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자연이라는 놀이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와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생태 시인 최계선 씨의 철학을 만난다.
"제가 잘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어머님 놀이터로 이 공간을 마련한 일이에요. 덕분에 어머니하고 여기에서 얘기를 많이 나눠요."
강원도 춘천 어느 산자락에 숨겨진 들판이 있다.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주변 이웃의 땅과 달리 이곳에선 사시사철 꽃이 핀다. 최계선 씨(60)는 8년 전 흙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200여 평의 작은 땅을 마련했다.
어머니는 이곳에 옥수수 한 줄, 부추 조금, 고추, 오이 등 채소 모종을 마치 소꿉놀이하듯 서너 개씩 재미로 심고 나머지는 꽃씨를 흩뿌려 자연 그대로 자라나게 두었다. 어느새 코스모스는 어머니의 키보다 더 높게 자라나고 방울방울 더덕꽃이 피었다.
꽃을 보고 벌과 나비, 방아깨비 등 온갖 곤충이 어머니의 들판으로 날아든다.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막내아들이 선물해준 놀이터에서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것도 잊고 한 걸음 한 걸음 식물들을 돌보고 그런 어머니 곁에서 최계선 씨도 자연을 온몸으로 느낀다.
어머니가 이곳에 계시니 어머니를 보러 최계선 씨 누나가 찾아오고 아내도 이곳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꽃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쉼터는 온 가족의 쉼터가 되었다.
어머니의 쉼터가 작물을 키우는 텃밭이 아닌 꽃과 풀이 아무렇게나 자라고 피어나는 들판으로 둔 데는 최계선 씨의 자연철학에 가족들이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 작물만 심으면 꽃이 한 시기에만 피고 지기 때문에 벌과 나비 등 많은 곤충의 보금자리가 없어지고 그것은 결국 생태계 먹이사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그마한 땅이지만 이곳을 자연 그대로 두었더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날아온 꽃씨가 발아해 꽃을 피우고 그 꽃을 보고 온갖 곤충들이 날아들고 곤충을 먹기 위해 개구리와 새가 찾아든다.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쉼터는 자연 속 여러 생명체의 안식처가 되었다.
최계선 씨가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온 것은 20여 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에게 문득 누군가 건넨 한마디 "오늘 하늘이 참 좋죠"였다. 언제 하늘을 봤는지 계절이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 채 살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고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때로는 비 맞는 봉선화꽃이 되어보고 때로는 연못에서 노니는 개구리가 되어보면서 시인은 동물과 식물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시로 건넨다. 자연은 시인에게 세상 최고의 스승이 되어주고 있다.
어머니는 산을 바라보며 자연을 담은 그릇을 떠올리고 시인은 그 곁에서 꽃과 나무, 생명들을 한없이 보고 또 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가꾸지도 않은 볼품없는 들판일지 몰라도 시인과 그 가족들에게는 의미있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저 평범하고 느리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은 각박한 시대 시인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려 한다.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계절이 지나면 또 지나는 대로, 내 존재가 자연에 거슬리지 않고 스며들기를 시인은 바랄 뿐이다. 어머니의 들판에는 오늘 또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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