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 어미 새가 둥지를 만들어놓은 것처럼 아늑하게 생겼다 해서 '조(鳥)침(寢)리'라고 불리는 마을. 그곳엔 16년 전 귀농해 손수 농장을 가꾸며 사는 남경희(65), 경연숙(61) 부부가 있다.
1만 6000㎡(약 5000평) 대지에 정성껏 심어놓은 나무만 130여종, 그리고 농장 곳곳을 누비는 60여 마리의 동물 식구들 덕에 365일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개와 고양이는 기본 닭과 칠면조에 유산양까지 종류도 개성도 제각각인 동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동물들끼리 사이가 좋아서 지금껏 사고 한 번 난 적 없단다. 하지만 평화로운 농장에서도 동물들 간 서열 정리는 자연의 섭리다.
서울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20년 동안 단 5일만 문을 닫았을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경희 씨 부부. 이들이 포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건 아프리카 여행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로 사진촬영여행을 떠났던 경희 씨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밝게 웃는 원주민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그 후로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인생 후반전의 노선을 과감하게 바꿨다.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내려왔지만 귀농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동물들이 하나 둘 늘 때마다 닭장 횃대 설치며 유산양의 발굽 깎는 방법까지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가장 아픈 손가락은 6개월 전에 식구가 된 행복이. 카페를 하던 지인이 유기견이었던 행복이를 키우다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산책이 어려워져 경희 씨 부부가 맡게 되었는데 전 주인이 산책을 자주 시켜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간식을 챙겨주다 보니 살이 많이 찐 상태였다.
행복이를 데려오자마자 다이어트를 시키기로 결심한 경희 씨. 시간이 날 때마다 행복이와 함께 농장 한 바퀴를 도는가 하면 최근엔 원반던지기도 시작했다.
경희 씨에게 반려견 행복이가 있다면 아내 연숙 씨에겐 고양이들이 있다. 마당에서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하고 유산양의 젖을 데워 먹여 키웠을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고양이가 바로 윙키와 솔이, 복이, 은행이. 따뜻한 마음이 통했는지 연숙 씨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니는 껌딱지가 됐다.
점점 활동량이 많아지는 고양이들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경희 씨. 통 크게 정자 하나를 캣타워로 꾸며주기로 했는데 그의 설계 원칙은 재활용이다. 낡은 항아리로 숨숨집을 만들고 안 쓰는 사다리로 다리를 놓아주니 근사한 놀이터가 완성됐다.
농장 가꾸랴 동물 돌보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부부에게도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소나무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트리하우스에 올라가 16년 간 일궈온 농장을 내려다보면 이보다 더 완벽한 파라다이스가 없다고. 부부가 꿈꾸는 제2의 인생, 눈부신 황혼을 만나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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