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팀 리더십에 의문부호, 전당대회 시기 등 놓고 내홍 불가피…이준석 가처분 신청 결과 따라 운명 좌우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뒷걸개에 그대로 적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준석 사태’로 인한 당의 분열, 전당대회 일정이 먹구름 속에 갇혀 있는 답답함, 이 전 대표의 법적 대응 결과에 따라 춤을 추면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당 지도체제의 불안정성 등 세 가지 악재가 뒷걸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새 출발을 한다지만 악재가 너무 많아 ‘정진석 비대위’가 중량초과 상태로 제대로 달릴 수 있겠느냐는 우려와 연결되는 중이다.
#다함께, 쉬울까?
지난 9월 7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 이날 회의에 참석한 당 소속 의원 75명은 정진석 국회부의장의 비대위원장 지명을 박수로 추인했다. 무기명 투표나 거수에 의한 의사표시가 아닌 박수로 비대위원장 지명을 추인할 만큼 반대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김웅 의원 1명만 손을 들어 반대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을 추인한 의원총회 직후 “정 부의장과 통화하고 세 번이나 방에 찾아가 설득했다. 당 원내대표를 역임했고 의원들 신임을 받아서 부의장까지 하는데 당이 가장 어려울 때 좀 도와주셔야 한다. 그리고 총대, 아니 책임져야 한다고 계속해서 설득했다”면서 추대 뒷얘기를 전했다.
그리고는 “(정 부의장이) 4년 동안 끊었던 담배도 피우면서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하다가 조금 전 세 번째 찾아갔더니 마지막에 승낙해줬다”고 전했다.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 삼고초려 끝에 승낙을 얻어냈고, 의원들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압도적 지지로 정 비대위원장을 추인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2016년 봄, 20대 총선 참패로 큰 위기를 겪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선거에 나가 나경원 의원 등을 꺾고 승리한 뒤 ‘김희옥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당의 재건 활동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다. 당내 친박(친 박근혜 계열) 지지로 원내대표에 당선됐지만 친박과 비박 세력 간 조율을 잘했던 것으로 당시를 기억하는 정치인들은 입을 모은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하는 등 친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 원내대표를 맡아 다소 시끄럽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당 내부 조율을 잘했다”며 “기자 생활을 해서(한국일보 기자 출신) 다른 사람 의견을 들을 줄 알고 뚝심과 원칙도 있다”고 평가했다.
정 위원장 개인적 역량도 그러하지만 최근 10년여 동안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 가운데 외부에서 들어온 ‘어쩌다 위원장’의 성공 타율이 낮았던 점도 내부 출신 정 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을 일단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좌초된 주호영 비대위와 정진석 비대위를 포함해 2010년 이후 국민의힘은 모두 10차례 비대위를 출범했다. 2010년 김무성 비대위 이후 2011년 정의화, 2012년 박근혜, 2014년 이완구, 2016년 김희옥, 2016년 인명진, 2018년 김병준, 2020년 김종인 비대위 등이 들어섰다.
이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비대위 출범 직후 그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 의석 과반을 획득하면서 총선 승리를 이끌어낸 2012년 박근혜 비대위가 꼽힌다. 그 밖에 내부 인사들이 이끌었던 비대위는 ‘평균’ 이상은 기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외부에서 온 비대위원장은 내부 장악력 부족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정진석 비대위 체제가 ‘다함께’라는 구호에 어울리는 원팀 리더십을 갖추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다. 그가 권성동·장제원 의원처럼 원조 윤핵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해도 친윤이라는 점에서 친윤 파벌주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검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혀온 주기환 전 비대위원이 정진석 비대위의 비대위원 명단에 포함됐다가 발표 직후 사의를 표명한 일이 있었는데, 친윤 색채 강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감지되는 것과 연결되는 사례로 읽힌다.
정 위원장이 당의 최대 주주이자 지배 주주라고 할 수 있는 영남 출신이 아니어서 비상상황에 빠른 속도로 지지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한계점을 보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롭게, 언제쯤?
“우리 당 의원들은 과연 비대위 체제 말고 정상 지도부 체제를 알고 있기는 할까.”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최근 자주 하는 말이다. 10년여 동안 무려 10번의 비대위 체제 출범이 말해주듯 초·재선 의원들에게는 정상 지도부가 아니라 비대위 체제가 더 익숙하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올 만큼 국민의힘은 비대위 체제가 잦았다. 새 비대위가 목표로 삼는 ‘새롭게’는 새로운 정상 지도부의 등장으로 달성된다. 비대위는 정기 국회를 잘 마무리하고 전당대회 국면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그러나 전대를 준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비대위 임기와 맞물려있는 데다 연내 조기 전대냐, 전대를 내년으로 미루느냐를 놓고 당권 주자들 간 셈법이 모두 달라 의견 조율이 녹록하지 않다. 시기를 결정한다 해도 차기 총선 공천권을 갖는 당대표인 만큼 전당대회 룰을 놓고도 서로 심하게 날을 세우는 신경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정 위원장이 여러 언론에 내놓은 발언을 보면 일단 연내 전대 개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당의 모든 역량을 정기국회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국회 현안을 내팽개치고 전당대회 열풍에 휘말린다면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주호영 직전 비대위원장도 정기국회를 이유로 전대를 내년으로 미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전·현직 비대위원장들이 ‘전당대회 연내 불가론’을 잇따라 내놓는 것은 비대위 위상과 연계돼 있다. 비대위가 단순한 시간벌기용 조직이 아니라 당의 혁신을 가져올 결과물을 내놓은 뒤 역할을 종료하겠다는 것이고, 이렇게 본다면 정진석 위원장의 향후 당대표 출마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 위원장은 9월 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당권 도전 여부를 거론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모르죠, 뭐. 내가 비대위원장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잘 해내면 당원들이 또 제대로 전대에 출마하라는 요구가 있을지도”라고 여지를 남겼다.
당대표 출마를 준비해왔던 주자들은 연내 개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기현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전대를 빨리할수록 좋다며 연내 개최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중한 성격의 안철수 의원은 아직 명확한 시기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전대가 내년으로 간다면 출마군이 많아진다. 당내 주자 외에도 원희룡 국토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 내각에서도 나올 사람이 생긴다. 결국 전대 시기는 후보군의 변화를 불러오고 경쟁률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시기 결정 과정 마찰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으로, 가능할까?
당의 혼돈 상황을 수습하고 후퇴가 아니라 ‘앞으로’를 외친 새 비대위의 출범일 9월 14일은 공교롭게도 친정 국민의힘을 향한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소송전이 공개적으로 재발화하는 날이었다. ‘주호영 비대위’를 좌초시킨 이 전 대표의 소송전은 이제 과녁을 바꿔 정진석 비대위를 겨냥하고 있다.
새 비대위 출범 과정에서 진행한 당헌·당규 개정 작업 등과 관련해 이 전 대표가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은 9월 14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심리를 개시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직접 법원에 출석하면서 언론의 주목도를 한껏 끌어당기면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했다.
정 위원장을 직접 겨누고 있는 비대위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 결정에 따라 새 비대위가 멈춰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집권여당은 또다시 전진이 아닌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 측은 소송전을 확대하고 있다. 9월 15일에는 정진석 비대위의 비대위원 6명의 직무집행을 정지해달라며 당과 지도부 등을 상대로 한 다섯 번째 가처분을 서울남부지법에 신청했다. 9월 13일 상임전국위 의결로 임명된 국민의힘 지명직 비대위원은 김상훈·정점식·전주혜 의원, 김병민 광진갑 당협위원장,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 등 6명이다.
이 전 대표 측은 비대위원들을 임명한 상임전국위 의결에 대해서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앞서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직무집행과 정 비대위원장을 임명한 전국위 의결 등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국민의힘 지도부 상대 네 번째 가처분(4차 가처분) 신청서도 제출했다. 그러나 앞서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 체제 비대위원 8명의 직무집행을 정지해달라며 냈던 2차 가처분 신청은 취하했다.
국민의힘 당헌을 개정한 전국위 의결의 효력정지를 구한 3차 가처분과 정 비대위원장의 직무집행정지 등을 골자로 한 4차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은 9월 28일로 예정돼있다.
이 전 대표의 소송 난사로 인해 비대위가 또 법원에 의해 좌초된다면 국민의힘은 대혼란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비대위 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반쪽 리더십이 될 수밖에 없는 원내대표의 당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가게 된다. 집권여당의 지도부 공백사태가 장기화하는 셈이다.
당 내부에서는 새 비대위 출범 과정에서 충분한 법적 검토를 거친 뒤 법률적 요건을 모두 갖춘 만큼 이번에는 법원이 다른 판단을 내놓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당이 마냥 법원에 끌려 다니는 최악의 상태를 법원이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가 있는 만큼 경험 많은 당 중진들을 중심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두고 여러 대비책을 만들어 놓고 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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