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 21년 만의 60홈런 도전…푸홀스 통산 세 명뿐인 700홈런 눈앞…오타니 투타 겸업에도 34개 때려
#애런 저지
양키스 거포 저지는 올 시즌 MLB 역대 9번째 60홈런 고지에 도전하고 있다. 이미 2007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남긴 양키스 오른손 타자 한 시즌 최다 홈런(54개)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14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는 시즌 56호와 57호 연타석 홈런을 터트려 21년 만의 60홈런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150년 가까운 MLB 역사에서 한 시즌 60홈런을 돌파한 타자는 베이브 루스(1927년 60개), 로저 매리스(1961년 61개), 새미 소사(1998년 66개·1999년 63개·2001년 64개), 마크 맥과이어(1998년 70개·1999년 65개), 배리 본즈(2001년 73개) 등 다섯 명뿐이다. 다만 소사, 맥과이어, 본즈는 모두 금지약물 복용 이력이 적발돼 60홈런 기록의 의미가 퇴색됐다. 저지가 올해 홈런 60개 이상을 때려내면, 금지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은 '청정 타자'로는 역대 세 번째이자 1961년의 매리스 이후 61년 만에 60홈런 이정표를 세우는 셈이다.
MLB닷컴은 저지의 올해 홈런 수가 앞선 타자들의 같은 기록보다 "더 어렵고 대단한 기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 이유로 "루스는 투수 대부분이 미국 태생의 백인이던 시대에 야구를 했다. 올해 저지가 만난 투수의 숫자는 당시 루스와 대결한 투수 수의 다섯 배 정도 된다"며 "투수들의 수준 자체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또 지금은 소사, 맥과이어, 본즈의 시대와 달리 '파워 히팅'이 대세인 시기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저지의 60홈런 도전이 양키스 팬들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야구팬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이유다.
저지는 양키스 대표 레전드인 데릭 지터와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계보를 잇는 특급 스타다. 키 2m 1㎝, 체중 128㎏의 압도적인 체격 덕에 고교 시절 야구·농구·풋볼에서 모두 초고교급 선수로 활약했다. 2010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지명을 거절하고 프레스노 주립대에 진학한 뒤로는 야구에만 전념해 기량이 더 좋아졌다. 결국 2013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2순위로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고,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장타를 펑펑 터뜨려 기대와 주목을 받았다.
풀타임 빅리거 첫 시즌인 2017시즌엔 5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만장일치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아메리칸리그(AL) 최우수선수(MVP) 투표에서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지난 시즌까지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7년과 같은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는데도,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2017년부터 3년 연속 팀 내 유니폼 판매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2020년과 지난 시즌엔 잠시 순위가 뒤로 밀렸지만, 올해 제 기량을 회복하면서 다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찌감치 저지의 스타성을 알아본 구단은 홈구장인 양키스타디움 오른쪽 외야에 저지의 전용 응원석인 '저지스 체임버(Judge's Chambers·저지의 법정)'를 설치했다. 저지(Judge)란 이름이 '판사', '재판장'을 뜻하는 데서 착안했다. 이 자리에 입장한 팬들은 뉴욕 양키스 팀 컬러인 감색 법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응원 도구인 법봉을 흔들면서 응원한다. 이 좌석에 소니아 소토마요르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이 다녀가면서 '진짜 판사가 앉았던 체임버'로 더욱 명성을 얻었다. 저지가 타석에 들어서면 팬들은 마치 실제 법정에서 재판장을 맞이하듯 '일동 기립(All Rise)'이 적힌 피켓을 치켜든다. 그가 홈런을 치면 '저지먼트 데이(Judgement Day·심판의 날)'라고 외치는 해설자도 있다.
저지는 입양아 출신이다. 1992년 4월 26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뒤 다음 날 웨인-패티 저지 부부에게 입양됐다. 웨인과 패티는 둘 다 교사였다. 저지는 자신의 외모가 부모와 닮지 않은 것을 점점 이상하게 여기다 초등학교 때 부모를 통해 입양 사실을 알았다.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교육자 부모의 엄격한 지도 속에 품행이 바른 청년으로 성장했다.
저지는 특히 어머니 패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신인 시절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양키스 선수가 될 수 없었다.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법과 사람들을 대하는 법 등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배웠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성장한 저지는 주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2014년 마이너리그에서 저지를 지도했던 트레이 힐만 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은 "덩치가 큰 저지는 나와 대화를 나눌 때, 눈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곤 했다"고 회상하면서 "저지는 긍정적인 사고를 했고, 지도자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그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전했다.
한국계로 알려진 형 존도 동생과 마찬가지로 이 가정에 입양됐다. 존 저지는 미국 명문 대학인 UC버클리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저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형은 한국어·영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인재다. 올 시즌이 끝난 뒤 가족과 함께 형을 보러 한국에 갈 예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지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엄청난 규모의 돈방석에 앉을 것이 확실시된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데, 개막 전 이미 양키스의 8년 2억3050만 달러(약 3151억원) 연장 계약 제안을 거절했다. USA 투데이는 "저지가 최소 9년 3억2400만 달러(약 4250억원)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올해의 괴물 같은 성적을 고려하면, 저지의 주가는 이보다 더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다. 뉴욕 메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컵스 등 여러 구단이 이미 저지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MLB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저지 전성시대'가 얼마나 더 확장될 지 예측할 수 없다. '60홈런'은 그런 저지의 가치와 인기에 더 거센 불을 붙일 도화선이다.
#앨버트 푸홀스
2001년부터 22년간 MLB에서 뛰고 있는 푸홀스는 '베테랑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다. 그는 현역 마지막 시즌을 뜻깊게 마무리하기 위해 올 시즌 개막 전 세인트루이스와 1년 계약을 했다. 데뷔 첫해부터 11년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팀에서 은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그때 그의 통산 홈런 수는 679개.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첫 11년간 홈런 445개를 쳤고,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11시즌 동안 223개의 아치를 그렸다. 마흔 전후로 눈에 띄게 기량이 하락했던 푸홀스가 통산 700홈런까지 남은 21개를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세인트루이스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팀을 명문 구단 반열에 올려 놓은 타자 푸홀스,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41),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40) 트리오가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실제로 푸홀스는 시즌 초중반까지 경기에 나가는 시간보다 더그아웃을 지키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경기 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푸홀스의 오랜 '내공'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반기 53경기에서 홈런 6개를 친 그가 8월 한 달 동안에만 홈런 8개를 쏘아 올렸다. 오랜 동료 웨인라이트가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8월 19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는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도 때려냈다. 스포츠 기록 전문업체 엘리아스 스포츠는 "40대 타자가 만루홈런을 치고 40대 투수가 7이닝 이상 무실점을 기록해 승리를 이끈 경기는 MLB 역사상 처음"이라고 알렸다. 또 8월 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 올 시즌 세 번째 멀티 홈런(한 경기 2홈런 이상) 경기를 펼쳤다. 42세 선수가 한 시즌에 3경기 이상 멀티 홈런을 기록한 것 역시 MLB 역대 최초였다.
푸홀스는 이후에도 홈런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 9월 11일 피츠버그 파이러츠전에서 1-3으로 뒤진 6회 초 동점 2점 홈런을 터트렸다. 시즌 17호이자 개인 통산 696번째 아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역대 통산 홈런 4위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 방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2일 다시 피츠버그를 상대로 시즌 18호이자 개인 통산 697호 홈런을 날려 순식간에 로드리게스를 제치고 단독 4위로 올라섰다. 1-2로 뒤진 9회 초 무사 2루에서 승부를 단숨에 뒤집는 역전 2점 홈런을 터트린 상황이라 더 값졌다. 실제로 세인트루이스는 이날까지 푸홀스가 홈런을 친 15경기(멀티홈런 3회)에서 14승 1패라는 놀라운 승률을 올렸다. 4월 18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5-6으로 진 게 유일한 패배다. 세인트루이스의 올리버 마몰 감독이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다. 우리는 진짜 '전설'을 보고 있다"고 감탄한 이유다. 팀 동료인 투수 호세 퀸타나 역시 "푸홀스의 활약을 보면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제 MLB 역사에서 푸홀스보다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본즈(762개), 행크 에런(755개), 베이브 루스(714개) 밖에 없다. 푸홀스가 남은 시즌에 통산 700홈런을 채운다면, MLB 역대 네 번째 대기록이 탄생한다. 푸홀스는 "내 커리어는 '700홈런'이라는 기록 없이도 충분히 놀랍고 대단했다고 자부한다. 숫자와 관계 없이 예정대로 은퇴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놀랍고 대단한' 커리어에 700홈런의 훈장까지 추가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오타니 쇼헤이와 마이크 트라웃
오타니는 개인 최고 시즌을 예약한 저지의 트로피 수집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오타니의 소속팀 에인절스와 저지의 소속팀 양키스는 AL 서부지구와 동부지구에 각각 소속돼 있다. 저지가 AL MVP에 오르려면 오타니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오타니는 9월 16일까지 올 시즌 홈런 34개를 쳤다. 홈런 수로는 저지에게 명함을 내밀 수 없다. 다만 오타니에게는 'MLB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엄하는 유일무이한 선수'라는 최고의 무기가 있다. 올 시즌 투수로 이미 10승을 넘어섰고, 평균자책점 2점 대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지난해에도 MLB 역사상 최초로 100이닝 투구-100탈삼진-100안타-100타점-100득점을 동시 달성하면서 만장일치로 AL MVP에 올랐다. 홈런 48개를 친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도 만화 같은 활약을 펼친 오타니에 밀려 1위 표를 한 장도 받지 못했다. 오타니는 올해 지난해보다 더 좋은 활약으로 2년 연속 수상을 노리고 있다.
오타니는 투타에서 모두 강한 임팩트를 남기고 있다. 지난 1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 3회 2사 2·3루에서 카일 터커에게 시속 163km(101.4마일)짜리 직구를 던져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MLB닷컴은 "그 공은 MLB가 투구추적시스템(PTS)을 공식 도입한 2008년 이후, 에인절스 소속 투수가 던진 가장 빠른 공"이라고 전했다.
이튿날인 12일에는 2번 지명 타자로 선발 출장한 뒤 1회 무사 3루에서 휴스턴 선발 투수 루이스 가르시아의 커브를 걷어 올려 시즌 34호 홈런을 때려냈다. 공이 배트에 맞은 직후 오른팔 하나로 끝까지 스윙을 유지해 담장을 넘겼는데, 이 타구는 시속 162km(100.5마일)의 속도로 118m를 날아갔다. 오른팔로 하루는 최고 시속 163km의 광속구를 뿌리고, 하루는 시속 162km의 총알 같은 홈런을 터트린 것이다. USA 투데이는 "한 손으로 홈런을 치는 오타니를 보고 MLB 팬들은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MLB 네트워크는 "이 홈런을 통해 오타니가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 같다"고 감탄했다.
오타니의 팀 동료인 마이크 트라웃(31)도 기록적인 홈런 행진을 펼치면서 "에이징 커브(나이가 들면서 실력이 하락하는 현상)에 돌입했다"는 우려의 시선을 떨쳐냈다. 그는 지난 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부터 13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까지 7경기 연속 홈런을 터트려 데일 롱(1956년), 돈 매팅리(1987년), 켄 그리피 주니어(1993년)가 공동 보유한 MLB 최다 연속 기록(8경기)에 한 개 차까지 접근했다. 비록 14일 클리블랜드전에서 홈런을 치지 못해 연속 경기 기록을 '7'에서 멈췄지만, 트라웃의 건재와 존재감을 알리기엔 충분했다. 동시에 트라웃은 오타니를 제치고 팀 내 홈런 1위 타자로 복귀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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