마시면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또한 2020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서는 강경한 어조로 “여러분은 우리가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벼랑 끝에서 되돌리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들로 역사에 남기를 원합니까? 저는 싫습니다”라고 발언했다.
환경운동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그가 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바이오 연료로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21세 생일 선물로 여왕에게서 선물받은 애스턴 마틴을 잉여 화이트 와인과 치즈 공정에서 나오는 유청으로 제조한 친환경 연료로 운행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재규어, 아우디, 레인지로버에도 폐식용유에서 추출한 100% 바이오디젤을 사용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영국인들 사이에서 찰스 3세는 그다지 인기가 높은 인물은 아니다. 아마 본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터. 왕실 전기 작가인 크리스토퍼 앤더슨은 ‘USA투데이’에 “어머니의 엄청난 인기와 그에 비해 저조한 찰스 3세의 지지율을 고려했을 때 천천히 가는 게 오히려 현명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찰스 3세는 본래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길을 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서 “군주제의 대중적 매력이 퇴색하고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왕위 계승이 영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듯싶다”라고 덧붙였다.
"유지비 비싼데 이참에" 높아지는 군주제 폐지 목소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함에 따라 이참에 군주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군주제를 유지한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라는 점, 그리고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 등을 꼬집는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대영제국이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지속된 군주제이기 때문에 이런 왕실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는 사실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왕실 보조금 명목으로 지출되는 세금과 왕족에게만 유독 적용되지 않는 상속세 면제 규정도 불만의 씨앗이 되고 있다. 영국인들 대다수가 치솟는 인플레이션, 무너지는 의료 서비스, 증가하는 빚에 고통 받고 있는 마당에 찰스 3세와 그의 가족은 왕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국 정부로부터 매년 왕실 보조금을 지급받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실제 왕실 보조금은 2021년의 경우, 8630만 파운드(약 1400억 원)가 지급됐고, 여기에는 궁전들을 유지보수하는 비용에서부터 찰스 3세가 영화 '007'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용한 전세기 비용 3만 2000파운드(약 5100만 원)까지 다양한 항목이 포함돼 있다.
왕실의 재산 규모가 철저하게 비밀에 싸여 있다는 점도 문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는 왕위 계승뿐만 아니라, 영국 왕실의 궁전, 왕관, 보석 등 막대한 재산과 소유권이 함께 이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왕의 재산은 주식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처럼 기업공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대부분이 유형 자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개인 재산이 빌 게이츠나 제프 베이조스와 같은 빅테크 거물들의 재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포브스'의 추정에 따르면, 여왕의 개인 순자산 규모는 5억 달러(약 6900억 원)에 이른다. 대부분은 찰스 3세에게 상속될 예정이지만, 이때 상속세는 한푼도 부과되지 않는다. 이는 영국의 군주에게만 특별히 적용되는 상속세 면제 조항 때문이다. 이에 비해 현행법에 따르면, 38만 달러(약 5억 원) 이상의 유산을 상속하는 일반 영국인들에게는 40%의 세금이 부과된다. 만일 이 상속세가 찰스 3세에게도 적용됐다면 그는 약 2억 달러(약 2800억 원)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왕족들이 세금을 전혀 안 내는 건 아니다. 1993년 영국 정부와의 협정에 따라 여왕과 찰스 3세는 그들의 개인 자산과 공식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왕실 자산에서 파생된 소득에 대해 세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찰스 3세는 자발적으로 콘월 공국을 통해 발생한 소득에 대한 소득세를 납부했다.
한편에서는 영국 왕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관광 수입을 고려하면 오히려 군주제 폐지가 영국에 손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2017년, 컨설팅 회사인 ‘브랜드 파이낸스’에 따르면, 군주제를 통해 영국이 벌어들인 관광 수입은 6억 4000만 달러(약 8900억 원) 이상에 달했다.
하지만 군주제를 반대하는 단체들은 왕실이 돈을 벌어다 준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런 주장은 왕실 공보 비서관의 상상일 뿐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군주제를 유지하는 데는 실제로 매년 약 4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약 5600억 원)”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벌어들인 돈을 결국 자신들의 왕실을 유지하고 있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