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계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엄정화, 엄태웅 남매. 사진은 합성. 일요신문 DB |
# 다섯 살 터울의 둘째 누나와 막내 동생
엄정화와 엄태웅은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났다. 엄태웅 특유의 느릿한 반응과 엄정화의 강한 외모와는 사뭇 다른 유한 성격은 이때부터 이미 형성됐을 법하다. 두 사람은 1남3녀의 둘째와 막내다. 엄정화의 위아래로 여자 형제들이 있어, 엄태웅은 세 누나 아래서 응석받이로 자랐다.
어릴 적부터 끼가 남달랐던 엄정화는 차분한 성격의 두 여자형제와 달리 괄괄했다. 그런 엄정화에게 다섯 살 어린 엄태웅은 좋은 장난감(?)이었다. 한창 꾸미고 뛰어 놀기 좋아하는 나이의 엄정화 아래서 엄태웅은 항상 오른팔 역할을 했다. 엄태웅이 고등학교 때까지 누나들을 ‘언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엄정화의 가슴 한 편에는 엄태웅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엄태웅이 100일이 될 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태웅은 오직 어머니와 세 누나의 손에서 컸다. “엄태웅을 업어 키웠다”는 엄정화는 “태웅이는 너무 기다리던 막내 아들이라 예쁨을 받고 자랐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항상 짠한 느낌이 있었다”고 말한다.
예쁜 외모에 갖가지 재능으로 항상 주목받은 누나와 ‘순둥이’로 불린 동생 사이에는 다섯 살이라는 나이보다 더 큰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이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나란히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 누나의 속보(速步)
엄정화는 공식 데뷔 전 MBC합창단으로 방송국의 문턱을 넘었다. 1989년 오디션을 거쳐 MBC합창단에 입성한 것. 한 살 많은 가수 장혜진이 그의 선배였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 2년간 매일 MBC에 출근도장을 찍던 엄정화 1992년 드디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활동을 시작했다.
엄정화의 데뷔 작품은 유하 감독의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93)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1년 전 영화 <결혼이야기>로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이 작품에서 엄정화는 섹시한 외모를 가진 DJ로 얼굴을 비쳤다. 하지만 엄정화의 진정한 연기 인생은 이듬해 유하 감독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같은 해 엄정화는 가수로 더 큰 각광을 받는다. 신해철이 만들어 준 ‘눈동자’로 데뷔하며 배우보다 가수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이후 엄정화는 ‘몰라’‘포이즌’‘배반의 장미’‘페스티벌’ 등 숱한 히트작을 내며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엄정화가 배우로서 인정받기까지는 데뷔 후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1994년 영화 <마누라 죽이기> 이후 가수 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2002년 유하 감독과 다시 만나면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연기에 눈뜨게 된다. 엄정화는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꼽으며 “배우로서 자리를 잡게 해준 작품”이라고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 엄태웅, 엄정화, 이효리가 함께 찍은 사진. 사진출처=엄정화 트위터 |
엄태웅은 공교롭게도 누나 엄정화가 데뷔할 때와 같은 나이인 23세에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누나가 시작부터 주연급 배역과 솔로 가수로 우뚝 선 것과 달리 엄태웅의 시작은 미약했다. 경민대 연극영화과에 다니며 나름 정통 코스를 밟았지만 현장은 냉정했다.
처녀작인 영화 <기막힌 사내들>에서 엄태웅이 맡은 역은 국밥집 종업원. 배역의 변변한 이름도 없었다. 그해 엄정화는 정규 3집 <배반의 장미>와 <후애>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가요계 정상을 밟았다. 하지만 당시 엄태웅은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이후 엄태웅이 영화 <실미도>의 훈련병 ‘원상’으로 처음 그럴 듯한 배역을 맡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엄태웅의 소속사 역시 그의 필모그래피를 <실미도>부터 적을 정도다. 이듬해 엄태웅은 역시 강우석 감독의 작품인 <공공의 적2>에서 정준호의 심복으로 출연해 관객들에게 각인됐다.
엄태웅을 먼저 알아본 곳은 스크린보다 브라운관이었다. 2005년 드라마 <쾌걸 춘향>에서 ‘변학도’ 역으로 주목받았고 <부활> <마왕>은 ‘엄포스’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엄태웅이라는 이름을 대중이 꽤 알게 됐지만 여전히 그와 관련된 기사에는 ‘엄정화의 동생으로 유명한’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엄태웅이 누나를 추월할 가능성을 보여준 건 2009년부터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우직한 매력이 돋보이는 김유신 역을 맡아 연말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특수본> 등이 흥행에 성공했고, 지난해 KBS <해피 선데이>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 ‘엄남매’가 함께 찍은 동원F&B CF. |
최근 엄정화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태웅이가 지금 잘돼서 너무 좋다. 나한테 용돈도 준다”고 뿌듯한 마음을 표했다. 그는 “태웅이가 잘 안 풀릴 땐 미치는 줄 알았다”며 “요즘은 자다가도 태웅이 생각하면 ‘아 좋다’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100일 때 아버지를 여읜 후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40년 가까이 지켜 본 금쪽같은 동생이니 오죽할까.
하지만 참 공교롭게도 엄태웅이 도약하는 시기가 엄정화에게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2010년 초 건강검진을 받은 후 갑상선암 선고를 받았기 때문. 2010년 초 엄정화에게 춘사대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베스트셀러> 이후 그는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스크린 속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엄정화를 볼 수는 없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엄정화는 최근 개봉된 영화 <댄싱퀸>의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약 1년간 치료에 전념했다.
그 사이 엄태웅의 활약은 눈부셨다. <선덕여왕> 출연 이후 탄력받은 엄태웅은 <시라노; 연애조작단> <특수본> 뿐만 아니라 드라마 <닥터챔프>에 연이어 출연했다. ‘1박2일’은 일련의 진지한 캐릭터 때문에 정형화된 이미지에 갇혀있던 그를 대중에게 한결 친근하게 다가가게 만들었다.
엄정화의 몸이 힘든 시기에, 엄태웅은 마음이 힘들었다. 지금껏 자신의 곁을 든든히 지켜준 누나의 암 선고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일수록 엄태웅은 스스로를 추스르며 제 몫을 다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엄정화의 몸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두 사람이 속한 심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엄정화가 수술 후 고통스러워할 때 엄태웅도 함께 아픔을 느끼는 것 같았다. 곁에서 바라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든든한 서로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두 남매이자 두 배우는 같은 날, 다른 작품으로 맞붙게 됐다. 지난 1월 중순 서울 삼청동에서 <네버엔딩스토리>의 홍보 인터뷰에 임하던 엄태웅은 근처에서 <댄싱퀸>의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엄정화를 찾아가기도 했다. 경쟁작의 주연 배우가 홍보석상에서 마주친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엄 남매였기에 모두가 유쾌한 자리였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인기만큼 의리도 톱클래스”
엄정화와 엄태웅은 가족애만큼이나 의리가 깊기로 유명하다. 현재 두 사람은 2004년 문을 연 심엔터테인먼트에 함께 몸담고 있다. 이 연예기획사 대표인 심정운 대표와 엄 남매의 인연은 10년이 넘었다. 엄태웅과 심정운 대표가 학교 선후배로 만난 후 지금까지 소속사 대표와 소속 배우로 인연을 맺고 있다.
전 소속사인 유니코리아문예투자에 함께 있던 엄정화와 엄태웅은 심정운 대표가 독립할 때부터 함께 움직였다. 당시 자금이 부족한 회사를 대신해 엄정화는 자비를 들여 밴을 구입했다. 2004년 구입한 이 밴은 여전히 심엔터테인먼트를 위해 달리고 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길 바라는 여타 여배우와 달리 엄정화는 연말 시상식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밴을 다른 배우들을 위해 내줬다.
엄정화는 “태웅이와 심정운 대표의 인연으로 나도 함께 활동하게 됐다. 친동생 같고 가족 같다. 계약은 언제 했는지, 계약 기간이 지났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인지도 높은 엄정화의 활약이 초창기 심엔터테인먼트를 버티게 해줬다면 엄태웅과 심엔터테인먼트는 함께 발전해왔다. 오랜 무명 생활을 해 온 엄태웅은 심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된 지 불과 두 달 후인 2005년 1월 <쾌걸 춘향>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김윤석 강신일 등 무명 배우들도 조금씩 인지도를 쌓기 시작하면서 소속사는 중견 연예기획사로 우뚝 섰다.
심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엄태웅의 성공은 신인 배우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후 서우 주원 등 신인들에게 투자해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 됐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던 엄정화는 기복 없는 활동으로 소속사가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정식적 지주가 돼줬다”며 “엄 남매는 인기뿐만 아니라 의리 역시 대한민국 연예인 중 톱클래스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 영화 <네버엔딩스토리> 제작보고회에서 주연배우 엄태웅, 정려원이 인사를 하고 있다. |
“동생이 앞질러도 좋아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예인 가족인 ‘엄 남매’의 또 다른 수식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노총각-노처녀 배우다. 엄정화와 엄태웅의 나이는 각각 44세와 39세. “태웅이를 앞세울 마음이 있다”는 엄정화의 말처럼 누가 먼저 결혼 발표를 해도 모두가 쌍수 들고 반길 나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결혼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아 온 엄정화에게 결혼 이야기는 피하거나 꺼릴 만한 소재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 엄정화에게 반가운 변화가 생겼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엄정화는 “(웃으며) 결혼도 상대가 있어야 하죠. 지금은 그냥 막연해요. 중요한 건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그 조차도 제게는 대단한 변화예요. 태웅이에게 좋은 사람이 있으면 앞세울 거예요. 태웅이도 이른 건 아니니까요”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누나에게 교육이라도 받은 것일까. 결혼 이야기는 다른 연예인들이라면 민감해 할 만한 소재지만 엄태웅 역시 웃음으로 받아 넘긴다. <네버엔딩스토리> 개봉을 앞두고는 “250만 관객이 들면 (함께 출연한) 정려원과 결혼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 <네버엔딩스토리>의 흥행 성적을 감안하면 지킬 필요가 없는 선언이 됐지만 ‘250만’이라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스코어를 제시한 엄태웅의 저의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엄태웅의 이런 발언을 접한 엄정화의 반응 또한 압권이었다. “정려원이면 환영이다”라고 운을 뗀 엄정화는 “같은 교회에 다니며 기도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려원과는 잘 아는 사이다. 예쁘고 싹싹한 친구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엄정화는 한마디 덧붙였다. “올케가 연예인이면 좋다. 단! X가지는 있어야 한다”고.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