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마 말뚝’ 뽑은 자리 설치·철거 반복, 7년 전 새로 세웠는데 태풍에 유실…한국산악회 “수색 계획 구상중”
9월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관통했다. ‘초강력 태풍’이란 예보에 한반도가 들썩였다. 경북 포항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힌남노가 쏟아낸 물폭탄에 큰 피해를 입었다. 힌남노가 한반도를 빠져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에도 많은 비가 내렸고, 강풍이 불었다. 그 과정에서 독도 동도 몽돌해변에 설치돼 있던 독도 표지석이 하나 사라졌다.
독도 표지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건 울릉군독도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 독도관리사무소 측은 9월 28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힌남노가 울릉도와 독도를 지나간 뒤 현지 근무 인력 2명이 독도로 복귀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몽돌해변에 있는 독도 표지석이 사라진 것을 인지했다”고 했다.
독도관리사무소는 사라진 표지석을 설치한 쪽에 연락을 취했다. 독도 랜드마크 중 하나로 꼽히는 표지석을 설치한 건 한국산악회였다. 한국산악회는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3년 10월 16일 독도 동도 몽돌해변에 독도 표지석을 세웠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민간단체가 세운 최초의 독도 표지석이다. 독도에 존재하는 표지석 중에 역사적 의미가 가장 깊은 표지석으로 꼽힌다.
표지석을 세우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3년 10월 정부는 일본과 외교마찰 등을 우려했다. 군이 직접 독도에 상륙하는 방안 대신 민간단체를 지원해 상륙을 돕는 방안을 택했다. 당시 독도 수호운동을 펼치던 한국산악회는 국토구명 학술조사 활동 차원에서 해군 함정에 몸을 싣고 독도로 향했다. 독도로 가는 바닷길에선 한국산악회원들이 탑승한 우리 해군 함정이 일본 순시선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953년 10월 15일 한국산악회 회원 16명은 독도에 상륙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한자가 적힌 나무 말뚝이었다. 1952년 5월 일본 어선이 독도에 들렀을 때 설치한 말뚝이었다. 말뚝엔 ‘시마네현 오치군 고케무라 다케시마’라고 적혀 있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세운 말뚝인 셈이었다.
한국산악회원들은 독도에 상륙하자마자 나무 말뚝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이튿날인 1953년 10월 16일 독도를 떠나기 전 구릉지대에 ‘독도 리앙쿠르(Liancourt)’라고 적힌 표지석을 세웠다. 한국이 세운 최초의 독도 표지석이었다. 이 표지석은 1주일 만에 철거됐다. 일본 측이 독도를 다시 방문해 해당 표지석을 철거한 까닭이었다.
해당 표지석은 세기가 바뀐 뒤에야 복원됐다. 2005년 일본 시네마현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하며 도발했다. 경상북도는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한국산악회가 1953년 세웠던 표지석을 복원했다.
하지만 경상북도가 복원한 표지석은 2008년 자진 철거됐다. 2008년 8월 미국의회 도서관이 독도를 지칭하는 장서 분류 이름을 ‘독도’에서 ‘리앙쿠르’로 변경하려는 소식이 전해진 까닭이었다. 한국산악회가 세운 표지석에 ‘리앙쿠르’라는 명칭이 병기돼 있어 문제가 제기됐다. 경북도청은 복원한 표지석을 철거했다.
2015년 7월 6일 한국산악회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도 Liancourt’ 대신 ‘독도 KOREA’라고 적힌 비석을 설치했다.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받은 뒤 원래 표지석이 있던 자리에 새 표지석을 세웠다. 그리고 7년이 지난 뒤 2022년 9월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이 표지석을 쓸어갔다. 표지석은 강풍으로 인해 바닷속에 잠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표지석을 세운 주체인 한국산악회가 다른 민간단체와 협력해 해저에서 표지석을 수색하는 작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워낙에 역사적 상징성이 큰 표지석이기 때문에 한국산악회에서 직접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국산악회 측은 9월 27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사라진 표지석을 다른 민간단체와 협력해 수색하는 것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표지석 재설치와 더불어 유실된 표지석 수색 관련 계획을 전면적으로 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산악회 관계자는 “2023년은 한국산악회가 독도에 상륙해 표지석을 세운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 기념행사를 성대히 치를 계획이었다”면서 “그런 과정에서 표지석이 태풍 힌남노로 인해 유실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고, 표지석을 다시 찾아내는 절차를 70주년 행사와 더불어 함께 추진하는 방안을 한국산악회 차원에서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산악회는 2021년 11월 동북아역사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과거 독도 상륙 관련 자료 등을 비롯한 산악회 활동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이번에 유실된 독도 표지석은 민·관이 협력해 독도 수호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했던 역사적 상징성을 이어받은 중요한 문화자산”이라면서 “태풍에 휩쓸려간 해당 표지석을 바다에서 찾아낸다면, 또 다른 역사적 상징성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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