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들이 연세가 많아요. 다 저보다 15년, 18년 더 나이 드신 분들이에요. 저보다 역사도 많이 알걸. 세상살이도 훨씬 많이 안다고 봐야지."
전라남도 나주엔 풀이 무성해서 정글 같은 과수원이 있다. 나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80년 역사의 배밭. 김경학 씨(59)는 30년 전 배울 것 많은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두 남매를 데리고 아내와 같이 장모님의 배밭으로 왔다.
스스로 '노예'(노동하는 예술가의 줄임말)라 칭한다는 김경학 씨는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이자 농부이다. 배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 차가 된 경학 씨. 경학 씨의 농사 스타일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의 뜻을 닮았다.
배에 종이 봉지를 씌워 보호하지도 않고 성장촉진제를 주며 배의 성장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일정한 맛과 모양의 배를 수확할 수는 없어도 자연이 키워준 배를 보며 경학 씨는 그저 고마움을 느낀다.
김경학 씨의 일상엔 흙이 늘 함께한다. 흙으로 집을 짓고, 흙으로 그림을 그리고. 남들은 그냥 밟고 지나가는 흔한 존재라 여길 수 있지만 김경학 씨에게 흙은 지구상 최고의 존재이다.
식물이 뿌리내리는 바탕이자, 식물이 뿌리내리기 위해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는 흙. 빠름이 미학인 현대 사회에서 흙은 느림의 미학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2년째 흙을 이용해 한옥을 짓고 있는 경학 씨. 흙은 시멘트처럼 빨리 마르지 않지만, 천천히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경학 씨에겐 즐거움이다.
김경학 씨에게는 배밭 말고도 밭이 하나 더 있다. 300평(약 991m2) 가까이 되는 풀들의 밭, 이름하여 '풀들의 영토'다. 농부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일등 공신인 들풀인데 경학 씨는 그런 들풀을 키운다는 것이다. 모든 미물에도 생명이 있다는 경학 씨의 철학. 경학 씨에겐 들풀도 소중히 키워야 하는 존재이다.
마을벽화를 그리기 위해 김경학 씨와 마을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학 씨에게 반말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경학 씨는 친한 친구 같은 선생님이다.
자연스러움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는 경학 씨. 이들이 함께 보내는 격 없는 시간은 수업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워 보인다.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벽화를 그리는 아이들의 얼굴에 즐거운 웃음꽃이 피어난다.
큰 태풍을 앞두고 배밭으로 향하는 김경학 씨. 경학 씨가 도착한 곳은 자신이 돌보는 배밭이 아닌 장모님의 배밭이다. 사람의 힘으로 태풍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자식같이 소중한 배를 두고 걱정할 장모님을 위해 경학 씨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사실 태풍은 경학 씨에게 받아들여야 할 손님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받아들이고, 또 보내줘야 하는 손님이라는 경학 씨. 경학 씨는 자연(自然)을 '있는 그대로' 욕심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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