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폰4S 출시일인 지난 1월 13일 중국 베이징 시내의 애플 스토어 앞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신화통신/연합 |
중국인들의 소비 성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인들의 짝퉁 사랑이 식고 있다’고 말하면서 싸지만 질 나쁜 짝퉁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품질 좋은 진품을 소유하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짝퉁 왕국’으로 오명을 떨쳤던 중국에서 불고 있는 이런 변화의 바람은 특히 ‘애플’ 제품을 중심으로 쉽게 감지되고 있다. 애플은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으며, 짝퉁 제조업자들은 그동안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중국 소비자들을 유혹해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아직 애플이 공식 발표도 하지 않은 ‘아이폰5’까지 버젓이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이런 짝퉁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듯하다. 아이폰 4S 출시일이었던 지난 1월 13일, 베이징 애플 스토어 앞에서 벌어졌던 대혼란은 마치 폭동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으며, 다른 곳에서도 출시가 시작된 지 단 몇 시간 만에 전 물량이 매진되는 등 대륙의 애플 사랑을 실감케 했다. 이제 중국인들이 브랜드의 가치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지난달 베이징의 싼리툰에 위치한 애플 스토어 앞. 밤을 꼬박 새우고 기다렸던 2000여 명의 중국인들은 “안전을 위해서 매장 문을 열지 못하니 돌아가달라”는 애플 직원의 말을 듣고 격분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투덜거리면서 돌아갔지만 분이 풀리지 않은 350명가량은 매장 앞에 남아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문 열어!” “아이폰 내놔!”라고 고함을 치면서 출동한 공안들과 마찰을 빚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매장을 향해 달걀을 투척하는 등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애플 측은 “당분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아이폰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판매 보류 기간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베이징 시단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서는 문을 열자마자 한정 물량이었던 2000대가 순식간에 동이 났으며, 상하이에 위치한 애플 스토어나 공식대리점 역시 소량 입고됐던 물량이 전부 매진됐다.
이처럼 중국에서 애플 제품이 귀한 이유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그나마 있는 물건도 암시장에서 사재기를 하는 통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차례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의 ‘아이폰 광풍’의 이면에는 ‘이제 더 이상 짝퉁은 싫다’는 중국인들의 소비 심리도 한몫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상하이에 문을 열었던 명품 가구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짝퉁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다빈치’ 가구점은 ‘아르마니 까사’ ‘베르사체 홈’ 등 고급 수입가구를 전시 판매하는 쇼룸으로 주로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 매장은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얼마 전 중국공영방송인 CCTV가 ‘수입가구들 중 일부는 짝퉁’이라는 보도를 내보내면서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전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던 일부 가구들은 중국 내에서 제작된 후 해외로 수출됐거나 혹은 보세 화물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다시 중국으로 역수입된 제품들이었다. 이른바 ‘수입품’ 딱지만 붙었을 뿐 엄밀히 따지면 중국 제품이라는 것이다. 이에 상하이 당국은 가구업체에 벌금을 부과했으며, 이 보도를 접한 중국인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구매력을 갖춘 중국인들에게 더 이상 짝퉁은 인기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싼값에 비슷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짝퉁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컨설팅회사 ‘베인’에 따르면, 중국에서 짝퉁을 찾는 사람들은 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줄었으며, ‘맥켄지’는 설문조사 결과 가짜 보석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2008년 31%에서 2011년 12%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먼저 브랜드를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브랜드가 단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거나 지위를 상징하는 도구였지만 이제는 좋은 품질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지난해 여름 가짜 우유 파동을 겪으면서 더욱 확산됐다.
가령 ‘코카콜라’사의 콜라라면 적어도 독극물을 섞어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므로 기꺼이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짝퉁 시장이 죽기 시작한 또 다른 이유는 중국 고유의 브랜드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중국정부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컴퓨터 제조업체인 ‘레노보’나 가전제품 제조업체인 ‘하이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스스로 보호해야 할 고유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중국 정부가 짝퉁 시장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유에서 최근 중국 정부는 짝퉁 유통에 대한 단속을 더욱 엄격히 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까지 중국 정부 내에서 사용되고 있던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전량 폐기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짝퉁 시장은 건재하다. 아직 주머니가 얇은 젊은층이나 구매력이 낮은 서민들이 짝퉁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중국에서 판매된 전체 휴대폰 가운데 30%가량이 ‘산자이(짝퉁)’였으며,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에 따르면 2010년 중국에서 판매된 소프트웨어 다섯 개 가운데 네 개는 불법 복제품이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인테리어부터 점원까지 ‘판박이’
지난해 7월 원난성 쿤밍에 거주하던 한 미국인 블로거(BirdAbroad)가 처음 인터넷을 통해 고발한 이 애플 스토어는 겉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진짜 애플 스토어와 다를 바 없었다. 당연히 애플 직영점이겠거니 하고 들어갔던 이 미국인 역시 처음에는 감쪽같이 속았다고 말했다.
매장 밖의 커다란 사과 모양 로고나 회색빛이 도는 슬레이트 바닥, 나무로 된 테이블, 그리고 애플 로고가 박힌 푸른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직원들까지 익히 알고 있던 애플 스토어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벽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칠해져 있지 않았고, 직원들이 목에 걸고 있는 명찰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던 것.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러본 인근에 있는 다른 매장들 역시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사과 모양 로고 아래에 ‘Apple Stoer’라는 글씨를 붙여 놓은 매장은 우습게도 ‘Store’라는 철자까지 틀린 채 영업 중이었다. 사실 공식 애플 스토어에는 사과 로고만 있을 뿐 이처럼 글자로 된 간판은 없다.
처음 이런 사실을 고발한 블로거는 자신이 발견한 가짜 애플 스토어가 쿤밍에만 세 곳이 있었다며 황당해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모두 자신들이 가짜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와 관련, 이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우리들도 매장이 공식 직영점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판매되는 제품들은 모두 진품들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모든 제품들이 애플 스토어와 동일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진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공식 대리점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만일 그의 말대로 이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이 모두 진짜라면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걸까. 이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추측컨대 이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은 대부분 중국 내 다른 소매점에서 몰래 가져온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블로거가 방문했던 가짜 애플 스토어의 경우 상하이에 있는 애플 스토어의 인맥을 통해 물건을 공급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해외에서 밀수해온 제품들도 있으며, 간혹 중고제품을 속여 팔거나 심한 경우에는 짝퉁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현재 중국에 문을 연 공식 애플 직영점은 베이징과 상하이에 각각 두 곳과 세 곳, 그리고 홍콩에 한 곳 등 모두 여섯 곳이다. [영]
기막힌 애플 짝퉁 제품들
출시 안된 ‘아이폰5’가 떡하니
▲애플 스피커=애플 로고가 버젓이 새겨져 있는 USB 전용 스피커다. 애플의 대표적인 칼라인 흰색의 큐빅 모양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소 허접한 제품이다. 가격은 80위안(약 1만 4000원).
▲스마트 커버=아이패드2의 액세서리인 스마트 커버를 그대로 본떠 만든 중국산 짝퉁이다. 정품보다 6달러(약 6700원)가량 저렴한 220위안(약 4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품질은 형편없다. ‘잘 부러진다’ ‘냄새가 지독하다’ ‘아이패드에 잘 안 붙는다’ 등의 악평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폰5=아직 출시는커녕 구체적인 사양도 공개되지 않은 아이폰5가 중국에서는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아이폰4보다 얇은 7㎜의 두께를 자랑하며, 디자인은 오히려 아이폰 3G를 닮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짝퉁 아이폰5가 실제 아이폰5와 흡사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국 공장에서 유출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IT 전문 사이트인 ‘기즈모도’의 헤수스 디아즈는 직접 이 제품을 구입해서 살펴본 후 “오는 가을 무렵 출시될 아이폰5 디자인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만일 내 말이 틀리다면 몸 전체의 털을 다 밀겠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채식만 하겠다”고 장담했다.
▲애플 웹사이트=중국의 온라인 게임 회사인 ‘자이언트 네트워크’사는 최근 자사의 온라인 게임인 ‘쩡투 2’를 홍보하기 위해서 가짜 애플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진짜 애플 사이트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애플 공식 사이트와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 단,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한입 베어 먹은 사과 로고 대신 한입 베어 먹은 배 모양의 로고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이트에서 소개하고 있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패드 등은 모두 실제 판매는 되지 않고 있으며, 단지 제품 화면에 게임의 스크린샷을 합성시켜 게임을 홍보하는 용도로만 사용됐다.
▲애플 운동화=애플에서 운동화도 출시했다고 생각하면 오산. 단지 애플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일 뿐 애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성 전용이며, 가격은 32위안(약 5700원)이다.
▲아이패드2=다양한 종류의 짝퉁이 중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가령 iPed라는 제품의 경우 아이패드 패키지 포장부터 디자인까지 거의 흡사하다. 단, 애플 운영체제 대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가격은 105달러(약 12만 원).
▲에어북=애플의 맥북에어를 그대로 본떠 만든 노트북이다. 정품처럼 얇고 세련되진 않지만 언뜻 봐서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약 3000위안(약 53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