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그들이 금배지를 단 이후의 내용물에 대한 언급은 빈약했다. 말을 해도 가슴에 와서 닿지를 않았다. 한 의원에게 왜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지 솔직히 말해달라고 했다. 4개월 잠시 머리를 숙이고 4년 동안 왕 노릇을 하는데 왜 안하겠느냐고 대답해 주었다. 상당수의 입후보자의 내면은 귀족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사회의 분열이 심하다. 이른바 ‘88만원’의 이십대가 존재한다. 비정규직의 ‘알바’만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한 달에 벌 수 있다는 금액이다. 직장에서 쫓겨나온 사람들의 자영업도 대기업에 눌려 질식하는 세상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다. 막대한 교육비가 없어 힘든 집 자식들은 개골창에서 용만 쓰다 만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운전기사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언제쯤 이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으냐고. 한 서린 그의 말에 가슴이 섬짓 했다. 거대한 분노의 에너지가 사회의 밑바닥에 가스처럼 고여 있는 것 같다. 한나라당이 언제 깨질 것인지, 안철수가 언제 나올 것인지 감각적인 차원의 흥미가 팽배해 있다.
분노의 에너지 덩어리가 누적된 사회적 모순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그 중심은 혁명주도세력이 아니고 불특정 다수의 불만세력이다. 지향하는 이념이나 깃발도 없다. 어디까지 갈지도 모른다. 그런 에너지가 현실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를 향해 팽창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믿는 사람이 백 명 중 세 사람이 될까 말까다. 국민이 선출하고 안 믿는다면 대표성의 위기다. 정당의 기능도 직접민주정치를 암시하는 SNS의 출현으로 그 의미가 없어졌다. 어떤 학자는 이 시대를 ‘혼돈기적 혁명 상황’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혼돈으로 보이고 내용은 혁명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도 없는 자들의 공통된 분노가 에너지로 분출되어 성공했다. 사람들 사이에 메시아대망사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득권자들이 숨통을 누르는 현실을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으로 인도할 사람이다. 안철수와 박원순 현상이 그렇다.
얼마 전 킹메이커로 유명한 윤여준 전 장관을 만났다. 그는 대통령 후보들의 장단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만나보면 대통령이 되는 데만 급급하고 그 이후에 대해 전혀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새로운 대통령감은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체제 내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팽개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지속되기 어렵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이 여러 명 있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진정한 열망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함께 아파보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새로운 국가운영의 모델을 내놓고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대통령이 되는 것 그 자체만이 목적인 사람은 안 된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