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선두 위협받는 등 1~5위 순위경쟁 지속…개인타이틀 경쟁은 윤곽 드러나
전반기까지만 해도 5강 구도는 일찌감치 굳어지는 듯했다. 1위 SSG 랜더스의 독주 체제도 굳건해 보였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자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대급' 성적으로 1위를 지키던 SSG가 2위 LG 트윈스의 맹추격을 받았고, 2위까지 노리던 키움 히어로즈는 어느덧 KT 위즈와 3위 싸움을 하게 됐다. 6위 NC 다이노스도 후반기 들어 무서운 상승세를 타면서 5위 KIA 타이거즈를 거세게 위협했다.
#지난 3년간 마지막 날 '대진표' 확정
낯선 광경은 아니다. KBO리그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야 가을 야구 대진표를 확정했다. 2019년이 시작이었다. SK 와이번스(현 SSG)는 시즌 막판까지 2위 두산 베어스에 9경기 차 앞선 선두였지만, SK가 연패에 빠진 사이 두산이 연승 가도를 달리면서 추격을 허용했다. 결국 두산은 NC와 시즌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두면서 SK와 동률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두산과 SK 중 상대 전적에서 앞선 두산이 결국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 후 KBO리그에는 '두 팀이 정규시즌 공동 1위가 될 경우, 1위 결정전을 치러 우승팀을 결정한다'는 새 룰이 생겼다.
2020년도 혼란스러웠다. NC가 일찌감치 창단 후 첫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지만, 2~5위 팀은 모두 시즌 마지막 날 한꺼번에 가려졌다. 무려 5개 팀이 물고 물리면서 웃고 울어야 했던 '운명의 날'이었다. 2위 KT는 한화 이글스에 3-4로 졌지만, 3위였던 LG가 SK에 2-3으로 패한 덕에 2위 자리를 지켰다. 또 5위였던 두산은 4위 키움을 꺾으면서 이날 패한 LG까지 뒤로 밀어내고 단숨에 3위로 올라섰다.
반면 플레이오프 직행을 노리던 LG는 2위로 올라서기는커녕 4위로 떨어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게 됐다. LG를 꺾고 마지막 희망을 품었던 SK도 바로 윗순위였던 두산이 키움전에서 승리한 탓에 가을야구 문턱에서 아쉽게 돌아서야 했다.
지난 시즌도 만만치 않았다.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던 KT가 막판 부진에 빠지면서 삼성과 동률로 시즌을 마쳤다. 결국 두 팀이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1위 팀을 가리기 위한 타이브레이커를 치렀다. 경기는 상대 전적에서 9승 1무 6패로 앞선 삼성의 홈 대구에서 열렸지만, 살얼음판 같은 1-0 접전 끝에 승리한 팀은 KT였다. KT는 한국시리즈에서도 두산을 꺾고 우승해 창단 후 첫 통합우승을 일궜다.
#선두를 위협 받은 SSG
올해 역시 한 시즌의 마무리를 앞둔 9월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SSG는 개막 10연승으로 시즌을 시작한 뒤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올 시즌 최강팀이다. 하지만 후반기 LG의 기세가 너무 강했다. 특히 9월에는 LG가 10개 구단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반면, SSG는 월간 6위에 그쳤다. SSG가 선두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해도 자꾸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단 안팎에서는 "(LG가 무섭게 쫓아오면서) 2019년 정규시즌 마지막 날 두산에 1위를 빼앗긴 트라우마가 다시 고개를 든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실제로 SSG는 9월 25일 홈 인천에서 열린 LG와 정규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확실하게 1위를 결정지을 기회를 놓쳤다. 하루 전인 24일 SSG가 두산전에서 승리하고 LG가 한화전에서 패하면서 1위와 2위의 격차가 4.5경기까지 벌어진 상황. 이날 SSG가 LG를 꺾는다면, 게임 차를 5.5경기까지 벌리면서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도 '6'에서 '4'로 단숨에 줄일 수 있었다. 심지어 LG의 15승 선발 투수 아담 플럿코가 연습 투구 중 담 증세를 느껴 1회 초 첫 타자를 고의사구로 내보낸 뒤 교체되는 돌발상황까지 벌어졌다. SSG 입장에선 뜻밖의 행운이었던 셈이다.
SSG는 이후 기세를 몰아 먼저 리드를 잡았다. 외국인 선발 숀 모리만도가 7이닝 3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하는 사이 간판 타자 최정이 6회 말 2사 1루에서 선제 2점 홈런을 터트렸다. 7회 초 야수 실책으로 1점을 추격당하긴 했지만, 더는 실점하지 않고 9회 초 2사까지 버텼다. 승리까지 아웃카운트 1개만 남겨둔 순간, 베테랑 불펜 노경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볼넷, 볼넷, 볼넷 그리고 또 볼넷. 순식간에 볼넷 4개가 이어지면서 밀어내기로 2-2 동점이 됐다.
흐름을 내준 SSG가 9회 말 끝내기 득점에 실패하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이어 연장 10회 초 2사 만루에서 불펜 김택형이 LG 베테랑 타자 김민성에게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만루 홈런을 맞았다. SSG는 올 시즌 세 차례나 마무리 투수를 교체할 만큼 뒷문 불안에 시달렸는데, 그 고민이 결국 다시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두 팀의 간격은 3.5경기로 다시 좁혀졌고, LG의 희망은 되살아났다.
이뿐 아니다. SSG는 9월 29일 키움과 인천 홈 경기에서도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1회 말 최지훈의 2점포와 최정의 솔로포로 3-0으로 앞서갔지만, 3회 초 키움 이정후에게 3점 홈런을 내줘 3-3 동점을 허용했다. 또 3회 말 최정의 연타석 솔로포와 6회 말 밀어내기 볼넷 2개로 다시 6-3 리드를 가져왔지만, 7회 초 다시 송성문에게 동점 3점포를 얻어맞았다.
SSG도 그대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7회 말 곧바로 터진 김성현의 3점포로 맞불을 놓으면서 9-6으로 다시 앞섰다. 그러나 키움은 8회 초 타자일순하며 대거 6점을 뽑아 SSG 불펜을 초토화했다. 결국 SSG는 9-14로 패해 2위와 2.5게임 차를 그대로 유지했다. LG가 같은 날 KT에 패하면서 매직넘버를 '5'로 줄이는 데 데 만족해야 했다.
물론 우승의 주도권은 여전히 SSG가 쥐고 있다. LG가 1패만 해도 매직넘버가 줄고, LG가 패한 날 SSG가 이기면 한꺼번에 두 개를 삭제할 수 있다. 또 LG보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 김광현, 윌머 폰트, 모리만도, 1~3선발 위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다. 반면 LG는 플럿코가 가벼운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대신 불펜이 양과 질 모두 리그 최상급이다. SSG의 약점이 곧 LG의 강점인 셈이다.
#나란히 흔들린 키움과 KIA
실질적인 최대 격전지는 3위 자리다. 3위는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하고, 4위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밀려난다. 정규시즌 3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은 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른 팀이 우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팀도 지난해 두산이 유일하다.
키움은 전반기까지 LG에 0.5경기 차 앞선 2위였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하락세가 두드러지면서 LG에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났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우승팀 KT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코너에 몰렸다. 후반기 성적만 놓고 보면, KT가 LG와 1~2위를 다투는 동안 키움은 중위권에 머문 형국이다. 5월 20일부터 3개월 넘게 3위 이상의 순위를 지켜온 키움이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게 생겼다.
고척스카이돔을 홈으로 쓰는 키움은 우천 취소 경기가 많지 않아 잔여 경기도 적다. 자력으로 3위를 확정할 수 없어 KT의 경기 결과를 매일 마음 졸이며 지켜봐야 한다. 다만 키움에 유리한 점이 있다면, KT 상대전적(8승 1무 7패)에서 앞선다는 거다. 1위와 5위는 타이브레이커를 치르지만, 3위는 그렇지 않다. 두 팀이 동률을 이루면 기존 룰대로 상대전적에서 앞선 팀이 앞 순위를 차지한다.
얄궂게도 올 시즌 최종전은 10월 9일 KT와 LG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KBO는 당초 10월 8일 전국 5개 구장에서 각 팀의 정규시즌 최종전이 일제히 열리는 일정을 짰지만, LG와 KT는 지난 9월 16일 비로 순연됐던 맞대결 1경기를 더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기가 3위 자리의 마지막 주인공을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
KIA 역시 SSG와 키움처럼 시즌 막바지에 뜻하지 않은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KIA도 시즌 내내 꾸준히 5위 안에 머물면서 이변이 없는 한 5강 한 자리는 확보할 것으로 보였다. 반면 NC는 5월까지 최하위였고, 6월까지 9위였다. 그런데 7월 8위, 8월 7위, 9월 6위로 올라서더니 지난 9월 21일 잠실 두산전 승리로 KIA를 0.5경기 차까지 쫓았다. 하필이면 KIA가 9연패 수렁에 빠진 날이라 위기는 더 극심해 보였다.
KIA는 '정면돌파'로 급한 불을 껐다. 다음 날인 22일부터 24일까지 NC의 홈 창원에서 열린 두 팀의 시즌 마지막 3연전에서 2승 1패 위닝 시리즈를 달성했다. 게임 차는 다시 1.5경기로 늘어났다. 이어 9월 29일 광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승리하면서 이날 삼성에 완봉패한 NC와 격차를 2.5경기까지 벌렸다. KIA 입장에선 일단 한숨을 돌린 하루였다.
#윤곽 드러난 타이틀 홀더
순위 싸움과 달리 개인 타이틀 경쟁은 거의 윤곽을 드러냈다. KBO가 공식 시상하는 14개 부문(투수 6개, 타자 8개) 중 가장 먼저 수상이 결정된 선수는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다. 그는 9월 27일 대전 한화전에서 세이브를 추가하면서 KBO리그 역대 8번째이자 최연소로 4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이와 함께 세이브 2위권을 형성하고 있던 김재윤(KT)·정해영(KIA)의 남은 경기 결과와 관계 없이 구원왕 등극을 확정지었다. 이들이 소속팀의 잔여 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따내도 고우석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의미다.
LG가 구원왕을 배출한 건 2001년 신윤호 이후 21년 만이다. KBO리그는 1982~2003년 세이브와 구원승을 합한 '세이브 포인트'로 구원왕을 정했는데, 2001년 신윤호는 18세이브와 구원승 14개를 합한 32세이브 포인트로 그해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이상훈(당시 LG)이 2003년 30세이브를 올려 세이브 수로는 조웅천(당시 SK)과 공동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조웅천보다 구원승이 적어 구원왕 타이틀을 따내지는 못했다. 고우석은 구원왕의 기준을 세이브로 한정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탄생한 LG 소속 구원왕이다.
고우석의 파트너인 LG 셋업맨 정우영도 데뷔 후 첫 홀드 타이틀 획득을 눈앞에 뒀다. 올 시즌 목표로 삼았던 30홀드는 이미 넘어섰고, 2위권인 김재웅(키움)·김민수(KT)와 격차도 크다.
키움 에이스 안우진은 올 시즌 10개 구단 투수 중 유일하게 200탈삼진을 넘기면서 탈삼진왕을 예약했다. 2위 드류 루친스키(NC·186개)가 9월 29일 등판에서 탈삼진 4개를 추가하는 데 그쳐 격차는 더 벌어졌다. 시속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안우진은 아리엘 미란다(전 두산)가 지난해 남긴 한 시즌 최다 탈삼진(225개) 기록에 가까이 다가갔다. 키움이 시즌 마지막까지 3위 경쟁을 이어간다면 10월 6일 대전 한화전에 한 차례 더 등판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홍원기 키움 감독은 "그 전에 순위가 결정된다면 더는 등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록 달성을 위해 무리하는 것보다 일찌감치 휴식하면서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SSG 에이스 김광현은 평균자책점과 승률 타이틀 수상이 유력하다. 관건은 마지막까지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김광현은 9월 6일 LG전에서 6이닝 4실점 하면서 올 시즌 처음으로 2점대(2.02)를 찍었지만, 다음 등판인 11일 한화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잘 던져 다시 1점대를 회복했다. 문제는 29일 키움전(6이닝 3실점) 결과로 인해 다시 1.99로 턱걸이했다는 점이다. 김광현이 다음 등판 호투로 1점 대 평균자책점 유지에 성공한다면, 2006년의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이후 16년 만의 기록이 된다.
타격 부문에선 홈런왕 박병호(KT)와 도루왕 박찬호(KIA)가 사실상 1위를 확정했다. 박병호는 홈런 33개를 쳐 2위권인 호세 피렐라(삼성), 최정 등에 넉넉하게 앞서 있다. 지난 10일 발목 부상으로 이탈했는데도, 그를 추격할 만한 타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음달 7일쯤 1군에 복귀할 예정이라 홈런을 더 추가할 수도 있다.
박찬호는 3년 만에 도루왕 탈환을 눈앞에 뒀다. 9월 29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도루 2개를 추가하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한 시즌 40도루 고지를 밟았다. 2019년 도루 1위에 오를 때는 39개를 해내 40도루에 딱 한 개 모자랐다. 올해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면서 지난해 도루왕 김혜성(키움)을 비롯한 경쟁자들을 멀찍이 밀어냈다.
이들을 제외한 타격 부문은 대부분 혼전 중이다. 이정후와 피렐라가 타격, 타점, 안타, 출루율, 장타율 부문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다. '장외 타격왕'이던 박건우(NC)도 이달 초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타율과 출루율 1위 경쟁에 뛰어들었다. 득점 부문 역시 피렐라와 박해민(LG)이 1개 차로 경합하고 있다. 투수는 다승왕 한 자리만 아직 안갯속이다. LG 외국인 듀오 케이시 켈리와 플럿코, 안우진의 잔여 경기 등판 여부와 성적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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