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케이블·종편·OTT에 5편 동시 방영…어느 때보다 관심 높지만 제살 깎아 먹기 우려
#법정물, 왜 빈번히 만들어질까?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최고 시청률 17.5%로 막을 내렸다. 이제 배턴은 KBS 2TV ‘법대로 사랑하라’, SBS ‘천원짜리 변호사’, 케이블채널 tvN ‘블라인드’, 종합편성채널 JTBC ‘디엠파이어: 법의 제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등이 이어받았다.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편, OTT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법정물에 몰두하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9월 초 방송을 시작한 ‘법대로 사랑하라’는 배우 이승기, 이세영이 주연을 맡았다. 과거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던 남녀가 각각 건물주와 세입자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법을 소재로 다루지만 법정이 주요 배경이 아니라는 점이 이채롭다. 여주인공 김유리가 운영하는 로(LAW) 카페를 배경으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법적인 조언을 해주며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9월 23일 첫 방송된 ‘천원짜리 변호사’에는 단돈 1000원만 받고 사건을 수임하는 괴짜 변호사가 등장한다. ‘흥행보증수표’라 불리는 배우 남궁민이 변호사 천지훈 역을 맡았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남녀 변호사의 대립과 협동을 그린다.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독종 변호사 노착희(정려원 분)와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별종 변호사 좌시백(이규형 분)이 함께 일하며 맞닥뜨리는 사건 속 숨겨진 진실을 추적한다.
이 외에도 ‘블라인드’에서는 하석진이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판사로 등장한다. 김선아, 안재욱 등이 주연을 맡은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은 대법관부터 로스쿨 교수, 검사, 변호사 등 법으로 쌓은 철옹성 안에서 욕망과 위선의 삶을 사는 법조인들의 스캔들을 그린다.
법을 소재로 했다는 측면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각 드라마는 각기 다른 결을 보여준다. ‘법대로 사랑하라’는 거대한 악에 맞서기보다는 층간소음, 친족의 아동학대 등 우리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변호사 수임료는 비싸다”는 편견을 깨고 1000원만 받고 사건을 맡는 엘리트 변호사가 그리는 판타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힐링과 위안을 준다. 이에 반해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은 대중이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법조계의 카르텔과 그들만의 세상 속으로 렌즈를 들이민다.
왜 이처럼 법정물이 자주 제작될까. 2018년에도 KBS 2TV ‘슈츠’, MBC ‘검법남녀’, tvN ‘무법변호사’, JTBC ‘미스 함무라비’ 등 법정물이 줄줄이 편성된 경우가 있다. 이는 극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대중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고, 촌철살인 법 해석을 통해 정의를 구현해내는 권선징악 구조가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판례가 많은 터라, 드라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구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법정물은 소위 ‘타율’이 높다. 한국 시청자들이 법정물을 선호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작 빈도 역시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4편 시청률 합계 '우영우'와 비슷
맛있는 반찬도 자주 먹으면 질린다. 하물며 비슷한 소재를 지닌 법정물이 범람하면 대중 역시 쉽게 싫증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수작을 통해 눈높이가 한껏 올라간 것도 다른 드라마 입장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법대로 사랑하라’의 시청률은 5~7%대다. 첫 회가 7.1%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5~6%에 머물고 있다. 반환점을 앞둔 시점이라 반등이 필요하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시작이 좋다. 1회가 8.1%를 기록한 후 2회는 8.5%로 상승했다. SBS의 전작 ‘오늘의 웹툰’이 시청률 1%대로 마무리됐지만 ‘천원짜리 변호사’가 이를 만회하고 있다. ‘블라인드’는 3.4%로 출발선을 끊은 후 2%대를 전전하고 있고,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는 2회에서 3%를 기록했다.
네 편의 드라마의 시청률 합계는 약 1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최고 시청률(17.5%)와 비슷하다. 결국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구축됐던 법정물에 대한 관심이 여러 드라마로 분산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방송가의 쏠림 현상은 결국 제살 깎아 먹기로 이어진다. 최근 법정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한때 의학드라마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거나 로맨스 코미디가 즐비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쉽게 기억에서 잊혔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작품 완성도 못지않게 대진운 역시 중요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걸출한 드라마가 탄생된 후라 법정물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정작 대동소이한 소재를 가진 드라마들끼리 맞붙으면 변별력 없는 출혈 경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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