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관리비로 관리소장 협회비 나갔지만, 공사 홍보부 “지급하지 않고 있다” 답변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4월 14일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16개 광역 시도와 대한주택관리사협회(관리소장 단체), 한국주택관리협회(주택관리업체 단체),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입주자대표회의 단체)에 “주택관리사 등의 각종 협회비는 관리비의 범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관리비로 협회비 지출을 금하라는 권고사항을 내려 보낸 바 있다.
국토부는 “2020년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주택관리사 등에 대한 교육비가 입주자 등의 명확한 의사결정 없이 관리비로 지원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주택관리사협회는 관리소장들이 만든 단체로 사단법인이다. 가입은 의무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다. 전체 주택관리사 자격자 6만 2000여 명 중 1만여 명 이상이 이 협회에 가입해있다. 회비는 소장 1인당 최초 가입비 20만 원과 연간 18만 원이다. 상식적으로 개인이 가입한 단체의 회비는 회원 본인이 내야 한다. 실제로 많은 관리소장이 자비로 협회비를 납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반드시 아파트 관리비로 협회비를 내려는 관리소장들도 적지 않다. 과거 주택관리법령이 세밀하게 정비되기 전, 그리고 국회 지적과 국토부의 권고가 있기 전에는 많은 관리소장들이 관리비로 협회비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했다. 공동주택 관리에 어두운 동대표들에게 주택관리사협회를 ‘법정 단체’, 회비를 ‘법정 협회비’로 부르면서 쌈짓돈 꺼내 쓰듯 쓰던 시절도 있었다.
올해 초 주택관리사협회에 협회비를 개인이 내는 비율과 아파트 관리비로 내는 비율에 대해 물었지만 협회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국토부 권고 이후 자비로 내는 관리소장들이 많이 늘었다”는 정도의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회장 김원일)에서는 여러 차례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입주민 동의 없이 관리비로 소장 협회비를 사용하는 관행을 막아달라”고 요구해왔다. 김원일 회장은 과거 “차라리 성실하게 일하는 관리소장의 급여나 복지를 인상하는 것이 낫다. 입주민 모르게 소장 협회비를 아파트 관리비로 내는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서울시 주택 정책을 수행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에 공급‧관리 단지 중 관리소장 협회비를 관리비로 내는 아파트(혼합, 순수 임대)가 몇 개 단지나 되는지 물었다. 전체 단지에 공문을 보내 관리비로 협회비를 내는 단지를 조사하면 파악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공사 홍보부는 현황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저희 공사가 관리하는 순수 임대단지의 경우 관리소장의 주택관리사 협회비를 관리비로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답을 보내왔다. 사실관계도 틀렸을뿐더러 조사를 하지 않았음이 의심되는 답변이다.
취재 결과 순수 임대단지에서도 관리비로 관리소장 협회비를 납부하고 있었다. 주택관리사협회는 관리소장이 아파트에 부임하면 협회비를 납부하라는 지로 고지서를 우편으로 보낸다. 관리소장이 아파트에 취업하면 주택관리사협회에 ‘배치 신고’라는 것을 하게 돼 있기 때문에 협회는 소장이 새로 부임한 것을 알 수 있다. 주택관리사협회는 소장이 취업한 아파트에 협회비 납부를 권하는 공문과 지로를 함께 보내고 관리사무소에서 지로는 손쉽게 다른 고지서들과 함께 관리비로 지출되곤 한다. SH 임대단지인 A 아파트의 경우도 이런 방식으로 주택관리사협회비를 납부한다고 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홍보부 담당자는 “임대단지에서 사례를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전액 환수 조치 등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계획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임대단지 관리는 당연히 공사의 몫이다. 공사는 임대단지 관리사무소에 직원도 파견하고 관리 전반을 책임진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현황 파악 없이 “그런 단지를 알면 가르쳐달라”는 식의 답변을 내놨다.
더 큰 문제는 “혹여 혼합단지 사례를 발견했다면 관련 지도감독권은 지자체 관할로, 해당 지자체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답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합단지의 경우도 입주민, 임차인이 함께 낸 관리비에서 협회비가 지출된다는 점에서 공사가 관리 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혼합단지 중에는 분양 세대보다 임대 세대가 월등히 많은 단지들도 있다. 세대 수는 물론 관리 면적까지 임차인 쪽이 많아 관리비도 임차 세대가 더 많이 부담한다. 이런 경우는 고려하지 않고 혼합단지의 지도감독권은 우리에게 없다고 지레 손놓고, 상관하지 않는다는 식의 답변은 과연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서울시의 주택 정책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임차 세대가 70%를 차지하는 한 혼합단지의 임차인은 공사의 답변에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우리도 모르게 돈이 새고 있는데 공사는 아무 상관 없다는 뜻인가”라고 되물었다.
임대단지, 혼합단지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입주민, 임차인들이 자신들이 낸 관리비가 관리소장 단체에 나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동대표)조차 이를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입주민들이 자신이 낸 관리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주택관리사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관리소장은 “협회비를 관리비에서 내는 건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일”이라면서 “만약 소장들이 협회비를 관리비로 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국민 앞에 나와 쓰겠다고 떳떳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SH 아파트 임차인은 “관리비를 꺼내 쓰려는 관리소장들의 도덕적 해이, 예전부터 언론에서 지적해왔지만 어떤 개선책도 내놓지 않은 서울주택도시공사의 관리 부실이 이런 상황을 고착시킨 것 같다”고 비판했다.
주택관리사협회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야당 의원실에 아파트 관리비로 주택관리사 협회비를 납부하는 것에 대한 입장을 묻자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아 의견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며 답변을 피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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