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최동원·이종범·이승엽 ‘톱4’…투수 15명으로 가장 많고 외국인 선수는 니퍼트·우즈 두 명뿐
#선동열·최동원, 불멸의 원투펀치
최초로 공개된 1~4위 레전드는 '국보' 선동열, '무쇠팔' 최동원, '바람의 아들' 이종범, '라이언 킹' 이승엽이다. 선동열은 전문가 투표 156표 중에서 155표(79.49점), 팬 투표 109만 2432표 중 63만 1489표(11.56점)를 받아 총점 91.05로 1위에 올랐다.
선동열은 명실상부한 KBO리그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힌다. 1985년 해태(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1995년까지 통산 367경기에서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탈삼진 1698개를 기록했다. 11시즌 중 5차례(1986·1987·1992·1993·1995)나 0점대 평균자책점을 남겼고, 7년 연속(1985~1991)을 포함해 8번이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가져갔다. 특히 1993년 기록한 0.78은 역대 한 시즌 최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선동열은 1995년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33세이브(평균자책점 0.49)를 올린 뒤 임대 선수로 일본 프로야구(주니치 드래건스)에 진출했다. 이후 일본에서도 정상의 마무리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1999년 은퇴했다.
최동원은 전문가 투표에서 유일하게 156명 전원(80.00점)에게 표를 얻었다. 팬 투표에서도 54만 5431표(9.99점)를 확보해 총점 89.99로 2위에 올랐다. 최동원은 1984년 51경기에서 284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27승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 탈삼진 223개를 기록한 '철완'이었다. 무엇보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따내면서 롯데 자이언츠에 창단 첫 우승을 안겼다. 팀과 승리를 위해 마운드에 몸을 던진, '투혼'의 상징이다.
이종범은 전문가 투표에서 149표(76.41점), 팬 투표에서 59만 5140표(10.90점)를 얻어 총점 87.31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3년 해태에서 데뷔한 그는 공·수·주 모두 천재적인 야구 센스를 뽐내면서 단숨에 프로야구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특히 1994년에는 타율 0.393, 196안타, 113득점, 도루 84개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겼다. 한 시즌 도루 84개는 앞으로 누구도 깨지 못할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이승엽은 총점 86.55를 받아 근소한 차이로 이종범의 뒤를 이었다. 전문가 투표에서 149명(76.41점), 팬 투표에서 55만 3741명(10.14점)의 지지를 얻었다. 이승엽은 199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한 뒤 KBO리그 홈런의 역사를 대부분 갈아치웠다. 2003년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56개) 기록을 세웠고, 2015년 사상 최초로 통산 400홈런 이정표를 세웠다. 통산 홈런 수는 464개. 8년(2004~2011년) 동안 일본에서 뛰었는데도 이승엽을 따라잡을 홈런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국제대회에서 결정적인 홈런이나 적시타를 때려내던 '국가대표 4번타자'의 존재감도 독보적이다.
#'유일한 200승' 송진우부터 '최초 40홈런' 장종훈까지
이들의 뒤를 이어 ‘송골매’ 송진우, '타격의 달인' 장효조,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 '대성불패' 구대성, '아이언맨' 이강철, '홈런왕' 장종훈이 5~10위에 올랐다.
송진우는 KBO리그 역대 최다승 투수이자 유일한 200승 투수다. 통산 최다 승리뿐 아니라 최다 이닝(3003이닝)과 최다 탈삼진(2048개) 기록도 모두 그가 보유했다. 한화 이글스 한 팀에서만 뛰면서 200승-3000이닝-2000탈삼진을 모두 해낸 그는 마흔이 넘어서까지 리그 정상급 기량을 뽐낸 '자기 관리'의 상징이었다.
장효조는 불세출의 타격 능력을 앞세워 지난해까지 KBO리그 역대 통산 타율 1위(0.331) 기록을 지켰다. 당시 심판들은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라고 입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올해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통산 타율 순위 진입 기준(3000타석)을 채우고 새로운 1위로 올라서면서 장효조의 이름도 다시 한 번 세간에 회자됐다. 장효조는 2011년 9월 안타깝게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력질주의 대명사인 양준혁은 KBO리그 역대 최초로 통산 2000안타 고지를 밟은 주인공이다. 고향팀 삼성 팬들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아 대구에선 '양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010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당시 통산 최다 안타·홈런·타점·득점·루타·4사구 기록을 홀로 보유하는 위용도 뽐냈다. 지금은 이승엽(홈런·타점·득점·루타)과 박용택(안타)이 그 기록을 대부분 넘어섰지만, 통산 최다 4사구(1380개) 기록만은 한동안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구대성은 선발과 마무리로 모두 압도적인 기량을 뽐낸 스타플레이어였다. 특히 1996년에는 18승 3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의 놀라운 성적으로 다승, 세이브,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석권하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한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한 1999년 한국시리즈 MVP도 구대성이었다. 국가대표 시절엔 '일본 킬러'로 명성을 날렸고, 현역 시절 일본 프로야구(오릭스 블루웨이브)와 메이저리그(뉴욕 메츠)도 모두 경험했다. KBO리그에서 은퇴한 후엔 호주로 건너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역대 최초로 한국·미국·일본·호주 4개국 리그를 모두 경험한 선수가 됐다.
이강철은 KBO리그 역대 최고의 잠수함 투수다. 해태에서 데뷔한 1989년 15승을 시작으로 1998년까지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역대 최장 기록이다. 1995년 한국시리즈에선 2승(1완봉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해 MVP로 뽑혔다. 그는 레전드 40인 중 유일한 현역 프로야구 감독이기도 하다. 2019년 KT 위즈 사령탑에 오른 뒤 이듬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지난해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끌면서 구단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연습생 신화'의 원조인 장종훈은 KBO리그 최초의 단일 시즌 40홈런 타자다. 1986년 빙그레(현 한화)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뒤 홈런으로 리그를 평정했다. 당시 일본 야구만화의 한국판에 '4번 타자 왕종훈'이라는 제목이 붙었을 정도다. 그는 1990년부터 3년 연속 홈런·타점왕에 올랐는데, 이 기록 역시 리그 최초였다. 유격수로 뛰면서 홈런 타이틀을 가져간 선수 역시 아직까지 장종훈이 유일하다. 그는 1991년과 1992년 정규시즌 MVP로 선정되면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내야수는 12명 뽑혀
레전드 40인 중에선 투수가 15명으로 가장 많다. 최다 득표 1~2위인 선동열과 최동원을 포함해 베스트 10 안에만 총 5명이 이름을 올렸다. 또 단일 시즌 22연승 기록을 남긴 OB(현 두산) 베어스의 영웅 박철순(11위), 이글스 암흑기의 에이스이자 역대 오른손 최다승 투수인 정민철(13위), KBO리그에 마무리 투수의 개념과 가치를 정립한 '노송' 김용수(16위), 현대 유니콘스 왕조의 에이스이자 역대 유일한 포스트시즌 10승 투수 정민태(18위), 최초의 통산 100승 투수 김시진(20위), 김용수에 이어 통산 100승-200세이브를 달성한 임창용(21위), 해태 왕조의 '싸움닭' 조계현(26위), LG 트윈스 역사상 최고의 왼손 투수로 꼽히는 '야생마' 이상훈(27위), KBO리그 외국인 최다승 투수 더스틴 니퍼트(33위), 2000년대 중반 삼성의 투혼을 상징한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35위) 등이 포함됐다.
내야수 레전드는 12명 뽑혔다. 86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남긴 타격의 '팔방미남' 김태균(14위), 해태 창단 멤버로서 타이거즈 왕조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던 김성한(25위), 해태 왕조의 '해결사'이자 역대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한대화(28위), 국가대표 4번 타자로 한 시대를 호령한 '두목곰' 김동주(29위), '그라운드의 여우'로 통한 꾀돌이 유격수 김재박(31위), 롯데의 근성을 상징하는 '악바리' 박정태(32위), 공·수·주 모두 뛰어난 역대 최고의 2루수 정근우(38위), 긴 말이 필요 없는 '국민 유격수' 박진만(39위),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선수 중 역대 최초로 40홈런을 돌파한 '흑곰' 타이론 우즈(40위) 등이다.
외야수 8명도 쟁쟁하다. 역대 KBO리그 최다 안타(2504개) 기록을 남긴 '19년 LG맨' 박용택(15위), KBO리그에 30홈런-30도루 클럽을 개설한 '5툴 플레이어'의 상징 박재홍(17위), LG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인 '적토마' 이병규(19위), 프로야구 원년 4할 타율의 이정표를 남긴 백인천(24위), 두산·현대·삼성에서 모두 굵직한 족적을 남긴 50홈런 타자 심정수(30위), 통산 도루 549개에 빛나는 '전설의 대도' 전준호(34위), 호타준족의 대명사 이순철(37위)이 선정됐다.
3명뿐인 지명타자 안에는 7위 양준혁 외에 왼손 중장거리포의 원조인 '그라운드의 보스' 김기태(22위), 역대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최다 수상자(4회·2008~2011)인 홍성흔(36위)이 포함됐다. 40인 안에 든 포수는 2명이다. 초창기 삼성 타선을 이끈 '헐크' 이만수(12위)와 인천 야구의 영원한 안방마님 박경완(23위)이다. 둘 다 '포수 홈런왕' 출신이고, 특히 박경완은 유일하게 40홈런 고지를 밟은 포수였다.
#원클럽맨 17명, 영구결번 15명
프로야구 원년 스타는 5명이 포함됐다.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김재박이다. 박철순은 프로야구 첫해 24승을 올리면서 OB의 초대 우승을 이끌었고, 김성한은 창단 첫해 선수 수가 모자랐던 구단 사정상 투타를 겸업하면서 10승-10홈런이라는 투혼의 기록을 세웠다. KBO리그 명 유격수 계보의 시작인 김재박은 김시진, 한대화와 함께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 우승을 이끈 멤버였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8회 말 동점을 만든 김재박의 절묘한 '개구리 번트'는 여전히 한국 야구사의 대표 명장면 중 하나로 거론된다. 당시 김재박에 이어 타석에 섰던 한대화는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날려 우승의 주역이 됐다. '3점 홈런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그때 생겼다. 한대화와 김시진은 세계야구선수권을 마친 뒤 1983년부터 프로에 뛰어 들어 초창기 KBO리그의 인기를 견인했다.
40명 중 국내 리그에서 팀을 한 번도 옮기지 않은 선수는 총 17명이다. 그중 한화 출신이 5명(송진우·구대성·장종훈·정민철·김태균)으로 가장 많다. 4개국 리그를 섭렵한 구대성 외에 정민철(요미우리 자이언츠)과 김태균(지바롯데 마린스)도 2년간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하고 돌아왔지만, 세 선수 모두 KBO리그에선 한화 유니폼만 입었다.
LG, 두산, KIA는 각각 3명의 '원클럽맨' 레전드를 배출했다. LG는 김용수·이병규·박용택, 두산은 박철순·김동주·우즈, KIA는 선동열·이종범·김성한이다. 삼성 출신이 2명(이만수·이승엽), 롯데 출신이 1명(박정태)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들 중 이병규·선동열·이종범은 모두 KBO리그 친정팀 외에 일본 주니치 소속으로 뛴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대 KBO리그 영구결번 선수 16명 중에선 OB 김영신을 제외한 15명이 모두 레전드 40인으로 선정됐다. 리그 사상 첫 영구 결번(54번) 선수인 김영신은 1984년 LA 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으로 이듬해 OB에 입단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 1986년 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OB는 김영신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 지정했다.
이외 15명의 선수는 현역 시절 성적과 기여도를 바탕으로 영구결번의 영광을 안았다. 레전드 40인 선정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동열(18번), 김용수(41번), 이만수(22번), 박철순(21번), 최동원(11번), 장종훈(35번), 정민철(23번), 송진우(21번), 이종범(7번), 양준혁(10번), 박경완(26번), 이병규(9번), 이승엽(36번), 김태균(52번), 박용택(33번)이 그 주인공이다. 두 명뿐인 외국인 선수는 모두 두산 출신이다. 니퍼트(두산 7년·KT 1년)와 우즈(두산 5년)가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을 대표하는 투타의 간판 자격으로 4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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