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강화 위한 결정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양측 “사업 파트너십 강화 외 다른 목적 없다”
현대차그룹과 KT는 지난 7일 사업 파트너십 강화를 위해 75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했다. KT는 현대차 지분 1.06%(4456억 원)와 현대모비스 지분 1.49%(유통 의결권 지분 기준, 3003억 원)을 확보하고, 이들 회사는 KT 지분 7.7%를 확보하게 된다.
자동차 업계가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면서 통신사와의 사업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사례는 많다. 자율주행차는 차량의 연결성 증가로 데이터를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는 첨단 통신망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KT와 자율주행에 최적화된 6G 통신규격을 공동개발 해 초격차 기술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내 통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위성을 가지고 있는 KT와 위성통신 기반 AAM(Advanced Air Mobility, 미래 항공 모빌리티) 통신망 선행 공동연구 등을 진행한다. 아울러 차세대 통신 인프라와 ICT(정보통신 기술) 분야에서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이들의 협력관계에 다른 시각도 있다. 서로에게 백기사 역할을 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오너일가나 경영진 입장에서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매각하면 그만큼 의결권이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경영권을 강화했다고 볼수 있다는 의미다.
두 회사 모두 우호 세력이 필요한 시점인 점도 이 같은 의구심에 힘을 실는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 중이다. 투자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2020년 회장직에 오른 정의선 회장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는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에 핵심 계열사로 거론되는 회사다.
앞선 2018년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존속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해 사업회사를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23.29%)이 높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려고 했다. 이후 기아차가 가지고 있던 현대모비스 지분과 정의선 회장이 가지게 되는 현대글로비스·사업회사 합병법인의 지분을 맞교환하려고 했지만 당시 주주의 반대로 무산됐다.
만약 당시 시나리오대로 지배구조가 개편됐다면 정의선→현대모비스 존속회사→현대글로비스·사업회사 합병법인→현대차→기아로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현대모비스의 몸집이 인적분할로 축소되면 기아차가 가지고 있는 현대모비스 존속회사 지분 가치가 줄어 현대글로비스·사업회사 합병법인 지분을 넘기고 현대모비스 존속회사 지분을 받는 정의선 회장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현대모비스의 지분 향방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KT가 확보한 현대모비스 지분 1.49%를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이면 특별결의를 저지할 수 있는 지분 33.4%를 넘어선 점이다. 현재 기준 유통되는 의결권이 있는 유통 주식은 9242만 7278주다. 이 가운데 오너일가를 포함한 현대차그룹이 확보한 현대모비스의 우호지분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31.38%(2967만 3324주)다. 여기에 KT의 지분율 1.49%를 더하면 33.59%로 지분율이 오르게 된다. 특별결의가 통과되기 위해서는 지분의 3분의 2가 필요한데 현대차 오너일가 측은 특별결의가 올라오더라도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2018년 상황과 유사하게 흐르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핵심 사업부들(모듈, 핵심 부품)을 분할해 법인 2개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향후 몸집을 줄인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KT가 현대모비스 주주로서 어떻게 의사 결정을 단행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KT도 현대차그룹을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여 구현모 대표의 입지가 강화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KT는 이른바 ‘주인이 없는 회사’다. 최대주주는 10.87%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선택이 중요하다.
다만 지난 3월 KT와 국민연금은 각을 세운 바 있다. 당시 열린 주총에서 KT가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내놨지만 국민연금 반대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구현모 대표의 연임도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KT는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낮추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월 지분 맞교환을 통해 신한금융그룹(5.48%)을 주요주주로 올린 데 이어 현대차그룹에게 7% 대의 자사주를 넘기면서 10%대 지분율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의 지분율을 상회했다. 새롭게 편입한 이들 주요주주가 기존 KT 이사회의 백기사 역할을 해준다면 구현모 대표가 무난하게 연임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회삿돈으로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를 하는 모양새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의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에 있어 회사 발전을 위한 사업적인 파트너십도 중요하지만 오너일가나 경영진이 자신의 입지를 줄이면서 진행하는 파트너십 강화는 없다”면서 “다만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개인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지분을 맞교환했다는 점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식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자사주를 매각하는 것은 신주를 발행하는 것과 같다”면서 “이는 지분 희석에 따라 지분 가치가 훼손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법인은 주주들이 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자사주 교환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현대차그룹과 KT의 자사주 맞교환 사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당 사례가 각사 경영진의 경영권 강화로 보는 시각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이는 회사의 장래 사업 기회를 자신의 경영권 유지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치 않아 보인다”면서 “다만 현행법상 이를 제재할 근거가 없어 관련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KT 관계자는 “이번 현대차그룹과의 지분 맞교환은 서로간 파트너십 강화가 목적이다. 구현모 대표의 경영권 강화와는 무관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양사 파트너십 강화를 위해 자사주를 맞교환하게 됐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는 무관하게 결정된 사안이다”라고 답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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