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공대’가 아니라 ‘켄텍’
9월 21일 오전 전남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한국에너지공과대 앞,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삼삼오오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이동했다. 켄텍은 강의실과 행정동으로 사용하는 개교핵심시설(5200㎡)만 완공된 상황이다. 이 앞에는 풋살 경기장과 테니스 코트, 농구 코트 등의 체육 시설이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체육 및 동아리 활동을 한다. 21일 오후 4시경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모여 풋살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드론으로 항공촬영한 것에 따르면, 체육 시설 옆에 설치된 공사장 펜스 뒤로는 대운동장이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생 최 아무개 씨는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기존 대학교와 다르게 교수, 교직원, 학생들이 함께 교육 환경을 꾸려가는 기숙형 학교(RC) 시스템이라서 그런지 교수님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며 “체육대회 때는 ‘신입생 vs 교수님·대학원생’으로 팀을 나눠서 대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켄텍 교수들의 고액 연봉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지난 8월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전력공사(한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공대 석학교수 연봉은 평균 4억 원, 교수 2억 원, 부교수 1억 5000만 원, 조교수 1억 2000만 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년 국내 4년제 대학교 정교수 평균 연봉은 1억 2013만 원이었다. 한전이 비슷한 목적으로 설립한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KINGS) 연봉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었다. KINGS 정교수 평균 연봉은 1억 4400만 원, 부교수는 1억 1731만 원, 조교수는 9778만 원으로 켄텍보다 각각 3000만여 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을 과도하게 책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비판에 불만을 나타냈다. 수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교수들로부터 밀접하게 조언과 도움을 받는다며 상당히 만족감을 드러냈다. 학생 노 아무개 씨는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 이외에도 학업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계시다”며 “학생들은 언론에서 악의적으로 보도해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켄텍 측은 “세계 최고의 에너지 특화대학을 목표로 세계적인 교수진을 확보했다. 켄텍의 석학교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갖고 있으며, 모든 교원이 세계 에너지 산업을 리드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며 “이와 같은 배경으로 교수들의 연봉은 연구 성과와 경력을 고려해 산정했고, 교수 1인당 6억 원 이상의 연구과제 수주, 특허출원, 특허 외 IP(지식재산권) 창출 등 글로벌 최고 수준의 성과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교핵심시설 1층 켄텍홀에 들어서자 양쪽 벽에는 켄텍을 설명하는 포토월이 길게 설치돼 있다. 포토월에는 켄택 설립배경, 추진경과, 연구분야, 연구인프라확보, 대학교육과정 특징 등을 포함해 학교의 청사진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포토월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놔둬 휴식 공간을 조성해놨고, 커피 등 음료는 ‘stay 카페’에서 구매해서 마실 수 있었다.
2층은 4개의 강의실, 실습실, 다목적라운지, 스튜디오 2개, 교수연구실 2개 등의 강의시설로 구성돼 있었다. 부족한 연구실은 한전의 에너지신기술연구소 중 공동시험장(3300㎡)을 임차해서 이용하고 있다는 게 재학생들 설명이었다. 3층은 도서관, 스터디카페, 학생라운지 등이 있었다. 4층에는 행정실, 총장실 등 교직원 사무실로 조성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하 1층은 기계실, 발전기실, 창고 등으로 활용 중이었다.
장현규 총학생회장은 “강의실은 기존 대학의 강의실과 다르게, 토론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탐구기반학습(IBL) 수업에 맞도록 설계돼 만족도가 매우 높다. 불편한 점은 없다”며 “현재 강의실과 식당, 다목적 홀 등은 모두 현재 학부생 인원수보다 동시 이용 가능한 정원수가 많다. 타 종합대학 등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수가 많지 않은 만큼 공간의 활용에 대해 의견을 내고, 학생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켄텍은 에너지공학부 단일학부로 운영된다. 전공 선택은 없고 에너지 분야 중심으로 교육한다. 학생들은 △에너지AI △에너지 신소재 △차세대 그리드 △수소에너지 △환경·기후기술 등 5개의 필라(Pillar)를 자유롭게 오가며 원하는 강의를 수강한다. 학점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준다. 교과교육과정도 정해진 틀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교수와 함께 교과목의 목표, 활동 내역, 성과물, 평가 방법을 결정한다. 모든 수업은 탐구기반학습(IBL)으로 진행된다. 학생이 주제와 그룹을 구성하면 지도교수의 도움을 통해 그룹별 탐구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탐구 문제와 주제의 규모, 난이도 수준 등을 다르게 구성한다. 이는 미국 올린 공대의 GAPA(Goal-Activity-Products-Assessments) 수업설계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장현규 총학생회장은 “에너지공학은 모든 공학 학문의 집합체다. 켄텍은 전기공학과나 화학공학과의 내용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에너지공학의 국소적인 한 분야만을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생산부터 저장, 운송, 변환과 사용 과정까지 이르는, 밸류체인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것이 에너지공학”이라며 “다른 대학처럼 단과대학, 학과로 구분해서 전공별로 소속된 교수님들과의 상호작용만으로는 에너지공학의 융복합을 이뤄내는 것에 한계가 크다. 켄텍은 모든 방면의 교수님들과 그 경계를 허물고 상호작용하며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일반고 학생들은 바로 수업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학생 김 아무개 씨는 “과학고, 자율형 사립고 등의 출신 학생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해오던 수업 방식이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있어서 편해 보인다”며 “단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오던 일반고 학생은 이게 뭐지 하는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다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게 왜 중요하고 어떤 원리로 이뤄지는지를 깨닫는 건 좋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김 씨의 말이다.
“수업이 영어로 진행돼서 놓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절대평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과학고, 자사고 친구들이 수업 끝난 후에 한국어로 다시 가르쳐준다. 학점이 절대평가라 치열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학교 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을 학교에서 연결까지 해준다. 성적 우수한 학생들은 입학할 때 연구비도 지원해준다. 졸업할 때도 창업 지원금 등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켄텍을 두고 일각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안에 대선 공약을 지키고자 건물 한 동만 갖춘 채 무리하게 개교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켄텍은 문 전 대통령 2017년 대선 공약이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켄텍은 무상 등록금, 기숙사 생활비 지원과 장학금 혜택 등 파격적인 지원을 내걸어 초대 입학생 유치에 성공했다. 100명을 뽑는 수시 전형은 24 대 1, 10명을 뽑는 정시 전형은 9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3월 2일 켄텍은 세계 최초 에너지 특화대학으로 개교했고, 107명의 학부생과 49명의 대학원생이 입학했다. 9월 21일까지 자퇴생은 없다.
장현규 총학생회장은 “분명한 목표와 비전, 로드맵을 가지고 나아가는 그 길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에너지 산업의 중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가 산업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상처와 불안을 안겨 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에너지 분야의 적극적인 투자와 선제적인 인재 육성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일에 많은 응원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한상철 켄텍 기획처장은 “1기 신입생들에게 캠퍼스 추억을 초반에 제공하지 못한 안타까움은 있다”면서도 “학생들이 직접 스스로 참여해서 만들어내는 대학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원생 정원 미달 관련해서는 “모교생들이 학부 졸업 후 대학원으로 입학하는 2025년까지는 대학원생 정원 채우는 데 적극적이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켄텍은 기숙형 학교(RC) 시스템을 도입했다. RC는 학습과 생활이 통합된 창의적인 공동체 교육으로 미국 옥스퍼드, 미국 하버드 등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개교핵심시설과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에디슨 생활관에서 지낸다. 이곳은 기존의 부영CC 골프텔을 리모델링한 기숙사다. 재학생들은 골프텔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에디슨 생활관은 총 70실(39㎡ 34실, 46㎡ 36실)로 구성돼 있고, 2인 1실로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기존 부영컨트리클럽 건물은 테슬라 커뮤니티센터로 탈바꿈했다. 이곳에는 식당, 북카페, 세미나실, Wellness Center(헬스장) 등이 조성돼 있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탁구장에서 모여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북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공부하는 학생도 마주칠 수 있었다. 학생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삼시 세끼 식사도 맛있다고 전했다.
학생 전 아무개 씨는 “언론에서 안 좋게 보도하다 보니까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많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학교 시설 면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며 “건물이 다 안 지어진 사실은 모두 인지한 채로 입학했다. 에너지 산업이라는 비전과 목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드론으로 항공촬영한 결과, 아직 학생주거시설은 착공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개교핵심시설 뒤편 본관동(행정·강의동) 공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에디슨 생활관 규모론 내년 신입생들을 수용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숙사 공간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착공이 지연될수록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폭탄을 계속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켄텍은 국세인 종부세 100억 6300만 원과 지방세인 재산세 17억 3600만 원을 납부했다. 켄텍이 총 3단계로 나눠 오는 2025년까지 연차적으로 건축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통상 학교 부지는 종부세 비과세 대상이지만, ‘건설 중인 부동산’은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켄텍 측은 “종부세는 학교사업에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에 대해 면제하고, 건축예정토지면적은 과세이기 때문에 캠퍼스 전체가 준공되는 2025년까지는 부과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러나 한국에너지공대는 2021년의 세금부과에 대해 조세불복 심판 청구를 진행 중이며, 향후 부과될 종부세를 줄이기 위해 진행 중인 부대시설 등의 공사를 조기 준공하고, 앞으로 진행될 건설공사는 조기 착공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전 적자에 특혜 논란에…켄텍 지속가능성 물음표 찍히는 까닭
2017년 1월 23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켄텍) 설립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같은 해 7월 19일 문재인 정부는 켄텍 설립을 100대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이듬해 8월 켄텍 설립이 축소되고 연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전력공사(한전)의 간담회 과정에서 용역 중간보고서가 공개되면서다. 한전은 상반기 영업이익 적자로 인한 주주 반발과 설립비용 7000억 원 부담, 지역대학 반발 등을 켄텍 조기설립을 가로막는 애로사항으로 전달했다. 이에 2018년 9월 4일 전남도의회는 본회의에서 한전공대를 대통령 공약대로 설립하는 것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10월 11일 한전 국감은 전남 나주 한전 본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감이 나주에서 열리는 것은 지난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한전의 대규모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이 주요 쟁점이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에만 14조 3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하반기까지 총 30조 원의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석유·가스·석탄 등 국제 에너지 비용이 급등한 게 주요인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재무 상황은 켄텍의 지속가능성에 물음표가 찍히는 배경이다. 지난 8월 말 한전은 고강도 자구책을 골자로 한 재정건전화 계획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자구책은 자산 매각(1조 5447억 원), 사업 조정(2조 4765억 원), 경영 효율화(2조 2321억 원) 등을 통해 향후 5년간 14조 2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전은 2031년까지 켄텍 설립·운영비(1조 6112억 원)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켄텍은 최근 특혜설 논란에도 휩싸였다. 2019년 1월 6개의 켄텍 입지 후보지는 현장 실사를 거쳤고, 나주 부영CC가 최종 선정됐다. 당시 전남도와 나주시, 부영주택은 한국에너지공대 설립을 위해 3자간 협약서를 체결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부지 제공 약정서를 작성했다. 이는 부영그룹이 부영CC 골프장(40만㎡)을 켄텍 부지로 기부하는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논란의 발단이다.
9월 8일 전남도와 나주시가 3년 만에 부영주택 간 3자 협약서와 약정서를 공개했다. 약정서에는 기부하고 남은 골프장 35만㎡에 대해 ‘부영이 주거용지 확보를 위해 도시관리계획을 제안할 경우 전남도와 나주시는 주거용지 용적률(300%) 이내에서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부영은 용도가 변경된 골프장 부지에 5300여 가구의 아파트를 짓겠다며 나주시에 ‘도시관리계획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에 대해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순수 기부를 빙자해 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보장한 부당거래”라고 비판하고 있다.
켄텍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할 때 반대를 외치던 국민의힘 의원들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한 의원은 ‘이미 학교가 개교한 만큼, 잘 키워서 국가에 힘이 되도록 해야 된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만큼 부정적으로 학교를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나주=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