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규제 회사 지분 늘려, 다른 오너 일가 팔 지분도 느는 셈…효성 “주가 부양 책임경영 차원”
조석래 명예회장은 지주사 효성 지분을 지난 9월 26일부터 이달 4일까지 6차례에 걸쳐 5450주를 매입해 보유 주식을 204만 6493주, 지분은 지난해 말 9.43%에서 9.71%로 늘렸다. 효성화학 지분 매입도 눈에 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5일까지 1020주를 매입해 소유주식 수를 22만 7774주로 늘렸다. 지난해 말 6.7%였던 지분율은 이번 지분 매입으로 7.14%까지 상승했다.
효성티앤씨도 마찬가지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지난달과 이달에 걸쳐 효성티앤씨 주식 1305주를 매입해 소유 주식 수를 37만 7471주로 늘리며, 올해부터 이어진 지분 매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8.19%였던 지분율은 8.72%로 높아졌다.
재계에서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지분 매입에 대해 의아하다는 시각을 보낸다. 그룹 경영권 승계는 이미 조현준 회장이 2017년 회장직에 오르면서 마무리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주사 효성의 최대주주도 조현준 회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에서 물러난 조석래 명예회장이 새삼스레 지주사를 포함해 조현준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 주식을 꾸준히 매입하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더욱이 조석래 명예회장이 향후 다음 세대에 주식을 물려줄 경우 증여세 등 막대한 세금이 발생할 수 있는데, 지금의 지분 매입은 이 규모를 더 키우는 일이다. 지분 규모를 확대할수록 내야 하는 세금이 그만큼 증가한다. 보통 재계 주요 인사의 증여는 대규모다. 이 경우 증여 규모가 커 증여세 최대구간에 해당하는 50%의 세금이 부과된다. 다시 말해, 조석래 회장은 향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지분을 50%의 프리미엄을 주고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지분 매입 행보에서 특히 주목되는 곳은 효성화학과 효성티앤씨다. 두 회사는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이다. 오너 일가 지분율 24.24%인 효성화학은 지난해 매출액 가운데 3065억 원을 효성그룹 내 계열사를 통해 올렸다. 오너 일가 지분율 24.27%인 효성티앤씨는 지난해 매출액 가운데 1조 3980억 원을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거뒀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 및 특수관계인이 20% 이상 주식을 소유한 국내 계열사와 그 계열사가 발행 주식 총수의 50%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한 국내 계열사 가운데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 원을 넘거나 비율이 연 매출의 12% 이상일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룹 차원에서 불합리한 조건에 오너 일가에 일감을 몰아줬을 경우 감독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과징금 등 제재를 가한다. 또 공정위의 집중 감시대상이 되기 때문에 재계에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계열사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추세다.
재계에서는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준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효성도 이러한 방법을 쓴다면 이번에 조석래 명예회장이 효성화학과 효성티앤씨 지분 매입을 한 것은 계획에 차질을 빚어지게 하는 것이다. 조 명예회장이 늘린 지분만큼 다른 오너 일가가 낮춰야 할 지분이 늘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이 두 회사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준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면서 “다만 아직까지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효성화학은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4.24%포인트, 효성티앤씨는 4.27%포인트 이상 낮춰야 한다. 이는 조현준 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현준 회장은 효성화학 8.76%, 효성티앤씨 14.59%의 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조현준 회장이 지분율을 낮추지 않으면 규제대상에서 회피하기 어렵다.
조현준 회장 입장에서는 효성화학과 효성티앤씨 모두 알짜 회사여서 지분을 매각하기가 아쉬울 수 있다. 효성화학은 연결기준 지난해 매출액 2조 4529억 원, 영업이익 1485억 원을 올렸다. 효성티앤씨는 매출액 8조 5960억 원, 영업이익 1조 4236억 원을 거뒀다.
효성그룹 측은 조석래 명예회장이 주가 부양을 위한 책임경영 차원에서 지분을 매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효성화학과 효성티앤씨 주가는 올해 하향세다. 올해 36만 원대였던 효성화학의 현재 주가는 11만 원대로 주저앉았다. 60만 원대였던 효성티앤씨는 28만 원대로 내려왔다.
한편, 현재 효성그룹에서 조석래 명예회장의 존재감은 적잖다. 지주사 효성의 지분율을 보면 조현준 회장이 21.94%로 가장 많지만 그의 동생 조현상 부회장(21.42%)과 격차가 1%포인트 이내다. 비록 승계가 마무리됐다고 하지만 9.71%를 가지고 있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선택에 따라 효성그룹의 지배구조 지형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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