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중임 대통령제와 의회 입법권 강화 골자…여야 공감대 속 윤 대통령 임기 단축 여부 등 변수
개헌 추진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운을 뗐다. 김진표 의장은 10월 16일 국회방송에서 진행된 취임100일 특별대담에 출연해 “개헌 필요성에 대해 정부와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연말까지 개헌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의외로 개헌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했고, 제1야당의 이재명 대표가 지난번 국회에서의 연설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개헌 문제를 다뤄 나가자고 제안을 했다. 여당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중진위원회 등에서 개헌 문제를 본격 논의하자는 얘기를 해서 (개헌에 대한) 의견이 모아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진 윤 대통령과 국회 의장단 만찬 당시 윤 대통령도 개헌에 적극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장은 “(윤 대통령이) 의외로 개헌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심지어는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도 문제가 많으니까 그것도 고쳐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전반적으로 정치 현안, 민생 문제, 협력의 정치 이런 것에 큰 공감대를 이뤘다”고 언급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역시 2024년 총선과 함께 개헌을 목표로 국회에 ‘헌법개정특위’ 설치를 제안했다. 이 대표는 9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가진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헌법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다. 대통령 임기 중반인 22대 총선이 적기”라며 “개헌특위가 국민적 합의가 가능한 범위에서 개헌안을 만들고, 2024년 총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한다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87년 체제’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조속한 시일 내 국회 중진협의회가 구성될 수 있도록 의장께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이재명 대표도 마음을 열고 받아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며 “개헌과 선거법 개정, 국회 특권 내려놓기 등도 이 기구를 통해 충분히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개헌은 정치권에서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도 개헌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국회 역시 개헌 문제에 공감대는 이뤘지만, 여야의 이해관계가 갈리면서 성사되지는 못했다. 전임인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2018년 초 ‘대통령 4년 연임제·선거연령 하향·대통령 권한 분산’ 등의 내용이 담긴 정부 개헌안을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반발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김 의장은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후보 때는 다 개헌론자다. 그런데 막상 당선되면 국정운영 동력이 개헌 논의로 다 빨려 들어가 버리니까 자꾸 미룬다. 또 정권 후반부에 가면 다음 정권 탄생과 연결되는 문제다보니 또 미뤄졌다. 그래서 20여 년을 개헌 주장만 하고 결정을 못했다”며 “그러다보니 전체 국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3분의 2 정도가 개헌에 찬성하고, 특히 전문가·정치학자들이나 국회의원의 90%가 넘게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는데도 개헌이 안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김진표 의장은 헌법 전체를 고치기보다 공감대가 형성된 안에 대해 우선 합의하고 추진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김 의장은 “과거 개헌 추진이 잘 안 된 것은 개헌 관련 모든 것을 다 함께 합의해서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여야가 국민여론 등을 고려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우선 합의해서 고치자”고 설명했다. 그 개헌안으로 4년 중임 대통령제 및 대통령 권한 일부를 국회로 가져와 의회 입법권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거론했다.
또한 김 의장은 “대개 국정운영의 동력을 개헌 논의에 뺏긴다는 논리로 여당이나 대통령이 반대해왔는데, 지금처럼 여소야대 정국에, 또 취임 초인데 비정상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비전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개헌을 추진하면 오히려 국정동력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치권 안팎에서도 현 상황이 개헌 추진에 적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가 극한의 대립으로 정국이 꽉 막혀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30%대로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잇따른 의혹과 국정운영 미숙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럴 때 개헌 카드를 전면에 내세우면 지지율 반등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은 “일부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최근 탄핵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정운영을 못한다고 무능하다고 탄핵을 시킬 수는 없다. 중대한 헌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 탄핵이 쉬운 게 아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실정을 최소화할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그게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이다. 개헌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시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지율이 계속 정체되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임기 1년 단축하는 개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재명 대표 역시 대선후보 시절 자신의 임기 1년 단축을 걸고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개헌안에 임기 4년은 현행 대통령부터 적용해 기존 임기 5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중임 도전은 차기 대통령부터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돼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이 같은 개헌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 국정 행보를 보면 콘크리트 지지층 30%대에 만족하는 것 같다. 이들만 바라보고 문재인 정권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미 본인은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굳이 본인의 임기를 1년 줄여가면서 개헌을 할 이유가 없다. 윤핵관들을 앞세워 개헌 반대에 나설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어떻게 망가지든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개헌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에 달렸다는 전망이다. 앞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20~30%대에 머물고,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국민의힘 지지율 급락에 영향을 주면, 국회의원들은 차기 총선에서 본인들의 당선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럼 윤 대통령의 의중과 관계없이 개헌 발의에 동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실에서는 개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진표 의장과 국회의 개헌 논의에 반대할 수도, 반대할 이유도 없다”며 “다만 윤석열 정부는 경제 및 안보 등의 복합 위기 극복에 매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기 단축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렇게 추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면 본인의 임기를 줄일 수 있지만, 국회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는 안을 만들어 상정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안을 발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가정이 포함된 내용이라 지금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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