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행 극화한 전요환 목사 설정은 허구…강인구 황당한 ‘전화 청혼’ 스토리는 사실
‘수리남’은 작품 외적으로도 연일 이슈가 불거진다.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돼 인기를 끌자, 수리남 정부는 마약 생산국으로 자국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제작사 측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또한 국내 기독교계는 극 중 마약왕의 직업이 목사로 설정된 것을 두고 ‘왜곡된 종교관’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실존 인물의 근황이 궁금증을 일으키고, 작품의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언급되는 상황은 그만큼 ‘수리남’이 화제라는 뜻이다.
#평범한 사업가가 국정원 비밀 작전을?
‘수리남’은 2000년대 후반 남미 수리남에서 마약왕으로 통한 조봉행을 국정원과 협력해 검거한 사업가 K의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조봉행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수리남에서 활동한 마약 밀매범이다.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수리남에서는 조봉행을 검거할 수 없었던 국정원은 그를 수리남 인근 국가로 유인해야 했고, 이 작전을 일반인 K에게 맡겼다. 실제로 K는 2009년 조봉행을 수리남에서 브라질로 유인하는 데 성공해 국정원의 검거를 가능케 했다.
드라마를 이끄는 양대 축은 하정우가 연기한 사업가 강인구와 황정민이 맡은 가짜 목사 전요환이다. 각각 K와 조봉행을 극화한 인물들.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약간의 설정을 바꾸긴 했지만 두 명의 캐릭터는 실존 인물이 처한 상황을 대부분 그대로 따랐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영화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부 실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에서 ‘수리남’을 향한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수리남’을 함께 기획한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이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은 국정원 비밀 작전의 주인공인 K다. 제작진은 서너 차례 K를 만나 사건 당시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본을 완성했다. 윤종빈 감독은 K의 첫인상에 대해 “마치 군대 하사관처럼, 진짜 군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돌이켰다.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평범한 일반인이 대체 어떤 용기가 있어서 3년 동안 마약왕 옆에 몰래 잠입해 국정원 비밀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다. 이와 관련해 윤종빈 감독 역시 “무슨 ‘깡’으로 그런 작전을 해냈을까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은 K를 만나자마자 바로 풀렸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납득할 수 있었다”고 밝힌 윤종빈 감독은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사람의 느낌을 받았다”고 돌이켰다.
드라마에서 하정우는 친구의 제안으로 수리남에서 잡히는 홍어를 싼값에 국내로 들여오는 사업을 하다가 목사로 위장한 황정민과 인연을 맺는다. 홍어에 몰래 마약을 넣은 황정민의 범죄 행각으로 마약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갇힌 하정우에게 국정원 요원이 찾아와 비밀 작전을 제안하는 설정이다. 큰 틀은 실제 사건과 같지만 세부 설정은 조금씩 다르다. K는 친구의 제안으로 수리남에서 선박용 특수용접봉 판매 사업을 하다가 조봉행과 엮였다. 현지 판매를 중개하던 조봉행이 대금을 주지 않자, K는 수리남을 담당하는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으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고 비밀 작전을 맡게 됐다.
실제 K가 수행한 비밀 작전은 드라마에서 하정우가 펼친 작전만큼이나 극적이다. 조봉행 조직에 잠입하기 위해 차이나타운에 들어가 무시무시한 중국 갱들과 일부러 싸우기도 했다. 사실 K가 겪은 상황이 너무 극적이라 제작진은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해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각색하는 과정을 거쳤다. 다시 말해 실제 K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상황을 겪었다는 의미다.
드라마를 위한 설정으로 보이는 대목 가운데 실제 K의 사연인 경우도 있다. 극 중 하정우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이 된다. 동생들을 건사하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여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대뜸 결혼하자고 청혼하는 이야기는 제작진이 만들어낸 설정 같지만 사실 K의 실제 결혼 스토리다. 카센터를 하면서 부업으로 노래방을 운영한 것, 미군 부대에 납품하는 일을 해서 영어 소통이 가능한 것 역시 K의 진짜 사연이다.
#낯선 남미 국가에 한국인 마약왕?
‘수리남’이 공개되기 전까지 조봉행이라는 인물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수리남이라는 국가 자체도 낯선 데다, 현지 마약 밀매를 장악한 인물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놀라움을 안긴다. 때문에 드라마 공개 직후 조봉행의 행적을 추적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조봉행은 1994년 국내서 빌라 건축 관련한 사기 행각을 벌여 약 10억 원을 가로채 수배 상태에 놓였다. 과거 수리남에서 선박 냉동기사로 일했던 그는 수배 도중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한 그가 처음부터 마약 유통에 손을 댄 것은 아니다. 처음엔 생선 가공공장을 차려 면세유를 밀매하다가 마약 유통까지 장악했다.
반면 드라마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전요환의 설정은 조금 다르다. 국내서 마약 유통을 일삼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수리남으로 도주해 목사로 신분을 위장한다. 평범한 신도들에게까지 마약 유통을 맡기는 극 중 내용은 허구다. 전요환의 직업을 목사로 설정한 것은 감독의 ‘계산’이다. 윤종빈 감독은 실화 배경인 ‘수리남’에서 가장 큰 각색 포인트로 ‘목사 설정’을 꼽았다. “K가 혼자 사업을 하러 갔을 때부터 조봉행과 같은 집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그 부분이 영화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다”는 윤 감독은 “어떻게 속는 게 가장 극적일까. 직업으로 권위를 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종교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수리남’에서는 신도들을 마약 밀매에 동원하지만, 실제로 조봉행은 평범한 교민이나 주부들을 속여 마약 운반책으로 끌어들였다. 보석 원석을 운반해주면 목돈을 주겠다는 수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범죄에 연루됐다. 2004년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돼 2년 동안 현지 교도소에 복역한 주부 장미정 사건의 배후 역시 조봉행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2013년 전도연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봉행은 현재 어떤 처지에 놓였을까. 2009년 7월 23일 브라질 상파울루 과룰류스 공항에서 붙잡힌 조봉행은 2011년 국내로 압송됐다. 징역 10년형, 벌금 1억 원을 선고받고 전남 해남교도소에서 복역하던 그는 2016년 4월 심부전과 고혈압으로 광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숨졌다.
#수리남이 발끈한 이유
‘수리남’이 공개되자 수리남은 넷플릭스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드라마에서 수리남을 ‘마약국가’로 묘사해 국가 정체성을 왜곡하고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부 장관은 9월 13일 현지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수리남 국민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일까봐 걱정된다”라고 밝혔다.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힌 이후 수리남 정부의 후속 대책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역시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다만 현지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혹시 퍼질지 모를 혐한 정서를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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