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국가나 도시 혹은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시설이나 건축물을 뜻한다. 전쟁 등을 거치며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랜드마크라고 불릴 만한 건물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각 지역마다 랜드마크 반열에 올라서는 건물이 하나둘씩 생겼다. 이들 건물은 대부분 당시 비약적으로 사세를 키우던 기업들과 연관이 깊다. 이 때문에 해당 랜드마크의 역사는 기업 또는 산업의 역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새롭게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물은 시장과 산업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일요신문이 각 지역 랜드마크와 기업이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다.[일요신문] 호텔은 과거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소비 수준 향상에 힘입어 문턱이 점차 낮아졌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호캉스(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호텔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호텔은 2013년 1018개에서 2019년 1480개로 증가하는 등 호텔업도 전례 없는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호텔업의 성장세가 주춤했다.
그중에서도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서울신라호텔은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호텔로 꼽힌다. 서울신라호텔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해 시내와의 접근성이 좋고 규모도 크며 무엇보다 객실과 시설이 최고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외 귀빈의 선택지 최상단에 있는 호텔로 국가 행사 장소로도 자주 사용된다. 서울신라호텔에 묵은 유명인으로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블라터 전 국제축구연맹 회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있다.
서울신라호텔 부지가 처음부터 숙박시설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2년, 일본 정부는 현 서울신라호텔 부지에 이토 히로부미 전 일본 총리를 기리기 위한 사찰 ‘박문사’를 설치했다. 박문사는 해방 후인 1945년 전소된다. 일각에서는 사고로 발생한 화재가 아닌 누군가의 방화였다는 뒷말이 나왔다.
정부는 1967년 박문사 부지에 해외 귀빈을 대접하기 위한 영빈관을 건설했다. 그러나 당시 재정이 악화된 정부는 청와대 영빈관을 신설하고, 기존 영빈관 부지와 건물을 삼성그룹에 매각했다. 매각가는 28억 4420만 원으로 헐값 매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큰 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삼성그룹은 해당 부지에 호텔을 짓기로 결정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호텔 건설을 위해 일본 자본을 유치하면서 비판 여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호텔신라 법인 설립 과정에서 일본 기업의 투자를 받았고, 호텔 설계는 일본 다이세이건설이 맡았다.
박문사 터라는 역사적 사실부터 일본 기업 투자 구설수에 이어 일본과 관련된 악연은 2000년대를 넘어서도 이어졌다. 2012년에는 서울신라호텔 귀빈층에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비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앞서 2004년에는 서울신라호텔에서 ‘자위대 창립 50주년 기념 리셉션’이 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신라호텔 건설을 주도했던 인물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사위이자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삼남인 고 구자학 전 아워홈 회장이었다. 구 전 회장은 호텔신라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서울신라호텔 건설을 진두지휘했지만 정작 호텔이 오픈하기 전인 1976년 삼성그룹을 떠나 LG그룹에 합류했다. 삼성그룹은 박무승 당시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대표이사를 호텔신라 대표로 선임해 호텔 공사를 이어갔다.
서울신라호텔은 1978년 완공돼 1979년 공식 오픈했다. 기존 영빈관 건물은 호텔 연회장으로 활용했다. 서울신라호텔은 오픈과 동시에 큰 관심을 받았다. 정·재계 주요 인사가 이곳에서 회의를 열었고, 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심심치 않게 방문할 정도였다. 호텔신라 스스로도 다른 유명 호텔의 직원을 스카우트하는 등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호텔신라는 서울신라호텔 성공에 힘입어 1990년 제주도에 제주신라호텔을 추가로 개관했다. 제주신라호텔은 영화 ‘쉬리’나 드라마 ‘올인’ 등의 촬영지로 쓰여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 제주신라호텔에서 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는 등 국가 행사도 자주 이뤄졌다.
호텔신라는 1990년대 들어 계열분리설에 휩싸이게 된다. 한솔그룹이 1991년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될 당시 재계에서는 호텔신라가 한솔그룹에 편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오랜 기간 호텔신라 고문을 맡았기 때문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이인희 고문의 몫으로 한솔제지,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호텔신라를 배정했다는 뒷말도 나돌았다. 한편으로는 신세계백화점 임원이 호텔신라 임원을 겸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신세계그룹에 편입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호텔신라 분리를 반대한 사람은 다름 아닌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호텔신라에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 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이인희 고문은 본인 소유 호텔신라 지분을 이건희 회장에게 넘기면서 호텔신라를 포기했다. 신세계그룹 역시 조선호텔(현 조선호텔앤리조트)만 갖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호텔신라는 2010년대 들어 유통업계에서도 큰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호텔신라는 1986년 서울신라호텔 안에 신라면세점을 개장했으며 2015년에는 HDC현대산업개발과 합작해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오픈했다. 호텔신라는 이후에도 인천국제공항, 김포공항, 제주공항 등 국내 주요 공항뿐 아니라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등에도 신라면세점을 열었다. 이 밖에 서울신라호텔 아케이드에는 에르메스, 모이나, 그라프 등 명품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호텔신라 유통업 진출과 사업 확장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사장은 2001년 호텔신라 부장으로 합류해 상무, 전무 등을 거쳐 2010년 사장에 취임했다. 이 사장은 2015년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의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직접 중국을 방문해 외교부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사장이 당시 “면세점 사업자 선정이 잘되면 다 여러분(임직원) 덕이고 떨어지면 내 탓”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부진 사장 취임 후 호텔신라는 이렇다 할 경영 위기 없이 순탄한 성장을 거둬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이 사장의 경영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호텔신라는 2020년 1853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다. 다행히 2021년 118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매출은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여전히 절반 수준이다. 이부진 사장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한옥 호텔도 코로나19로 인해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호텔신라의 호텔 사업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면세점 사업의 회복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 대비 위안화 약세 지속으로 따이공(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거래하는 보따리상)의 구매력이 하락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면세점이 따이공에게 지불하는 수수료율은 소폭 높아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도 “유커 방한이 현실화되고 있지 않아 면세점의 본격적인 실적 호전 시기는 늦춰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부진 사장은 올해 3월 호텔신라 주주총회에서 “사업의 수익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며 “기업가치 상승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이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딛고 호텔신라의 성장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