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원소설과 연금술
'4원소설'은 말도 안되는 이론 같지만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다. 사람의 몸을 보면 60% 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으며 공기(산소)가 있어야 살 수 있고, 불로 태우면 사라지고, 사망한 후 그대로 놔두면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이유도 흙으로 돌아가자는 귀소본능 때문이며 그 열매의 원소 역시 흙이라는 땅에서 올라왔고, 태양이라는 불, 비라는 물과 호흡을 위한 산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상은 유럽이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바뀌면서 사라진다. 흔히 이야기하는 중세 암흑기다. 세상은 신이 만들었으니 만물의 본질을 나누는 것도 신본주의와 맞지 않았다. 덕분에 이 4원소설은 유럽이 아닌 서남아시아로 이어져 연금술로 발전하게 된다.
물, 불, 공기, 흙의 양을 조절하고, 온, 냉, 건, 습을 가하면 세상의 모든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상 아래 금을 만들려고 했다. 여러 물질에 열을 가하거나 진공 상태로 만드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한다. 결국 금은 못 만들지만 물질이 바뀐다는 바뀔 화(化)란 단어를 넣은 화학(化學)이란 개념을 잡아주었고 현대 과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술에도 역시 똑같은 방법이 시도되었다. 와인이나 맥주, 막걸리와 같은 곡물 발효주에 열을 가해본 것이다. 막상 열을 가하니 물보다 알코올이 먼저 기화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알코올(에탄올)은 78도에서 끓는다.
먼저 기화된 알코올은 상승하지만 이내 찬 성질을 만나면 다시 액체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술의 증류. 영어로는 스피릿(Spirit), 발효주의 영혼(알코올)만 뽑아냈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전후로 이 연금술을 받아들여 위스키, 코냑, 보드카 등의 증류주가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몽골이 이슬람까지 정복한 뒤 연금술을 받아들여 고려에 소주 기술을 전래하게 된다. 결국 소주는 연금술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사상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기술이 아닌 생각과 철학이 새로운 술을 발명하는 원동력이 됐다.
#위스키와 약술, 브랜디와 소주
그리고 이러한 증류주 문화는 동서양의 약술문화로 발전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위스키다. 위스키의 어원은 우스개바하(UISGE BEATHA)로 생명의 물이란 뜻이다. 십자군 원정에서 증류 기술을 배워온 당시 스페인의 철학자가 '신이 머무는 생명의 물'이란 이름으로 처음 불렀다고 한다. 신비로운 이름이 있는 만큼 다들 마셔보고 싶은 음료였는데 때마침 14세기에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유행하면서 위스키가 예방용 또는 치료용으로도 쓰였다. 그래서 1506년 최초의 위스키 면허가 의사조합에게 주어진다.
우리나라도 의사에게 증류주 면허를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 궁궐의 건강을 책임지는 내국, 내의원에서 술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술도 약주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러한 배경을 들 수 있다. 결국 위스키, 보드카 등 유럽의 증류주와 한국의 약주는 그 어원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소주와 같은 어원의 서양 술로는 브랜디가 있다. 대표적인 과실 증류주인 브랜디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수출하는 술의 양을 줄이려고 만들어지곤 했는데, 양으로 매기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함이었다. 발효주에서 알코올만 빼내는 만큼 지금 말로 하면 압축과 같은 개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브랜디의 어원이 네덜란드어인 '브란데바인'(brandewijn)이다. 바로 영어 식으로 표현하면 '번 와인'(Burnt Wine)이다. 그것이 세월을 거듭하여 브랜디 와인, 이후 현대에 들어서는 브랜디란 말만 쓰고 있다. 결국 브랜디를 한국말로 직역하면 소주가 된다.
#스코틀랜드와 조선 둘 다 있었던 금주령
하지만 이내 영국에서는 위스키에 대한 금주법을 내린다. 위스키 제조가 너무 많은 곡물을 사용한다고 판단, 기근을 일으킬 수 있다며 금주법을 내린다. 이러한 금주법은 1644년까지 이어지는데 이때 스코틀랜드 정부가 생각을 달리한다. 바로 이 증류주가 부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임을 안다. 바로 주세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주령이 자주 있었다. 특히 흉년이 들면 늘 금주령을 내렸는데 약으로 쓰거나 생계를 위한 자는 면제가 되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는 것. 그래서 세종실록에는 탁주를 마신 자만 잡혀가고 청주나 소주 등 고급술을 마신 자는 빠져나간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대상을 술을 통해 알 수 있다.
참고로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앙숙이라고 하지만 술에서는 다르다. 영국 위스키의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높은 곳이 프랑스이며, 1인당 프랑스의 브랜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영국 또는 그 식민지였던 미국이라고 한다.
역사와 정치에는 이념과 국가가 있지만 문화에는 없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참고로 우리나라 막걸리가 가장 잘 팔리는 곳이 일본이다. 저 멀리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돌고 돌아 소주까지 이어졌다.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술이 알려준 가장 귀중한 가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다.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