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서해안 앞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로이터/뉴시스 |
새해 정초부터 들려온 끔찍한 사고 소식에 온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지난 1월 13일, 승객과 승무원 4299명을 태우고 이탈리아 치비타베키항을 출발했던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출발한 지 세 시간 만에 이탈리아 서해안의 앞바다에서 좌초됐다. 25일 현재 사망자 수는 모두 16명으로 늘어난 상태. 이번 사고의 원인은 정상 항로를 이탈해 항해하던 유람선이 인근 섬의 암초에 부딪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항해사의 판단 착오 내지는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만 알려졌지만 조사 과정을 통해 숨겨진 사고 경위가 속속 밝혀지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현재 가장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52)이다. 사고 발생 후 보여준 그의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행동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현재 그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제치고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서 ‘비호감 인물 1위’로 떠올랐다.
차가운 겨울밤이 깊어가던 지난 13일, 저녁 8시 35분경. 질리오섬의 주민들은 커다란 유람선 한 척이 섬 가까이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평소와 달리 배가 해안가에 너무 가까이 붙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굉음이 들렸고 잠시 비틀거리던 유람선은 이내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지났을까. 거대한 선체가 마침내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곧 갑판 위는 배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얼마 후 간신히 구명보트에 몸을 실은 승객들이 하나둘 질리오섬에 도착했다.
▲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사고 당시 내부 모습.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
선장을 인근 호텔까지 태워줬다고 말한 택시기사는 “그가 어디서 새 양말을 살 수 있는지 물었다”며 “그는 마치 두들겨 맞은 개처럼 보였다. 추위에 떨고 있었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어떤 승객은 “선장이 담요를 뒤집어쓴 채 몰래 구명보트에 올라탄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탈출 직후 섬에서 스케티노 선장과 마주쳤던 것으로 알려진 라파엘 말레나 신부는 프랑스 주간지 <크리스천 패밀리>를 통해 “그는 나를 보자 껴안고는 마치 아기처럼 15분 동안 엉엉 울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승객들과 유가족들이 분개한 것은 당연한 일. 선장이 승객들의 안전은 뒤로한 채 배를 버리고 도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탈리아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나는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심지어 내 구명조끼마저 포기했다”라거나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중 배가 갑자기 옆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발을 헛디뎌 구명보트 위로 떨어졌다”는 그의 주장도 신뢰를 잃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해안경비대와 주고받은 교신 내용이 공개되면서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녹취록에 따르면 해안경비대장이 “선장은 당장 배로 돌아가라”고 거듭 명령을 했지만 선장은 “배에 다시 올라갈 수가 없다. 구명보트 위에서 구조 지휘를 하겠다”라며 끝까지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배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 외에도 선장의 사고 순간 늑장 대응에 대한 비난 역시 들끓고 있다. 만일 선장이 제때 상황 보고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면 승객 전원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스케티노 선장은 처음 암초와 충돌한 지 30분이 지나도록 해안경비대에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충돌 후 한 차례 배가 흔들리고 정전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으며, 겁에 질린 승객들에게는 “배전기에 문제가 발생했다. 별 문제 아니다”라고 둘러대기 바빴다. 또한 승객들의 신고를 받은 해안경비대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정전이 됐을 뿐이다. 지금 상황 파악 중이다” “예인선만 보내주면 된다”라며 사고 사실을 숨겼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렇게 늑장을 부렸던 걸까. 이에 대해서 일부 언론들은 ‘보상금’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콩코르디아호를 소유한 ‘코스타 크루즈’사가 승객들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한 ‘퇴선 명령’을 내리지 말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배를 버린다’는 의미인 선장의 퇴선 명령이 내려질 경우, 회사 측은 승객 전원에게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그날 밤 결국 퇴선 명령은 내려졌고, 현재 ‘코스타 크루즈’사는 승객 개개인에게 8300파운드(약 1460만 원)씩, 총 2500만 파운드(약 430억 원)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콩코르디아호가 왜 그렇게 섬과 가까이 붙었는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왜 스케티노 선장은 정상 항로를 3.2㎞나 이탈해서 암초가 많은 섬 가까이 다가갔던 걸까. 콩코르디아호가 섬의 해안을 따라 항해한 이유는 사실 유람선의 오래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과거 질리오섬에 살던 수석항해사의 아내에게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뱃고동을 울리면서 불빛을 깜박이며 지나가던 것이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전통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스케티노 선장은 “질리오섬에 살고 있는 은퇴한 마리오 팔롬보 선장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일부러 배를 섬에 가까이 붙였다”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질리오섬이 고향인 안토넬로 티볼리 수석 종업원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충돌 직전 티볼리를 함교로 불러서 “이리 와서 보게. 자네 고향이 바로 가까이 있네”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너무 가까웠다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해 스케티노 선장은 “같은 항로를 여러 차례 다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컴퓨터 시스템을 작동하지 않고 육안으로 운항했던 것이 실수였다”고 자백했다. 말하자면 지나친 자신감이 그만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과 당시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 통역사 돔니카 세르모턴. |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곧 이 금발 여성의 정체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그녀는 유람선에서 러시아 통역사로 일하고 있던 몰다비아 출신의 돔니카 세르모턴(25)이었다. 사고 발생 당시 함교에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진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현재 이탈리아 검찰에 의해 ‘가장 중요한 목격자’로 지목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현재 몰다비아에 머물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지역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사고 당일 선장님과 몇몇 선원들과 레스토랑에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선장님은 우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30분 후 갑자기 정전이 됐고, 동석했던 선원의 부탁에 따라 러시아 승객들의 통역을 위해서 선장이 있는 함교로 올라가 통역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선장 옆에서 ‘선실로 돌아가십시오’라는 말을 러시아어로 10번도 넘게 외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선장님은 용감했고 유능한 분이었다. 그분 덕분에 수천 명이 목숨을 구했다”며 선장의 행동을 두둔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몇 가지 의심스런 구석이 있다. 우선 사고 당일 휴가를 내고 유람선에 탑승했던 그녀는 이상하게도 승객 명단에 이름이 없었으며, 객실도 배정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자연히 그녀가 선장의 내연녀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장의 초대를 받아 배에 승선했기 때문에 티켓이나 객실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유람선의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일했던 알렉산더 바네스쿠는 “이상하게도 그녀는 따뜻한 옷을 입고 소지품을 전부 챙긴 채 구명보트에 올랐다. 다른 승객들이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 채 갑자기 탈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즉, 누군가로부터 배가 침몰한다는 사실을 미리 전달받고 철저히 준비한 후 여유롭게 구명보트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들은 평소 스케티노 선장의 평판을 미루어보건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평소 바람기 많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성의 면모를 보여줬던 선장은 제복의 단추를 늘 한두 개쯤 풀어서 가슴털을 보이는 식으로 여자들을 유혹했으며, 항상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그는 고집불통에 무모한 성격이었으며 허세를 부리기로도 유명했다. 한 승무원은 “선장은 유람선을 마치 페라리처럼 난폭하게 몰곤 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한 달 전에는 항만청의 명령을 무시하고 풍속 60노트의 강한 바람이 부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마르세유항을 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의 이런 화려한 경력(?)과 달리 현재 그에게 붙은 별명은 ‘겁쟁이 선장’이다. 만일 유죄가 인정될 경우, 그는 이탈리아 항해법에 따라 최대 12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