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우리가 점찍은 선수 모두 지명돼 어쩔 수 없는 선택”…야구 커뮤니티 ‘응원 보이콧’ 글 잇따라
9월 15일 2023 KBO 신인 드래프트는 한 선수가 호명되는 순간 모든 이슈가 묻혀 버렸다. 1라운드에 지명된 10명의 선수들보다 2라운드 전체 19번째로 지명된 고려대 김유성이 본의 아니게 이번 드래프트의 중심에 섰다. 김유성은 중학교 시절의 학교폭력(학폭)으로 인해 2년 전 NC 다이노스가 지명했다가 철회한 이력이 있다. 이후 고려대에 진학했고, ‘얼리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2학년 신분으로 이번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김유성을 지명한 팀은 두산 베어스다. 2023 KBO 신인 드래프트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본다.
2라운드 전체 19번 지명권을 가진 두산 베어스가 선수 호명 전 타임(2분)을 외쳤다. 윤혁 스카우트 팀장이 옆에 자리한 김태룡 단장과 대화를 나눈 끝에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두산 베어스는 고려대”하는 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거론된 김유성의 이름이 불린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김유성은 2020년에 진행된 2021 KBO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NC 다이노스에 1차 지명됐지만 내동중학교 3학년 때 저지른 학교폭력(학폭) 문제로 지명이 철회됐다. 학폭 이후 김유성은 교내 학교폭력위원회로부터 출석 정지 5일과 이듬해인 2018년 창원지방법원으로부터 20시간 심리치료 수강과 4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또한 2020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1년 출전 정지 처분까지 받은 선수였는데 NC가 ‘야구를 잘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지명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자 철회한 것이다. 1차 지명 역사상 구단이 지명을 포기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프로 진출이 막힌 김유성은 고려대 입학 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KBO가 2023 신인드래프트부터 4년제(3년제 포함)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선수의 드래프트 참가를 허용하면서 김유성은 2년 만에 다시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었다.
신인드래프트를 앞둔 전날인 14일 밤, KBO는 각 구단에 김유성의 1라운드 지명이 불가하다는 공문을 보냈다. 김유성이 2년 전 NC 지명을 받았다가 철회된 것과 관련해서 KBO 규약 제114조 [계약교섭권의 포기, 상실 등] 3항에 명시된 ‘구단이 여하한 사유로든 계약교섭권을 포기하거나 상실하여 당해 신인선수가 다시 지명절차를 거치는 경우 어느 구단도 당해 신인 선수를 1라운드에서 지명할 수 없다’는 조항에 근거한 내용이었다.
김유성은 실력만으론 프로팀 스카우트들로부터 1라운드 지명이 가능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올 시즌 대학리그 12경기에 등판, 5승 2패 평균자책점 3.15를 기록했는데 한 구단 스카우트는 “1라운드 1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서울고 김서현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선발 투수인 데다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카우트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김유성이었지만 학폭 이슈와 부정적인 여론은 지명 자체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무엇보다 김유성은 학폭 관련 징계를 모두 소화했지만 피해자와 합의를 이루지 못 했다. 이 부분은 모든 구단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내용이었고, 두산보다 앞서 지명권을 행사한 구단들이 김유성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다. 그런데 두산이 2라운드에서 김유성을 호명한 것이다.
더욱이 두산은 학폭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팀의 선발 투수로 활약한 이영하가 선린인터넷고 시절 김대현(LG)과 함께 학폭에 연루된 문제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현역 프로야구 선수가 학폭 문제로 재판을 받는 사례 또한 전례가 없었다. 이영하, 김대현의 기소로 인해 김유성의 지명은 더 어려워졌다는 게 야구계 분위기였다. 두산은 이영하의 기소가 있음에도 또 다시 학폭 이슈가 있는 김유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15일 드래프트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유성의 학폭 이슈와 관련해서 지명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일단 선수를 만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한 다음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내용을 밝혔다.
두산의 한 관계자는 일요신문i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유성 지명 배경으로 2라운드에 세운 예상이 빗나가는 바람에 김유성 카드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두산의 지명 순서가 10개 팀들 중 아홉 번째다. 2라운드부터 김유성을 지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앞 순서에 김유성이 지명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우리한테 까지 기회가 온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명하려고 점찍었던 선수 2명이 모두 앞에서 지명되는 바람에 마땅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 팀 전략이 투수력 보강이었던 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유성 관련해서 A 팀의 B 스카우트 팀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도 스카우트 내부에선 김유성에 대해 좋은 평가가 많았다. 특히 오른손 투수가 필요한 터라 고민이 됐다. 하지만 그룹 고위층에서 팀 색깔과 맞지 않는다며 김유성 지명을 배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지금은 야구 실력만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인성이나 생활 태도 등 여러 가지가 고려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유성은 우리 팀과 맞지 않다고 봤다.”
드래프트 지명에 참여했던 또 다른 팀의 한 관계자는 “프런트에서 베테랑인 김태룡 단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명이었다”면서 “우리 팀 단장이 김유성을 지명했다면 팬들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홍보팀에 김유성을 지명했을 경우에 대비해 보도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지명했을 경우 김유성이 학폭 관련해서 모든 징계를 소화했고, 앞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없을 거라는 판단에 지명을 강행했으며 김유성이 팀에 합류한 이후엔 구단에서 철저한 교육을 통해 프로다운 선수로 성장시키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김유성에 대해 관심이 컸지만 그 구단도 드래프트 앞두고선 최종적으로 김유성을 지명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두산은 김유성 지명 후 엄청난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야구 커뮤니티에는 더 이상 두산을 응원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두산이 이러한 후폭풍을 예상 못한 건 아닐 터. 지명 후 전개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에 ‘폭탄’으로 비유된 김유성 카드를 수용했을 것이다.
이번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들이 김유성 이슈로 인해 존재감을 잃었다. 1라운드에 지명된 북일고 최준호도 마찬가지다. 일부 야구 팬들은 두산이 학폭과 관련된 이영하와 김유성을 보유했다면서 두 선수를 가리켜 ‘원투펀치’라고 비아냥거린다. 두산 입장에선 뼈아픈 현실과 마주한 셈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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