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대령 출신 ‘대북 파이프라인’ 활용 가능성…당사자 “아태협과 접촉 없어, 민주평화광장 참여도 내 뜻 아냐”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쌍방울 대북사업 이면에 숨겨진 인물을 포착했다. 그는 전직 정보사 대령 출신으로 두터운 ‘대북 파이프라인’과 정보분석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그가 쌍방울 대북사업의 ‘키맨’이 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2018년 11월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는 경기도 고양시 소재 호텔에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했다. 경기도 평화부지사였던 이화영 전 의원도 있었다.
이화영 전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 핵심 측근인 동시에 친명계로 분류되던 인물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재명 대표와 이해찬 전 대표 사이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방 아무개 쌍방울 대표이사도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선 북한 측 고위 인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아태평화위원회는 대남 민간 교류를 담당하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위원회로 꼽힌다. 리종혁은 김정일 중·고교 동창으로 알려져 있는 북한 내 원조 대남통으로 꼽힌다.
남북 평화무드가 조성됐던 2018년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거물급 북한 측 인사가 깜짝 방한한 행보는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후 리종혁은 2019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같은 행사에서도 얼굴을 비췄다. 최근엔 쌍방울 고위 관계자가 중국 현지에서 '북한 외화벌이 총책' 리호남과 접선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선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방한 등을 성사시킨 키맨의 존재가 거론됐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쌍방울 이사로 등기돼 있던 이 아무개 전 쌍방울그룹 중국총괄 부회장이었다.
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종혁 급 인사의 방한을 성사시킬 만한 인적 네트워크, 즉 통일전선부와 소통 가능한 ‘대북 파이프라인’ 보유 인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물밑에서 은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갖춘 키맨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또 다른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쌍방울이 중국 등지에서 북한 인사를 접촉할 때 이 인사가 어느 정도 지위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라면서 “한마디로 북측에서 나오는 인사가 ‘찐’인지 확인하는 정보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부회장은 북한 관련 인사에 대한 심층적인 정보분석을 통한 조언 및 자문이 가능한 인물”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서 북한 국적 인사를 접촉하는 경우 ‘그런가보다’ 하고 만난다. 실질적으로 이 사람이 북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확하게 분석하고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정보사 고위 관계자 출신들은 북한 내부에서 각 인사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속속들이 파악하는 데 특화돼 있다.”
정보기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화영 전 의원이라든지 방 아무개 쌍방울 대표이사는 북한 측과 단순 교류는 몰라도, 고위 관계자의 방한 자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성사시킬 만한 네트워크를 보유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령으로 예편한 정보사 고위 관계자가 쌍방울 고문으로 활동한다는 이야기는 꽤나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 고위 관계자가 전북 출신이라 쌍방울과 연고가 겹쳐 그러려니 했던 부분이 있었다. 최근 쌍방울과 아태협을 둘러싼 대북사업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가장 먼저 그 정보사 대령 이름이 떠올랐다. 북한 고위 관계자 방한을 추진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데다 해당 인물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가능한 인물은 쌍방울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뒤져도 손에 꼽을 만큼 찾기가 어렵다.”
복수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가 언급한 전직 정보사 대령은 바로 이 아무개 전 쌍방울그룹 중국총괄 부회장이었다. 이 전 부회장은 육사 36기로 임관해 정보사 특임부대 팀장(HID), 주중 한국 대사관 무관 등을 거쳐 2010년경 대령으로 예편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전 부회장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정보사령관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군 내에서 에이스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정보사 에이스’ 출신이 쌍방울 고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2018년엔 ‘길림 트라이’ 법인장이었던 방 아무개 대표이사와 함께 쌍방울 사내이사로 등기됐다. 이 전 부회장은 방 대표이사와 함께 2020년 등기 말소됐다. 방 전 대표이사는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와 더불어 아태협 대북사업을 추진한 핵심 인물로 꼽힌다.
이 전 부회장은 사단법인 한중지역경제협회 회장으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법인등기부 등에 따르면 한중지역경제협회 주소지는 서울시 중구 무학동 소재 빌딩 9층이다. 이 사무실 주소 건물엔 쌍방울그룹 간판이 걸려 있었다. TRY 본사 직영점과 비비안 신당 직매장이 함께 둥지를 틀고 있었다. 한중지역경제협회 홈페이지에 명시된 주소는 달랐다. 홈페이지는 한중지역경제협회 주소를 서울시 강남구 소재 쌍방울빌딩으로 명시했다.
한중지역경제협회는 2016년 5월 쌍방울과 중국 중발그룹의 업무협약식에 등장했다. 당시 업무협약 골자는 제주 특산품 등을 중국시장에 유통하고, 제주도 중국기업 인센티브 관광 유치였다. 양선길 쌍방울 회장(당시 대표이사), 대호 중국 중발그룹 대표이사 그리고 한중지역경제협회 회장직을 겸하고 있던 이 아무개 전 쌍방울그룹 부회장이 나란히 협약을 체결했다.
양 회장은 2018년 ‘대북 광물 사업’을 정조준하던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쌍방울이 북한 광물 사업 선봉에 내세웠던 법인이다. 양 회장은 2021년 쌍방울 회장으로 취임했다. 양 회장은 현재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해외 도피 중이며, 아태협이 주최한 대북 행사 개최 당시 북한 고위층과 직접 만난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
해당 협약식 이후인 2018년 이 전 부회장은 쌍방울 등기이사가 됐다. 이 전 부회장 등기이사 재직 기간은 2018년 4월 9일부터 2020년 4월 9일까지였다. 아태협이 주최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행사는 2018년과 2019년 2년에 걸쳐 경기도 고양시와 필리핀 마닐라에서 각각 개최됐다. 시기적으로 이 전 부회장이 쌍방울그룹 등기이사로 재직 중이던 때와 맞물린다.
정보기관에 재직했던 한 관계자는 “쌍방울이 후원한 아태협 대북 행사에 북한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이 정도 섭외력을 갖춘 인물은 정말 드물다”면서 “이 전 부회장의 경우 중국 무관으로 활동하면서 북한 통일전선부와도 소통하는 채널이 구축돼 있는 인물이다. 북한 대표단의 행사 참석을 이 전 부회장이 물밑에서 추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2020년 4월 쌍방울 등기에서 이 전 부회장 이름이 말소된 뒤 그의 이름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들려왔다. 바로 정치권이었다. 지난해 5월 12일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외곽조직 범민주개혁 진영 모임 ‘민주평화광장’이 출범했다. 민주당의 ‘민주’, 경기도 도정 가치인 ‘평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연구재단 ‘광장’을 아우르는 조직이었다.
이 조직은 현역 국회의원과 지방자치의원 등 1만 5000명 발기인을 중심으로 출범했다. 민주평화광장은 출범과 동시에 주요 발기인 454명을 공개했다. 민형배 의원 등 현역 의원 18명을 비롯해 전국에 분포된 지방자치의원들이 발기인 명단에 합류했다. 이 전 부회장은 전직 주중 한국 대사관 무관 직함으로 명단 365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아태협 회장 안 아무개 씨가 발기인 명단 342번에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엔 외교가에서 이 전 부회장 이름이 언급됐다. 중국 상하이 총영사 하마평에 오른 까닭이었다. 이 전 부회장의 상하이 총영사 임명은 돌연 없던 일이 됐다. 2021년 12월엔 이 전 부회장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로 내정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이 전 부회장은 총영사로 부임하지 못했다.
정보기관 관계자와 외교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전 부회장이 과거 정보사 소속 해외 공작 업무를 담당했던 이력으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 당국이 아그레망(외교관 특권) 발급을 보이콧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상하이 총영사는 유력 정무직이 통상 가는 자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외교관 출신이 주로 파견되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런데 그런 자리 하마평에 군 출신 인사가 거론되자 군이나 외교가 모두에서 상당히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대북 소식통은 “블라디보스토크는 대북사업의 새로운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라면서 “코로나19 유행 이전 북한 벌목공들의 귀국 전 집결지로 여겨지던 포인트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 나진, 중국 길림성 훈춘과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지역으로 최근엔 대북 핫라인을 띄우기에 훈춘보다 더 적합한 지역으로 떠올랐다”면서 “훈춘엔 쌍방울 중국 현지 법인인 길림 트라이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이 전 부회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로 내정된 사실 자체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했다.
아시아 소재 국가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 관계자는 “총영사 인사를 이렇게 파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라인은 ‘윗선’ 정도”라면서 “결과적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 전 부회장을 상하이나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로 기용하려는 움직임은 외교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고 했다.
이 전 부회장은 현재 쌍방울그룹 부회장직을 내려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금은 한 스포츠기관단체 수석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상임고문직을 맡기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10월 13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쌍방울 임원으로 재임하던 시절 아태협 대북사업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대해 “아태협과는 일면식도 없고 본 적도 없다”면서 “쌍방울 대북사업 관련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관련 행사에 사진도 찍힌 적이 한번 없다. 애당초 그림자도 안 비쳤다”고 해명했다. 이 전 부회장은 “쌍방울 재임 당시에 중국 공장 4곳을 관리만 했고, 국내엔 전혀 관계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전 부회장이 설립한 사단법인 한중지역경제협회 사무실 주소가 쌍방울 건물에 등기돼 있는 사실관계와 관련해 이 전 부회장은 “사드 배치, 코로나19 등 이슈로 인해 활동을 거의 지금 못하고 있다. 상주하지 않고 주소만 거기 있는 것”이라면서 “한중지역경제협회 회장직을 연임한 뒤 지금은 회장직을 맡지 않고 있다”고 했다.
2021년 5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선 준비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민주평화광장 발기인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것과 관련해 이 전 부회장은 “주위에서 내 이름을 아마 넣은 것 같다”면서 “내가 동의해서 이름이 올라간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전 부회장은 “지난해까지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상임고문을 맡았기 때문에 정치성향이 극 보수”라면서 “(발기인 명단에 이름이 들어간) 그 이후에 일체 무슨 캠프에 들어간 적도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말기 상하이 총영사와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하마평에 올랐던 사실이 정치적 상황이나 성향과 무관한 것인지를 묻자 이 전 부회장은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상임고문을 한 이력을 두고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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