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차기 총리직에 오른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45)가 선거 기간 내내 외쳤던 구호다. 지난 9월 25일(현지시각)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우파 연합을 이끌면서 승리한 멜로니는 이로써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업적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멜로니의 급부상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파시즘의 망령이 되살아나진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그가 이끄는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은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는 정당으로,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이탈리아 전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집권하는 초유의 사태를 이끌었다. 멜로니를 가리켜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여자 무솔리니’라고 비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멜로니는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유럽연합(EU)과 보조를 맞추되 이탈리아의 번영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지도자가 되겠노라고 공표했다.
이번 총선에서 ‘이탈리아형제들’이 주축이 된 우파 연합은 44%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다. 우파 연합은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을 비롯해 마테오 살비니가 대표로 있는 ‘동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 이탈리아’ 등 세 당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정당별로는 각각 26.01%, 8.85%, 8.27%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정당 간에 미리 합의해 놓은 대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이탈리아형제들’의 멜로니가 총리직을 맡게 됐다. ‘이탈리아형제들’이 2018년 총선에서는 4.3%를 얻는 데 그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반전이었다.
유럽 3위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를 이끌게 된 멜로니는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으로, 1977년 로마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으며, 때문에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모, 종업원, 나이트클럽 바텐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처음 정치에 입문한 때는 1992년, 무솔리니 추종자들이 설립한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의 지역 청년부인 ‘청년전선’에 가입하면서였다. 당시 나이는 15세였다. 이에 대해 멜로니는 자서전 ‘나는 조르자다’에서 “‘청년전선’에 가입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가족을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로마 시의원으로 일했으며, 2006년 처음으로 선거에서 당선돼 하원의원이 됐다. 그 후 베를루스코니 내각에서 31세의 젊은 나이에 청년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당시 멜로니는 관저에 거주하는 대신 어머니와 함께 계속 집에서 살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운전사가 딸린 관용차 대신 직접 자신의 소형 자동차인 ‘미니’를 몰고 출퇴근을 하는 등 소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정치 활동은 2012년 동료 정치인들과 함께 ‘이탈리아형제들’을 창당하면서 시작됐다. ‘이탈리아형제들’은 파시스트 MSI의 가치를 이어받은 정당으로, 로고부터 MSI가 사용했던 녹색, 흰색, 빨간색 불꽃 모양을 선택하면서 무솔리니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했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형제들’의 대표로 선출됐으며, 2020년부터 현재까지 우파 유럽 보수 및 개혁당(ECR) 총재로 일하고 있다.
언론인 안드레아 잠브루노와의 사이에서 딸을 하나 두고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사실혼 상태다.
멜로니의 집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장 염려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그가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반이민, 반유럽연합(EU), 반동성애, 민족주의, 보호무역 등 ‘강한 이탈리아’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트럼프의 향기가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당시에는 정부의 방역 규제에 강하게 반기를 들면서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가 구성한 거국 내각에 합류하지 않고 유일하게 야당으로 남아 있기도 했었다.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는 ‘이탈리아형제들’은 선거 운동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염두에 두고 표심을 공략했다. 심지어 멜로니는 아프리카 출신의 망명 신청자가 우크라이나 난민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동영상을 공유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 해상 봉쇄를 제안하기도 했던 멜로니는 “이탈리아로 이민자들을 실어 나르는 선박을 막기 위해 북아프리카 연안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9월 초 가졌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멜로니는 “국가란 국경이 있어야 하고, 그 국경이 방어될 때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좌파 정치인들이 “이탈리아인을 이민자로 대체하기 위해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것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민자들의 쇄도가 이탈리아를 ‘인구학적 비상사태’에 직면하게 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멜로니는 이 밖에도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반대해왔으며, 임신중절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극우 성향의 멜로니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파시스트 지도자가 나왔다”면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카타리나 바렐리 유럽의회 부의장은 “멜로니는 (극우 성향의 헝가리 총리인) 빅토르 오르반과 도널드 트럼프를 정치적 롤모델로 삼는 총리가 될 것”이라고 경계하면서 “유럽의 건설적인 공존에 위험한 인물”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킹스칼리지 런던의 레일라 탈라니 이탈리아 정치센터장 역시 ‘유로뉴스’에 “멜로니는 항상 자신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처럼 이탈리아를 우선시하고 싶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유럽 통합 과정에서도 민족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EU에서 더 많은 반대와 거부권을 실시하거나 정부 차원에서의 거부 의사를 밝히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과거 멜로니의 행적을 보면 사실 이런 우려는 괜한 게 아니다. 19세 때 프랑스 뉴스 방송 ‘수아르 3’ 인터뷰에서 멜로니는 “무솔리니는 지난 50년 동안 가장 훌륭한 정치가였다”라고 발언한 바 있으며, 2020년 5월에는 반유대주의 및 인종차별주의 잡지인 ‘라 디페사 델라 라자’의 공동설립자이자 편집자이며, MSI의 공동설립자인 조르지오 알미란테를 추앙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전세계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과 막역한 사이인 멜로니는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는 정치적 소울메이트를 자처하고 있으며, 과거 EU를 뱀파이어로 묘사했던 트럼프의 전 보좌관인 스티브 배넌과는 서로 ‘동맹’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이런 극우 정치인들과의 친분은 총선 후 쏟아진 축하 메시지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는 멜로니와 살비니가 “반민주적이고 오만한 EU의 위협”에 저항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당연한 승리 그 이상”이라고 축하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달리 멜로니는 스스로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 후 승리 연설에서 그는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국민 통합을 목표로 통치하겠다”며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선거 기간 가졌던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신의 당이 파시스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주장을 일축하면서 무솔리니를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칭찬했던 발언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탈리아형제들’이 미국의 공화당과 영국의 보수당에 더 가깝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애국심과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지향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EU의 분열을 염려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는 “국제무대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탈리아의 위상이다”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유럽을 분열시키기보다는 이탈리아가 EU를 다루는 방식을 재정립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친푸틴 성향의 정당이기 때문에 EU와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멜로니는 총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시아 제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면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까닭에 한편에서는 극우 정당의 출현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라는 입장도 있다. 멜로니가 집권 후에도 당장 극우 성향을 드러내진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EU가 지원하기로 약속한 코로나19 회복기금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2026년까지 1915억 유로(약 264조 원)의 기금을 EU로부터 지원받기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는 이탈리아 국내 총생산의 약 11~12%를 차지하는 규모다.
미 시사주간 ‘디애틀랜틱’ 역시 “이탈리아가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평하면서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멜로니가 어느 정도는 당의 과거와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멜로니는 “파시즘은 과거의 역사”라고 선언했고, 파시즘을 칭송하는 당원들을 제명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가 서방 동맹의 약한 고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밝힌 멜로니와 달리 연정 파트너인 살비니와 베를루스코니 모두 친푸틴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살비니는 러시아 제재가 러시아보다 오히려 유럽과 이탈리아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며 비판해왔으며, 베를루스코니는 푸틴과 20년 동안 친분을 쌓아왔을 정도로 무척 가까운 사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리켜 푸틴이 언급한 대로 ‘특수 작전’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만 봐도 둘 사이가 얼마나 두터운지 잘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디애틀랜틱’은 비록 ‘이탈리아형제들’이 지금은 제1당이 됐지만, 외교 정책에서 지향점이 다른 살비니, 베를루스코니 등 연정 파트너들과 계속해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으로 멜로니의 집권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정치에 실망하고 있는 이탈리아 민심을 지적했다. 실제 비교적 투표율이 높은 이탈리아에서 이번 총선 투표율은 사상 최저인 70%를 밑돌았다.
한 70대 여성은 멜로니와 극우 정당이 이탈리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되지 않느냐는 ‘디애틀랜틱’의 질문에 “결국 새 정부도 다른 모든 정부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정부 역시 많은 것을 이루진 못할 것이다. 그리곤 곧 무너질 거다”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탈리아는 왜 멜로니를 택했나 "현재에 대한 분노 탓"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확히는 파시즘에 표를 던진 게 아니다’라는 ‘디애틀랜틱’의 보도처럼 이번 총선에서 사실 가장 큰 화두는 경제난이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치솟은 물가 때문에 고통받고 있던 시민들이 이전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였던 것이다.
실제 에너지 요금은 1년 전보다 무려 10배 가까이 올랐고, 식료품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물가는 천정이 뚫린 듯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일자리 또한 부족한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하자 EU에 대한 불만도 팽배해져 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멜로니의 승리가 파시즘으로의 회귀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디애틀랜틱’은 “최근 이탈리아가 겪고 있는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이후의 고통을 고려할 때 ‘이탈리아형제들’의 급격한 인기 상승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멜로니의 승리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에 대한 향수와는 별 관계가 없고 이탈리아의 불안한 현재에 대한 분노와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8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내 정치 동향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지적하면서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정치 전문가들은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불만과 그간 독일과 프랑스에 이끌려 다녔던 이탈리아가 국제무대에서 보다 강력한 위상을 떨치길 바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