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외화 유출 가능성에 가계부채 뇌관…정부, 부동산 활성화보다 집값 안정에 무게
국내에서도 경제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역수지 악화와 함께 환율이 급등하며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자 정부는 외환보유고까지 동원해 원·달러 환율 1400원 선을 지키는 모습이다. 금리가 급등하며 민간의 빚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불패신화’를 자랑하던 부동산도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깡통전세’가 급증하고 경매 시장에서는 급매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점검해 봤다.
#또 외환위기?…외환보유액 충분한가
8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64억 3000만 달러로 7월 말보다 21억 8000만 달러 줄었다. 국가신용 위험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7월 이후 하락세이고, 경상수지도 흑자여서 외환에는 아직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은 7월 말 기준 27% 수준이다. 스위스(129%)·홍콩(129%)·대만(91%)보다 훨씬 낮다. 올해 2분기 단기 외채 비율은 41.9%로 10년 만에 최고치다. 빠른 시간 대규모 외화가 유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올해 급격히 줄면서 환율시장 방어 능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며 “외환보유액만으로 수입 대금을 충당할 수 있는 기간은 한국 8개월, 인도 9개월, 인도네시아 6개월 정도”라고 전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등으로 달러 부족에 대한 우려를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불황 못 피한다?…가계소비, 빚에 발목 잡힐 수도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9조 4000억 원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1001조 4000억 원이다.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부실이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6월 말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0.41%로 1분기 말(0.45%)보다 0.03%포인트(p) 감소했다. 부실에 대비해 준비하는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205.6%로 3월 말보다 오히려 24%p 상승했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안전장치 덕분에 당장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금리상승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물가 급등에 이자부담까지 계속 커지면 가계 소비는 빠르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가계부채가 고물가·통화긴축과 맞물려 경제 취약성을 높이고 내수 경기를 짓누를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내년 GDP 성장률 전망을 2.5%에서 2.2%로 낮췄다.
#집값 폭락 조짐?…‘깡통전세’ 급증
KB부동산의 ‘월간 KB 주택 통계’를 보면 8월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0.14% 떨어졌다. 2019년 7월 이후 3년 만에 전국 가격 지표의 하락 전환이다. 집값이 하락해도 LTV를 하회하는 수준까지 추락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같은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하지만 집값 하락으로 전세를 끼고 산 ‘갭투자자’들이 금리 상승으로 높아진 차입비용 부담을 줄이려 급히 물건을 처분할 가능성이 크다. 집값이 전세가를 밑도는 ‘깡통전세’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최근 3개월 기준 아파트 전세가율은 전국 74.7%·수도권 69.4%·비수도권 78.4%다. 빌라는 전국 83.1%·수도권 83.7%·비수도권 78.4%로 나타났다. 최근 서울에도 전세가율이 90%를 넘는 지역들이 등장하고 있다. 집값이 하락할수록 이 숫자는 더 높아지게 된다.
다만 최근 주택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유의미한 실거래가 정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깡통전세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확인하려면 거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회복될 필요가 있다.
#정부 “부동산발 위기는 없다”
집값은 하락하고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라도 매매가 이뤄지려면 세금·대출·거래(전매) 등의 정부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집값이 하락하자 박근혜 정부에서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서 내수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부동산 시장 활성화보다는 집값 안정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21일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세종시를 제외한 지방 전체를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했다. 경기에서는 안성·평택·파주·동두천 등 외곽 5개 지역만 포함됐다. 세종시와 인천 일부는 투기과열지구에서만 벗어났다.
최근 정부는 15억 원 이상 고가주택에 대한 주담대 금지를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 서울과 수도권 등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의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15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한 주담대 금지를 풀어도 실효성이 없다. 부동산 발 경제 위기 가능성은 아직 없다는 정부 판단이 거듭 확인된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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