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도덕성 의혹 불구 낙점 뒷말, 친윤계 중진 개입설도…당 내부서도 재검토 목소리
정가에선 이 전 의원 선정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일부 친윤계 중진들이 ‘낙하산 인사’에 개입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은재 전 의원이 전문건설공제조합의 차기 이사장 후보로 선정됐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10월 12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공모 지원자 심사를 거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11월 1일 조합 임시총회를 열고 이사장 선임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총회에서 선임안이 통과되면 이은재 전 의원은 바로 이사장에 취임해 3년 임기를 시작한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1988년 설립된 법정단체로, 전문건설 사업자의 보증·대출·공제 등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5만 9000여 명의 조합원과 5조 5000억 원의 공제기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업무추진비를 포함해 3억 4000여 만 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사장직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이지만 그동안 운영위원회 추천을 거쳐 주로 정치권이나 국토교통부 고위직 출신들이 선임돼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1월 임기가 끝나는 유대운 현 이사장 역시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로 2017년 문재인 정부 정권교체 이후 취임했다.
이에 전문건설공제조합은 낙하산 논란을 없애고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공모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바뀐 공모 절차도 일반적 공모와 다르게 공모 이후 추천위원회·운영위원회 등 비공개 회의를 통해 내부적으로 2~3차례 후보자를 걸러 최초 공모자 중 1명만을 최종 선정해 총회에서 선정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공모 1호’ 이사장으로 여당 출신 정치인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면서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이 전 의원은 서울교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건국대와 미국 클레어몬트대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8·2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행정안전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상임위에서 활동해 전문건설업에 전문성과 거리가 멀다.
또한 이은재 전 의원이 현재 서울남부지법에서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대 국회의원 당시 이 전 의원은 본인의 보좌관 지인에게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처럼 허위서류를 작성, 국회사무처에 용역비를 신청했다. 국회사무처는 그 지인에 용역비를 지급했고 그 지인은 이 돈을 다시 이 전 의원 보좌관 계좌로 돌려줬다. 이렇게 빼돌린 예산이 1200만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3개 시민단체가 2018년 10월 이 전 의원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3년이 넘게 지난 2021년 12월 이 전 의원을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이 전 의원은 벌금형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현재 서울남부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합 임시총회 2주 뒤인 오는 11월 17일에도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당초 이사장 초빙 공고를 내면서 자격요건으로 △최고경영자로서의 리더십과 비전 제시 능력 △조합 업무분야와 관련된 지식과 경험 △조직관리 및 경영능력 △청렴성과 도덕성 등 건전한 윤리의식 △국내외 유관기관과의 대외업무 추진 능력 등을 제시했다. 이 전 의원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이 자격조건에 맞는지 의문부호가 따라 붙는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이은재 전 의원의 이사장직 선정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친윤계 중진 인사들이 이사장직 선정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해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거짓으로 내세웠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이 전 의원의 조합 이사장 선임에 부정적 입장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일부 친윤계 인사들이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속이며 밀어붙였다는 뒷말이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여권 내부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김행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10월 18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이 전 의원의 선정 관련해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오고 있고,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셔도 될 것 같다”고 여권 내부의 부정적 기류를 전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생각인가’라는 물음에 “아직 비대위원장에 안 여쭤봤다. 사실 몇몇 비대위원들끼리 얘기를 했었다”며 “그래서 11월 1일까지 지켜보자고 말한 것이다. 아직 통과된 것이 아니기에 저희한테 좀 시간을 달라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은재 전 의원은 과거 국회에서 ‘사퇴하세요’를 남발하고, 공식석상에서 ‘겐세이(끼어들기)’ ‘야지(훼방)’ 등 일본어를 사용하는 등 여러 차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전문성도 없는데 고액 연봉을 받는 조합 이사장직에 선임돼 ‘낙하산 인사’ 논란이 더 시끄러운 것 같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온 만큼 이 전 의원 사안이 도덕성에 치명상을 주고,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이에 몇몇 비대위원들은 윤 대통령에 공식적으로 선임 철회 방안을 전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나 여당이 공식적으로 이사장 선임에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합의 운영위원회의 경우 정부가 추천한 전문직 운영위원 9명과 국토부와 기재부 국장급 당연직 위원 2명이 포함된다. 이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이 전 의원을 후보자로 선임한 것”이라며 “반면, 임시총회에 참석하는 대의원은 모두 조합원이다. 조합원들이 (운영위의) 선임안을 표결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조합총회 의결에 영향을 미치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부여당 안팎에선 이 전 의원의 자진사퇴 형식을 취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 만큼 임시총회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문건설공제조합 관계자는 “과거에도 조합 총회에서 이사장 선임이 부결된 경우가 있긴 했다”면서도 “총회 당일 대의원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조합에서 전망하긴 부적절하다”고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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