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회 “사형수 4명 암매장 추정지 한 곳만 발굴 권고…국방부에 면죄부 주는 것”
실미도 유족회는 정근식 진화위 위원장에게 지난 4일 '실미도 사건 결정통지서 이의 신청서'를 보냈다. 유족회는 이의 신청서에서 "유족이 부여받은 권고자료 문건은 보도자료 권고문과 판이한 질적 차이가 있다"며 "유해 발굴 추정지를 경기 벽제, 인천, 서울 오류동과 대방동 등으로 열거하여 권고 요청한다. 특정 지역 한 곳만의 권고는 국방부에게 면죄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요구했다.
진화위는 실미도 유족에게 보낸 진실규명 통지서에서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의 책임이 있는 국방부와 공군은 진화위 조사 결과에 따라 유족에게 사과하고 사형이 집행된 공작원 4명의 유해 발굴을 시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사형 집행된 공작원 4명이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은 벽제리 묘지"라며 "다른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한 조사 및 유해 발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족회는 "고려해야 한다"라는 문구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 문구를 빌미로 국방부가 벽제리 묘지 이외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벽제리에서 유해를 찾지 못한다면 유해 찾기가 막막해질 수 있다.
유족회는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 내용대로 권고문을 수정할 것을 진화위에 요구했다. 진화위는 지난 9월 21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선 국방부에 대해 "공작원 4명의 유해가 가족에게 인도될 때까지 유해 발굴과 유해 매장지에 대한 조사 활동을 지속할 것"을 권고했다. "고려해야 한다"가 아닌 "지속할 것"이라고 명시한 보도자료 내용이 오히려 더 강한 권고였다.
실미도 부대는 박정희 정부가 북파 공작을 목적으로 1968년 비밀리에 만들었다. 부대원 31명 중 7명은 혹독한 환경 속에 훈련 중 사망했다. 나머지 부대원 24명은 1971년 8월 23일 실미도를 탈출했다. 자신들의 억울한 처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실미도 탈출 과정에서 2명이 사망했고, 서울 진입 과정에서 군경과 교전이 발생해 18명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공작원 4명은 1972년 3월 10일 공군 부대에서 사형당했다. 군은 부대원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사형 집행을 통지하지 않았다. 사형이 집행된 이후 시신 역시 인도하지 않은 채 임의로 암매장했다.
진화위는 지난 9월 20일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화위는 과거 조사기록물을 검토하고, 당시 공군 관계자 등의 진술을 청취한 결과를 종합해 암매장 가능성이 큰 지역을 서울시립승화원 벽제리 묘지로 판단했다. 벽제리 묘지는 실미도 사건 당일 사망한 20명의 유해가 2005년 발굴된 곳이다.
진화위는 "진술조사에 응한 참고인 중 사형 집행 당시 공군 수송반 중사 A는 공작원 4명의 시신 매장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A는 2021년 12월 10일 진화위 면담 조사에서 '상부의 지시로 사형이 집행된 공작원 4명의 시신을 실은 공군본부 소속 트럭을 벽제화장터까지 안내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진화위는 암매장 추정지로 유력하게 거론된 서울 구로구 오류동 개웅산 일원에 대해서는 "사건 당시 공군본부 수송대대 중사 B의 진술이 근거이지만, 진화위가 B에게 새로 청취한 진술을 종합하면 B는 사형이 집행된 공작원 4명이 아니라 실미도 사건 당일 발생한 20명의 시신을 벽제리 묘지로 운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암매장 현장 목격자라는 제보자가 등장한 인천 부평가족공원에 대해서는 "제보자가 유해 매장지로 지목한 장소를 여러 차례 번복해온 사실이 확인됐다"며 "제보자 이외에는 인천가족공원을 유해 매장지로 지목한 자료, 진술, 관련된 제보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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