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송혜교·공효진에서 유아인·로제·김태리로…브랜드 이미지 재구축 ‘모험’ 시선도
소비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광고계에서 최근 주목받는 핫이슈는 모델 교체 움직임이다. 스타파워를 앞세워 패션과 뷰티 브랜드 모델로 오랫동안 활동한 스타들이 일제히 ‘고배’를 마시기 때문이다. 전지현은 무려 8년 동안 모델을 맡은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의 모델 자리를 후배 유아인에게 내줬고, 송혜교 역시 4년간 유지한 뷰티 브랜드 설화수의 모델을 K-팝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에 넘겨줬다. 공효진이 모델로 활동한 코오롱스포츠의 새 얼굴은 최근 CF퀸 자리에 새롭게 등극한 배우 김태리가 차지했다. 패션과 뷰티 산업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발휘하는 MZ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모델 교체라는 분석이다.
#아웃도어브랜드, 40대 모델들과 결별
숱한 모델 교체 움직임에서 가장 주목받는 변화는 톱스타 전지현과 네파의 결별이다. 8년 동안 네파의 모델로 활동한 전지현은 올해 초 계약을 종료했다. 2021년 전지현 주연의 tvN 드라마 ‘지리산’에서 과도한 PPL 논란에 휘말린 네파는 잡음을 털어내고 젊은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모델 교체를 단행했다. 워낙 오랜 기간 모델을 맡은 탓에 ‘네파는 곧 전지현’이란 이미지가 쌓였지만 네파는 이를 털어내고 브랜드 정체성을 다시 구축하기로 했다. 9월 초 모델로 발탁된 유아인은 2030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높은 소구력을 갖춘 스타다.
젊은 이미지 구축을 위해 40대 모델과 결별한 아웃도어 브랜드는 또 있다. 공효진이 3년 동안 모델을 맡았던 코오롱스포츠다. 10월 결혼하는 공효진과 모델 계약을 마무리 지은 코오롱스포츠는 배우 김태리를 브랜드의 얼굴로 발탁했다. 아웃도어 시장의 최대 성수기인 3분기 시작을 앞두고 내린 결단이다. 김태리는 올해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밝고 건강한 캐릭터로 활약하면서 MZ세대 사이에서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등산을 시작한 MZ세대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아웃도어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MZ세대의 소구에 맞춘 모델 변경으로 풀이된다”라고 밝혔다.
이런 흐름은 또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더는 최근 ‘MZ세대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을 새로운 모델로 택했다. 2004년생, 18세인 장원영은 아웃도어 브랜드 모델 가운데서도 최연소다. 네파, 코오롱스포츠뿐 아니라 K2와 블랙야크 등 관련 브랜드가 각각 수지와 아이유를 모델로 발탁해 이미지를 젊게 구축하는 데 성공한 만큼 아이더 역시 장원영을 통해 비슷한 전략을 시작하는 셈이다.
#중장년층 겨냥 기업도 ‘리브랜딩’, 아이돌 모델 시대
뷰티 업계에서도 모델 교체는 활발하다. 오랜 기간 특정 이미지로 각인된 기업들이 리브랜딩을 시도하면서 가장 먼저 진행하는 일은 새로운 모델 발탁이다. 이로 인해 40대 스타들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K-팝 등 아이돌 스타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뷰티 업계에서 활약한 40대 한류 스타들의 인지도가 대부분 아시아 시장에 국한된 것과 달리, 글로벌 무대를 넘나드는 K-팝 아이돌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갖춘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욕심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최근 뷰티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델 변화는 송혜교의 바통을 블랙핑크 로제가 이어받은 일이다. 아모레퍼시픽의 한방화장품 설화수가 로제를 모델로 발탁함에 따라 2018년부터 브랜드의 얼굴로 활동한 송혜교는 자리를 내줬다.
설화수의 모델 교체의 이면에는 복잡한 전략도 숨어있다. 4년 동안 ‘설화수의 간판’으로 통한 송혜교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브랜드 전략에 힘입어 모델로 기용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중국 시장이 주춤하자, 설화수 측은 중국보다 북미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로제가 속한 블랙핑크는 아시아는 물론 북미 지역에서도 파워를 과시하는 K-팝 그룹이다. 설화수는 로제가 북미 지역에서 구축한 팬덤과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현지 진출을 시도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또 다른 계산도 있다. 설화수는 로제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변화를 시도한다. 설화수는 그동안 중년층이 주로 사용하는 화장품으로 인식돼 온 게 사실. 하지만 이번 모델 교체를 기점으로 젊은 소비층을 겨냥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이미지를 노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모레퍼시픽 측은 “로제의 진취적인 면모가 설화수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로제는 현재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광고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대형마트가 K-팝 아이돌을 모델로 발탁하는 시도는 파격 그 자체다. 홈플러스 역시 설화수처럼 젊은 감성을 앞세운 마케팅으로 이미지 쇄신을 노리는 상황이다. MZ세대의 취향을 반영한 점포 리뉴얼을 통해 젊은 소비층 유입을 노리는 홈플러스는 로제의 모델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광고계에서 파격적인 모델 기용은 그 자체로 화제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 패션과 뷰티에서 성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젠더리스 분위기에 힘입어 여성 화장품의 모델을 남자 스타가 맡는 사례도 늘어난다. 대표적인 스타가 손석구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2’로 스타덤에 오른 손석구는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오휘의 새 모델로 발탁됐다. 그동안 오휘는 손예진, 신민아, 김태리 등 여배우가 모델을 도맡아왔다. 여성 화장품에 남자를 모델로 발탁한 오휘 측은 “손석구의 인간적인 매력, 깊이 있는 예술적인 감각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근 일어나는 모델 교체가 과연 해당 브랜드의 매출이나 이미지 변화에 얼마만큼의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설화수의 로제, 오휘의 손석구는 오랜 시간 쌓은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시도인 만큼 뜻하지 않는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면에서 전통의 CF 강자들을 향한 광고계의 러브콜은 이어진다. 여러 변화 속에 모델 자리를 내준 CF퀸들은 새로운 브랜드에 속속 안착했다. 오랜 기간 축적한 소비자와의 교감 능력을 인정받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지현은 최근 신세인터내셔날이 론칭한 럭셔리 화장품 뽀아레의 전속모델로 발탁됐고, 송혜교는 아모레퍼시픽과 인연을 이어가 이너뷰티 브랜드 바이탈뷰티의 모델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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