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2021년 국회의원 후원회 연간 300만 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 쌍방울그룹 김성태 전 회장과 A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28일 500만 원씩 모두 1000만 원을 강선우 의원에게 기부했다. 정치자금법상 한 사람이 한 국회의원 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는 최대금액은 500만 원. 다만 대선 후보나 대선 예비 후보에겐 최대 1000만 원까지 후원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28일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윤곽이 드러나던 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10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이에 앞서 강 의원은 지난해 9월 1일 민주당 선관위원직을 내려놓고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쌍방울은 김 전 회장과 A 부회장의 기부 한 달여 뒤인 지난해 12월 9일 강서희망나눔복지재단에 6000만 원 상당 의류를 기부하기도 했다. 서울 강서구는 강 의원 지역구다. 이날 열린 '쌍방울 사랑의 의류지원 전달식'엔 강 의원과 김세호 쌍방울 대표가 참석해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강선우 의원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성태 전 회장은 오가면서 한 번 정도 만났던 기업가 중 한 명"이라며 "후원 사실을 (일요신문) 취재 문의 후 알게 됐다. 왜 후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의류지원 전달식에 직접 참석해 쌍방울 대표를 만난 것에 대해선 "(강 의원은) 지역구 행사엔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그룹의 횡령 등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5월 말 해외로 도피했다. 싱가포르, 태국을 거쳐 현재 베트남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그룹은 2018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은 변호인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대신 내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A 부회장은 쌍방울그룹 대북 사업 추진과 관련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지난 9월 28일 구속됐다. A 부회장은 2020년 2월 남북교류 유력 민간단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쌍방울 중국법인장 및 대표이사, 쌍방울 계열사 '광림' 대표이사도 지냈다.
김 전 회장과 A 부회장은 한 몸처럼 지난해 정치자금 후원을 같이했다. 정치자금법상 한 사람은 정치 후원금을 연간 최대 2000만 원 낼 수 있다. 김 전 회장과 A 부회장은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모두 같은 날 같은 정치인에게 정치 후원금을 보내며 후원 한도를 꽉 채웠다.
김 전 회장과 A 부회장은 강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한 지난해 10월 28일 당시 새로운물결 대선후보였던 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도 각 1000만 원을 후원했다. 김 지사가 당시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최대 1000만 원까지 후원이 가능했다. 지난해 3월 11일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당시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에게 각 500만 원을 후원했다. 김동연 지사와 박형준 시장에게 기부한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해 쌍방울그룹의 쪼개기 후원 의심 사례는 또 있다. 쌍방울그룹 계열사 임원 4명은 지난해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에게 각 500만 원을 후원했다. 모두 2000만 원을 후원한 셈이다. 김성원 의원에게 지난해 300만 원을 초과해 후원한 개인 13명 중 4명이 쌍방울그룹 소속이었다.
지난해 6월 9일 당시 SBW인베스트먼트(현 아이오케이스튜디오) 사내이사 B 씨, 6월 10일 미래산업 사내이사 C 씨, 6월 15일 당시 인피니티엔티(현 디모아) 사내이사 D 씨, 6월 16일 쌍방울 사내이사 E 씨는 각 500만 원을 김성원 의원에게 기부했다.
강선우 의원 사례와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구에 쌍방울그룹 차원의 의류 후원도 이뤄졌다. 사단법인 아태평화교류협회는 쌍방울그룹 후원을 받아 2020년 12월 23일 경기도 연천군에 성인 겨울내의 200벌을 전달했다. 연천군은 김성원 의원의 지역구다.
아태평화교류협회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경기도와 함께 대북 사업을 추진한 곳으로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 지원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아태평화교류협회는 쌍방울그룹 계열사가 모인 서울 용산구 건물 안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연천군은 아태평화교류협회가 대북 사업을 추진하려던 지역 중 한 곳이다. 아태평화교류협회는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국내 유치를 추진하면서 연천과 파주를 본점 예정지로 거론한 바 있다.
김성원 의원 측 역시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쌍방울 임원들의 후원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김 전 회장이나 쌍방울과 특별한 관계도 없다"고 해명했다.
김 의원에게 후원한 쌍방울 측 인사는 여러 계열사 임원직을 거치거나 겸임한 것으로 파악됐다. 쌍방울그룹 핵심 인물이라는 뜻이다.
SBW인베스트먼트는 쌍방울그룹이 2020년 12월 설립한 벤처캐피탈이었다. 하지만 1년 만인 2021년 12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등록을 말소하고, 사명을 현재의 '아이오케이스튜디오'로 변경했다. 사업목적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으로 바꿨다. 이때 B 씨도 SBW인베스트먼트 사내이사를 사임했다.
이후에도 B 씨는 지난 6월 초까지 쌍방울그룹 임원으로 재직했다. B 씨는 2021년 10월 인피니티엔티(현 디모아)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쌍방울그룹이 2021년 11월 설립한 블록체인업체 '블록업' 사내이사로도 선임됐다.
B 씨는 지난 6월 10일 블록업 사내이사를 사임했다. 이에 앞서 5월 25일 디모아 사내이사도 사임했다. 5월 25일은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이 쌍방울 계열사 '앤리치홀딩스' 사내이사를 사임한 날이기도 하다. 양 회장은 전날인 5월 24일 광림 사내이사도 사임했다. 양 회장은 김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 도피 중이다.
미래산업은 반도체 장비업체인 코스피 상장사로 2019년 쌍방울그룹에 인수됐다. 이후 C 씨는 2020년 4월 미래산업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C 씨는 쌍방울 계열사 '비비안' 경영지원본부장도 겸하고 있다.
인피니티엔티(현 디모아)는 IT 솔루션업체인 코스닥 상장사로 2020년에 쌍방울그룹에 인수됐다. 쌍방울그룹 상무였던 D 씨는 2020년 4월 인피니티엔티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2020년 8월부터 2021년 4월까진 대표이사도 맡았다. 지난 8월 26일 사내이사를 사임했다.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 해외 도피 직전까지 정치자금 기부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이 지난 5월 말 해외로 출국하기 직전 정치자금을 후원한 사실도 일요신문 취재 결과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지난 5월 16일 박희영 당시 국민의힘 용산구청장 후보에게 500만 원을 기부했다. 용산구는 쌍방울그룹 계열사 비비안, 아이오케이컴퍼니, 디모아 등이 본사를 두고 있는 곳이다.
지난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용산구청장 후보 출마자 중 300만 원 초과 후원자가 9명으로 가장 많았다. 민주당 김철식 후보의 300만 원 초과 후원자는 단 1명이었다. 국민의힘 김정재 예비후보의 300만 원 초과 후원자는 3명이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