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열린 부산 KT와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 KGC 오세근이 수비를 돌파하는 드리블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안양 KGC |
# 성실성·승부욕 막상막하
“거짓말 하나 없이 우열을 가릴 수 없다.” KT 전창진 감독이 머리를 긁적였다. 강력한 신인상 후보인 오세근, 김선형, 최진수 중 유력 선수를 선택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반응이다. 전 감독만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프로농구 감독들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다 잘해. 정말 누가 받을지 알 수 없어”가 답이다. 이 정도면 회피가 아니라 정말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신인인데 얼마나 잘한다고? 셋 다 ‘괴물’이다. 도대체 어떤 선수들이기에 ‘괴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까. 개인기록도 팀 내 차지하는 비중도 10년차 선배들 저리가라다. 세 명의 장점은 포지션별(오세근-파워포워드, 김선형-가드, 최진수-스몰포워드)로 특출하다는 것. 세 명 모두 별들의 축제인 올스타에 뽑혔다는 것만으로도 검증된 기량과 폭발적 인기의 방증이다.
신인상 선두 주자는 드래프트 1순위로 프로에 입성한 오세근이다. 개막 전부터 화제를 불러 모은 선수다. 52연승 신화를 이룬 중앙대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해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2011년 신인드래프트는 사실상 ‘오세근 드래프트’라 불렸다. KGC 이상범 감독은 오세근을 지명한 뒤 “리빌딩의 완성”이라고 소리치며 만세를 불렀다.
오세근은 파워포워드가 갖춰야 할 삼박자 이상을 갖췄다. 2m 신장에 105㎏의 무게감이 있다. 근육질 몸매로 국내 선수로서는 보기 드문 신체조건을 갖췄다. 넘치는 파워는 외국선수급. 스피드와 탄력도 뛰어나 같은 포지션 경쟁력에서 압도적이다. 탄탄한 기본기는 기본이고 신인답지 않은 센스와 침착함까지 겸비해 노련미까지 있다. 괴물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신인이다.
게임 당시 오세근을 지도했던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프로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세근은 17일 현재 38경기에 나서 평균 15.4점 8.4리바운드 1.2블록을 기록 중이다. 팀 내 리바운드 1위, 국내선수 득점 1위다.
오세근의 영향력은 소속팀의 성적으로 나타났다. 올 시즌 KGC는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며 정규리그 2위(27승11패)로 고공행진 중이다. KGC는 전신인 SBS가 프로 원년인 1997년 2위를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 15년 전 일이다. 최근 세 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탈락했고, 지난 시즌에는 9위에 머물렀다. 호화멤버를 갖춘 팀이지만, 골밑의 약점을 해결해준 오세근 영입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오세근은 11, 12월 이달의 선수상을 2회 연속 받았다. 연봉 킹 김주성(동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MVP 후보에 오를 정도의 파괴력을 갖췄다.
오세근의 신인상 독주 체제는 오래 가지 않았다. SK의 신성 김선형의 등장 때문이다. 김선형은 오세근과 중앙대의 52연승을 이끈 동기생. 드래프트 2순위로 프로에 뛰어 들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선수다. 사실 김선형의 기대감은 높지 않았다. 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 합류할 정도의 실력은 갖췄지만, 스피드와 탄력을 살린 속공, 수비력이 강점이었기 때문에 프로에서 성공 가능성에 의문점이 붙었다. 기우에 불과했다. 김선형은 SK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했다. 올 시즌 꼴찌 후보였던 SK를 6강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바라볼 수 있는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김선형은 187㎝의 가드다. 그냥 그런 단신 가드가 아니다. ‘쇼타임’ 농구를 선사하는 듀얼 가드(포인트가드 겸 슈팅가드)다. 김선형은 한 번 ‘필’을 받으면 아무도 막지 못하는 해결사 기질이 넘친다. 전반에 비해 후반 득점이 두 배 정도 높은 이유다. 화려한 덩크는 소속팀 ‘토종 덩커’ 김효범을 침묵시켰다. 올 시즌 벌써 9개의 덩크를 기록했다. 국내선수 5위에 해당한다. 다섯 손가락 안에 가드는 김선형이 유일하다. 비시즌 SK 문경은 감독대행의 슛 비결을 전수받아 슈팅력까지 탑재했다. 동물적인 숄더 페이크와 크로스 오버 드리블, 반 박자 빠른 퍼스트 스텝은 상대 수비의 발을 정지동작으로 만드는 김선형만의 기술이다. 흥행과 인기 부문에서는 단연 김선형이 돋보인다. 김선형은 38경기 평균 15.6점 2.8리바운드 3.1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역시 팀 내 국내선수 득점 1위, 어시스트 2위다.
최진수는 신인상 경쟁의 후발주자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드래프트 3순위로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었다. 최진수는 이력이 특이하다. 미국 유학파다. 국내선수로는 최초로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1부 리그 소속인 메릴랜드대에 진학했다. 미국 생활을 접고 국내 프로농구 입성을 위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유명세를 탔다. 204㎝의 신장에 스피드와 탄력, 슈팅력을 갖춘 장신 스몰포워드의 잠재력을 가진 유망주였다.
최진수는 단지 기대주였다. 대부분의 프로 지도자들이 “잠재력은 인정하지만, 국내 경험이 없어서 2~3년은 적응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선수다. 시즌 초반에는 평가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최진수는 시즌 중반부터 잠재력을 일찍 폭발시켰다. 소속팀 이동준이 부상을 당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궂은 일과 수비에 집중하면서 코트 전체에 최진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발로 뛰었다. 결과는 최하위 오리온스의 다크호스 급부상으로 이어졌다. 최진수는 39경기 평균 13.6점 5.1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내 국내선수 득점 1위, 리바운드 2위에 올랐다.
세 선수의 신인상 조건은 경기력과 개인기록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신인다운 성실함과 승부욕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오세근은 훈련이나 경기 후 기록한 농구일기장이 책꽂이 가득하고, 운동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량이 엄청나다. 김선형과 최진수도 성실한 훈련 태도로 코칭스태프의 찬사를 받고 있다. 세 명 모두 “신인상은 생애 한 번뿐이다.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양보도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 SK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한 김선형. 사진제공=KBL |
MVP보다 뜨거워진 신인상 경쟁 구도가 시즌 5라운드로 접어들면서 더 치열해지고 있다. 농구 전문가들도, 프로농구 감독들도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하면서 “차라리 공동수상이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 하지만 한 명을 선택해 달라는 주문에 공통 답변은 “그래도 오세근”이었다. 이유는 팀 성적이 지배적이었다.
신인상 1명을 선택해 달라는 요청에 두 손을 들었던 KT 전창진 감독은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하고 있어 너무들 멋지다. 마지막까지 가 봐야 결정할 수 있지 않겠나?”라면서도 “오세근은 견제를 많이 받는데도 여러 파생되는 옵션을 수행하고 있다. 팀 성적도 또 있으니까…. 올해는 기자도 뽑기 힘들 거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동부 강동희 감독도 “다른 때보다 확실히 다른 신인들”이라며 “팀에 무게감이나 영향력, 성적을 보면 오세근의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린다”고 공통된 의견을 내놨다.
또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포지션별로 셋이 다르고 각 팀에서 다 잘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신인상은 관례상 특별히 튀지 않는 한 작년보다 성적이 좋아진 팀 선수에게 주기 마련이기 때문에 오세근에게 무게감이 있지만, 시즌 막판 오리온스와 SK의 성적에 따라 변수가 있을 수 있다”라고 조심스런 견해를 보였다.
중앙대 시절 오세근과 김선형을 지도했던 삼성 김상준 감독 역시 오세근에 한 표를 던졌다. 김 감독은 “모두 원래 잘하지만 KGC의 팀 성적과 과정을 보면 오세근의 존재감이 더 부각된다”며 “예전 중앙대에서 뛸 때도 세근이의 존재감이 확실히 달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오세근을 우선 순위로 꺼내들었다. MBC 스포츠 플러스 김동광 해설위원은 “포지션별로 다르고 오세근, 김선형, 최진수 순으로 치고 올라와 흥미롭고 재밌다”며 “팀 성적이나 꾸준한 것으로 보면 오세근이 낫다”고 밝혔다. 또 최연길 해설위원도 “팀 성적과 개인 기록을 보더라도 오세근이 낫고, 이달의 선수를 두 번이나 받았는데 MVP는 몰라도 신인상을 못 타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SBS ESPN 우지원 해설위원은 색다른 견해를 내놨다. 우 해설위원은 “전반적으로 오세근이 유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김선형도 잘하지만 최진수가 오세근의 대항마라고 본다. 내·외곽은 물론 공이 없는 움직임까지 정말 좋아져 더 기대가 되는 선수다.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떠오를 것”이라고 최진수에 높은 점수를 줬다.
▲ 고양 오리온스의 최진수가 앨리웁 덩크를 성공한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고양 오리온스 |
신인상 후보로 떠오른 세 명의 루키들이 프로농구 별들의 축제 올스타전(1월 29일, 잠실실내체육관)에 나란히 출격한다. 매직팀 오세근과 김선형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베스트5에 신인 두 명이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팬 투표로 진행된 올스타 선정에서 인기도를 객관적으로 입증한 것. 최진수도 감독 및 선수 추천 선수로 드림팀에 뽑혔다. 신인상을 앞두고 자신의 숨은 끼와 기량을 마음껏 어필할 수 있는 전초전이다.
오세근과 김선형은 한 팀에서 다시 호흡을 맞춘다. 둘은 중앙대 시절 찰떡 호흡을 자랑했던 콤비. 평소 단짝 친구인 둘은 올스타전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오세근은 “처음엔 예상하지 못했는데, 중간 결과 보고 ‘베스트5에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고, 김선형도 “베스트5에 뽑힌 것만으로 정말 꿈같은 일”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둘은 올스타전 호흡에 대해 “몇 년을 같이 뛴 선수인데 눈만 봐도 다 알아 호흡은 걱정 없다.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둘은 스타성이 풍부해 올스타전 MVP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신인상 경쟁은 양보하지 않겠다던 김선형도 올스타전 MVP 경쟁에 있어서만큼은 오세근에게 살짝 양보하는 미덕을 보였다. 김선형이 “나도 욕심이 많지만 세근이 형이 더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세근이 형한테 밀어줄 마음이 있다”며 “내가 패스를 주지 않으면 형도 득점을 할 수 없으니까 나한테 잘해야 할 것”이라고 농을 던졌다. 오세근도 김선형의 얘기에 발끈하며 “그건 선형이 생각이고, 다른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서 MVP는 쉽지 않다. 올스타전은 그냥 재밌게 즐기고 팀에서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싶다. 선형이가 아니라 우리 팀 (김)태술이 형한테 더 잘하겠다”고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올스타전에서는 최진수가 외롭다. 홀로 드림팀에 소속돼 매직팀 오세근과 김선형을 상대해야 한다. 최진수는 둘의 밀어주기 호흡에 개의치 않았다. 최진수는 “둘이 호흡을 맞추더라도 우리 팀에 잘하는 형들이 많아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올스타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은 없다. 팀에서 하는 것처럼 드림팀 선수들을 도우며 열심히 뛰겠다”고 전했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