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효율성 내세우지만 기준 불명확하고 무기계약직 많아…“전 정부 때 정규직화 된 정원 없애는 형식” 주장
지난 7월 29일 기획재정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주재로 열린 제9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상정‧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추 부총리는 “공공기관의 비효율과 방만 경영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며 “공공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해 허리끈을 졸라매고, 뼈를 깎는 강도 높은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혁신가이드라인은 공공기관의 생산성‧효율성을 중심으로 기관별 혁신계획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전체 공공기관(350개)이 그 대상이다. 혁신가이드라인은 △기능 △조직·인력 △예산 △자산 △복리후생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중 조직·인력 부문은 비대한 조직·인력 슬림화 및 23년도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인위적 구조조정과 민영화 등은 배제하고 기관 특성에 맞춰 자체적으로 혁신계획을 수립해 제출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들은 인원 감축 등의 내용을 담은 혁신계획안을 기재부에 제출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28곳에서 제출한 ‘공공기관 혁신계획안’을 조사한 결과 21개 기관이 총 2057명 감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의 관할 아래 있는 공공기관들이 인원을 줄일 계획이다.
문제는 공공기관들이 정규직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은 계약직 및 무기계약직을 감축 대상에 대거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들에서 감축 계획 중인 인원의 70%가 공무직·무기계약직이었으며,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들도 상위직급 2~3명 줄일 때 무기계약직은 148명, 250명 감축한다. 사회적 약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들의 감축 인원도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계약직이나 무기계약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창근 공공연대노조 한국도로공사 지부 지부장은 “인원 감축 대상에 해당되는 직군이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직군들도 많은데 결국 현장지원직들을 줄인다”며 “나라가 어렵다고 직원들 줄이는 방식이 과연 혁신인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현장지원직은 문재인 정권 때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무기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이다. 국토부 산하의 한국도로공사는 424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혔고, 그중 417명이 무기계약직이다.
감축대상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어떤 직무의 인원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이 명시돼있지 않았다. 유창근 지부장은 “공공기관 인원 감축 계획을 진행하려면 명확한 기준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감축하라는 식이다”며 “결국 문재인 정부 때 정규직화 됐던 정원을 없애는 형식이라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의료기관처럼 필수 업무들이 많은 공공기관들도 인원감축을 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사회적으로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어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관련 공공기관들이 24시간 내내 교대를 하면서 일을 하는데 그런 곳까지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한 기준으로 인원감축을 해야 한다면 남아있는 직원들의 업무 강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러한 점을 정부가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무리하게 인원을 감축했을 때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 12일 전국공공연구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전했다. 노조는 “정부가 연구개발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일방적인 간섭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력감축 등 조직 인력 슬림화에 대해 20여 개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의 79%가 반대 의사를 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원 감축보다 공공기관 기능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시경 단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공공기관들이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복되는 일은 없는지에 대해 먼저 점검한 후 가장 마지막에 인력 효율화를 해야 한다”며 “공공기관마다 필요에 따라 인력 증원도 있을 수 있고,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는데 단순히 인력만 무작정 줄이는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필요에 따라 업무 통폐합을 하는 것은 공감하지만 무작정 인력감축을 한다고 하니까 공공기관 죽이기 느낌이 강한 것 같다”며 “지금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세워져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필요에 의해 있던 사람들이 감축되면 어쨌든 공공서비스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어떤 직무의 직원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공공기관에 일임하게 되면 결국 약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감축 대상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기획재정부 공공정책총괄과 관계자는 “혁신 계획안을 확정하게 되면 관련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대해 내부 논의와 검토를 거치고 있는 상황이고, 아직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공공기관들이 많아서 무기계약직 감축 문제나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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