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10월 12일 기준금리를 2.5%에서 3%로 올렸다. 한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이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높여 0.5%에서 1년 2개월 만에 2.5%p 급상승하게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 3월에야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0.125%에서 3.25%로 더 짧은 기간에 3.125%p나 높였다. 연준이 연내 1.25%p를 더 올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은도 11월 24일 다시 0.5%p 높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은이 금리를 올려봐야 미국이 더 올리면 환율 하락 효과는 상쇄된다.
최근 1년 새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20% 넘게 하락했다(10월 11일 종가 기준). 최근 경제위기 조짐을 보이는 영국 파운드화의 절하 폭(19.8%)은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유로화의 가치하락 정도(16.4%)보다 깊다. 우리 경제구조에서 환율 상승은 곧 물가 부담이다. 이명박 정부 때 고환율이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등장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출할 제품을 만들려면 필요한 원재료 등의 수입단가도 높아진다. 이젠 우리 수출기업 대부분이 해외 현지 생산기반을 갖고 있다.
환율을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달러 유·출입이다. 달러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환율이 오른다. 우리나라의 달러는 크게 세 가지 경로로 유입된다. 무역을 통해 벌어들이든지, 해외에서 빌려 오든지, 외국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경로다. 무역 흑자를 유지하던 우리나라는 올해 무역적자로 전환됐다. 글로벌 긴축으로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은 물론 채권도 팔기 시작했다. 무역에서도 달러가 부족해졌고, 주식과 채권을 털고 나가는 달러 환전 수요도 늘었다. 결국 부족한 달러는 빌려와야 한다.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은행 간 시장이다. 외국환 은행 간의 거래가 환율을 결정한다. 환전도 모두 이들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외환 직접 조달 창구인 역외시장(Off-shore Market)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경제규모가 작고 변동성에 취약해 투기세력의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비개방은 우리나라 증시가 선진증시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우리 외국환 은행들은 국제시장인 역외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조달하지 못한다. 도매 거래에 끼지 못하는 셈이다.
우리 외국환 은행들이 달러를 조달하려면 도매상, 즉 역외시장에 참여하는 글로벌 은행들에게 빌려야 한다. 글로벌 은행들도 달러를 구하는 데 비용이 든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글로벌 은행들의 달러 조달비용이 높아지고, 우리 외국환 은행들은 차입에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화는 도매시장에 끼지 않고 소매 거래만 고집하는 통화이기 때문이다. 원화 환율이 다른 주요국 대비 유난히 가치가 많이 떨어진 이유다. 심지어 글로벌 은행들의 한국지점이 우리나라 외환 거래를 좌지우지하는 기형적 상황도 발생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외국환 은행의 하루 평균 외환 거래 규모는 583억 1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그런데 국내 은행 거래 규모는 259억 7000만 달러로 4.9% 늘었을 뿐이다. 외국 은행 국내지점 거래는 323억 3000만 달러로 규모가 훨씬 더 크고 전년 대비 증가율도 15.2%로 훨씬 더 높았다. 한국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도 이들 외국 은행 국내지점을 통한다. 외국 은행 국내지점들이 우리 외환시장에서는 자금면에서나 정보에서 모두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시장의 정설이다. 환율 변동성이 컸던 해에 외국 은행 국내지점 순이익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지난 9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한 달 새 196억 6000만 달러 가까이 줄어든 4167억 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절대 규모로 세계 8~9위 수준이다. 연기금과 국부펀드, 기업들이 보유한 외환 규모도 상당하다.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 가능성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주요국보다 큰 환율 변동성은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환율 방어 과정에서 금리 상승은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는 엄청난 잠재 위험이다. 외환 불안이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환위기 시절 생활고 재연되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거푸 올리면서 과연 대출금리가 얼마나 오를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주식과 가상자산,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으로 자본소득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자 부담 급증은 내년도 우리 경제를 무겁게 짓누를 요인이다. 외환위기 당시 이상의 생활고를 각오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한은 기준금리는 내년 최소 4% 이상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가장 최근 기준금리가 4% 초반이던 때는 2006년 2월~2007년 6월이다. 당시 예금은행 대출금리는 기업 6.2%, 가계 6% 수준이었다. 국고채 3년 금리는 4.5~5.3% 사이로 지금보다 높았지만 대출금리와 기준금리 차이가 2%p 이내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이후 예대금리차 평균은 기업대출 2%p, 가계대출 2.5%p에 달한다. 가계 평균 6%대 이상의 이자율은 각오를 해야 하는 셈이다. 최근 대출은 이자뿐 아니라 원금 일부도 분할 상환해야 한다. 실제 금융비용은 이자율보다 더 크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 평균금리가 7%까지 오를 경우를 가정한 시뮬레이션도 했다. 그 결과 연소득의 70%를 대출 원리금 상환에 사용해야 하는 이들이 19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하면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다. 환율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면 최저생계비도 높아져 이들 대출은 연체 등으로 부실화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정부는 ‘배드뱅크’ 성격의 새출발기금 30조 원을 마련해 자영업자 25만 명의 부채를 최대 90% 감면해 줄 방침이다. 하지만 ‘탕감’ 대상자가 소득세 면세점 이하가 대부분인 자영업자에 한정된다. 정작 소득세를 꼬박꼬박 내는 중산층 직장인들의 부채 부담에는 속수무책이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 175만 원(KB부동산 9월 5일 기준)이다. 담보인정비율(LTV) 40%를 적용해 2억 4000만 원을 대출받았다면 연간 이자만 1700만 원에 달한다. 원금 분할상환까지 감안하면 연간 2000만 원에 육박한다. 도시가구 평균 소득(521만 원)을 적용하면 연소득의 3분의 1을 빚 갚는 데에만 써야 하는 셈이다.
LTV가 낮아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은 당장 높지 않다고 해도 빚 부담에 가계 소비가 급감하면 경기가 급랭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매출이 줄고 이는 고용과 임금을 통해 가계로 전달된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