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000 붕괴 가능성 남아 신중한 접근 필요…실물경제 여파 고려해 일러야 내년 하반기 반등 분석도
증시 급락 원인은 미국의 긴축이었다. 금리가 오르고 달러 강세로 다른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고비용, 고물가 우려로 자산가격 하락이 진행됐다. 미국 기준금리는 내년 4.5%에서 4.75%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도 4.25%까지는 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단기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를 먼저 반영한다. 긴축 초반에는 단기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를 앞지른다. 긴축이 마무리되면 금리 차이는 좁혀진다. 반대로 완화국면에서는 단기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2년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4.3%까지 치솟았다 4.0% 수준으로 내려섰다. 3년만기 한국 국채도 4.5%까지 올랐지만 다시 3% 재진입이 눈앞이다. 단기채권 금리가 다시 오른다고 해도 그 폭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금리가 왜 내릴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 긴축으로 달러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되며 에너지 등 미국의 수입물가는 비교적 안정됐다. 그럼에도 연준은 추가 긴축을 예고한 상태다. 노동시장 때문이다.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많은 상황에서는 임금상승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런데 미국의 8월 고용지표를 보면 신규취업자수는 31만 5000명으로 전월의 52만 6000명보다 줄었다. 임금상승 우려가 낮아지면 연준의 긴축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 금주 시장에는 이 같은 기대가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고금리와 '강달러'는 상당기간 계속되고 이는 실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해 증시를 짓누를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진짜 어려워져야 그 때부터 반전이 가능해질 수 있다.
미국 8월 구인자수는 1010만 명으로 실업자수 600만 명을 여전히 크게 웃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20년 2월 수치는 각각 700만 명과 572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방역봉쇄로 두 달 뒤 이 수치는 471만 명과 2304만 명으로 역전된다. 미국은 해고가 쉽다. 단기간에 실업자수가 급증할 수 있다. 실업자수는 이후 빠르게 줄어들고 2021년 상반기 말 구인자수보다 아래로 떨어진다. 이른바 ‘리오프닝’ 확산으로 기업들이 일손이 부족해지면서다. 구인난을 겪으면서 일손을 미리 확보하려는 가수요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올 3월부터 일자리수가 다시 줄기 시작했다. 8월에는 실업자수도 늘어났다. 여전히 구인이 구직보다 많지만 반전 조짐이 뚜렷하다. 금리상승으로 경기악화가 예상되면 고용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9월 미국의 제조업활동은 2년 내 가장 부진했다. 전월 52.9였던 공급관리자기구(ISM) 지수가 50.9로 하락했다. 50 이상이면 확장, 이하면 위축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한 정리해고에 돌입했다. 임금 상승세가 꺾이고 경기가 나빠지면 연준도 예고한 수준보다 긴축 강도를 더 높이기는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아직 증시 바닥이 아니라고 본다. 연준이 아직 고용시장에 대한 판단을 바꾸지 않았고, 고금리와 고물가가 실물경제에 반영되는 과정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 연말 S&P500 지수 목표를 4450에서 3500으로 낮췄다. 모건스탠리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마크 윌슨은 올 연말 또는 내년 초 3000~3400을 전망했다.
금융정책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내년 상반기 연준이 긴축을 멈추더라도 한동안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치솟는 생활 물가에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 충격까지 덮치면 가계 소비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빚 부담이 이미 큰 데다가 소비까지 쪼그라들면 매출까지 줄게 된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 고용이 불안해지고 임금 인상도 어렵게 된다. 이는 다시 가계 소득을 줄여 경제활동 전반을 위축시킨다. 에너지와 식량, 원자재 가격 급등과 가파른 달러 강세로 전세계적으로 소비와 생산도 위축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IB들이 예상하는 반등 시점은 일러야 내년 하반기, 늦으면 내후년이다.
본격 반등이 시작된다면 올해의 손실을 만회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코스피가 위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는 데는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2000년 IT 거품 붕괴는 전세계적인 자산가격 하락 현상이었다. 증시 하락은 2년여에 걸쳐 이어졌고 이전 고점 탈환은 중국 발(發) 호황이 본격화된 2005년에야 이뤄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1년 반 이상 하락하던 증시가 2009년 잠시 반등하지만 뒤이어 유럽 재정위기로 2013년에야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다. 2020년 코로나19 쇼크는 석 달 새 폭락이 집중되며 대공황 이후 가장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시장은 불과 반년 만에 이전 수준으로 다시 올라섰다.
거품 붕괴와 금융위기 등이 복합된 이번 하락은 올해 내내 진행 중이다. 하락기간보다 회복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과거 사례, 실물경제의 부담 등으로 볼 때 바닥을 본 이후 최소 1년 반 이상은 필요할 수 있다. 코스피의 2000 붕괴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하기 이르다. 미국 S&P500이 지금보다 5~10% 하락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주요 증권사들의 코스피 전망 하단은 2020~2100 사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쇼크 때 코스피는 이전 고점 대비 45~55% 하락했다. 2100은 주가수익비율(PER) 9배 수준이다. 2008년 10월 코스피 PER는 7.4배까지 추락한 적이 있다. 이번 위기의 과거 위기에 버금간다면 코스피 2000이 일시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
내년 증시가 얼마나 하방경직성을 가질지는 기업들에 달렸다. 실물 경제가 어려워도 증시를 구성하는 간판 기업들이 최악을 피해준다면 시장은 추가하락을 걱정하기보다는 반등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다. 이익 성장이 둔화되더라도 배당 등 주주환원으로 얼마나 주가를 방어할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종목은 역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의 의미 있는 반등 없이는 코스피 상승세 전환도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주가는 2020년 3월 폭락 이후 코스피보다 먼저 반등했다. 금융위기 때도 1년도 안돼 이전 고점을 회복했다. IT버블 폭락장 탈출도 코스피보다 빨랐다. 하지만 이번엔 시장보다 더 깊은 부진이다. 악재만 수두룩해 이렇다 할 회복 조짐을 찾기 어렵다.
삼성전자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증권사들은 잇따라 목표주가를 낮췄다. 물건이 안 팔려 재고가 늘면서 매출과 이익이 모두 부진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주력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부진으로 가격 하락세다. 유망은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는 경쟁사 대비 기술 열세에다가 투자도 뒤처져 있다. 스마트폰도 중국산 저가 제품과 애플에 사이에서 고전 중이다. 유일한 주가 ‘플러스’ 변수는 주주환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배당 확대나 특별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등 여러 측면에서 주주환원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은 올해 회장 승진 가능성이 점쳐진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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