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 후 정홍원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지난 1일 오후 국회 민주통합당 당대표실에서 강철규 신임 공천심사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는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특별한 인연이 없는 두 사람. 원칙대로 갈까 박근혜 뜻대로 갈까. |
정홍원 위원장은 의외의 카드다. 박근혜 식 철통보안으로 그의 인사카드는 그 누구에게도 노출되지 않았다. 그가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공추위)의 수장에 임명되자마자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그의 ‘정체’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그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바지사장’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정 위원장이 박 위원장과 오랫동안 친분이 깊은 한 친박 성향 원로 법조인의 추천을 통해 공추위에 입성했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정 위원장의 내공과 이력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결코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정 위원장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들만을 따라가 보면 그가 이번 공천 심사에서 호락호락하게 박근혜 위원장의 ‘오더’를 받아들일지 의구심이 든다. 정 위원장은 과거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사건, 수서 비리사건 등을 처리한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장관급)을 지냈다. 특히 지난 1997년 서울지검 특별범죄수사본부 시절, 의정부지원 판사비리 관련 변호사들로부터 수백만 원을 받는 등 금품 및 향응을 제공받은 판사 15명에 대해 대법원에 명단을 통보해 중징계를 요청한 바 있다. 각종 인맥으로 똘똘 뭉친 법조계에서 판사 15명의 징계를 요청한 것은 그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뚝심 있는 수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점 때문에 정 위원장은 법조계 내부에서 공사생활의 구분이 엄격한 청백리 공무원형으로 알려졌다. 동기생 가운데 가장 먼저 검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명박 정권 출범 때 초대 국정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린 것도 공사를 구분한 엄격한 처신과 뛰어난 사정감각이 두루 평가받았기 때문이었다. 검찰에선 후배들이 그를 두고 “회의 때 부하 검사가 눈을 못 마주칠 정도로 엄한 선배”라는 평을 할 정도로 엄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검찰 재직 시 윗사람에게도 고분고분하지 않아 상층부에서도 다루기 힘든 후배로 각인되고 있다. “고리타분할 정도로 깐깐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그와 1990년대 초반 같이 근무했던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는 원칙의 화신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정 위원장을 두고 ‘바지사장’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하는데 나는 그 반대로 본다. 박 위원장이 정 위원장을 뽑은 것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이 근무할 때 정 위원장은 상층부와 마찰이 많은 검사였다. 위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면 아예 보고도 하지 않고 밀어붙였다가 막판에 ‘구속 안 시키면 옷을 벗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며 상층부 압력을 피해나갔다. 위에선 당연히 ‘꼴통’이라고 하지 않았겠느냐. 이번 공천도 박 위원장의 의중과는 완전히 따로 놀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실수한 것일 수도 있겠다”라고 말했다.
정홍원 카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은 지난 18대 총선 때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을 공천심사위원장에 앉혀 대쪽검사 출신의 객관적 공천을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최악의 친박계 공천살상으로 끝났다. 대쪽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오너’의 장벽과 정당의 구조적 계파안배 공천 관행이 뿌리 뽑히지 않는 이상 ‘포청천 식 공천’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 위원장은 정치경력이 전무한 편이다. 정당의 공천작업은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복마전이라는 점에서 그 차원이 다르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이 정치현실에는 거의 문외한인데 현실정치의 총화인 공천 작업을 지휘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정치 현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결국 결론은 박근혜 위원장의 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정 위원장도 결국 법조계 검사 출신이라는 한계가 공천 과정에서 노정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18대에서 법조인 출신인 안강민 공심위원장은 공천 심사에서 법조인 출신 공천자를 56명 뽑았는데 민주당(16명)의 3배가 넘었다. 이런 상황이 올해도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은 이번 공추위원 선정에서 정홍원 위원장을 비롯해 법조계 인사들을 주로 채웠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의 권위적이고 엘리트 중심주의 인사 스타일을 꼬집기도 한다. 또 정 위원장이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서 온갖 부정비리 의혹사건을 처리하면서 생긴 ‘범죄인을 추려내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그것이 정치 지도자를 선발하는 데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이미지가 강고한 원칙주의라고 해서 공천도 꼭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정 위원장을 비롯한 법조계 출신 중심의 공추위 구성은 기득권층만을 대변한다는 새누리당의 한계를 또 다시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했다.
▲ 친분이 깊은 두 사람. 어정쩡한 개혁에 그칠 우려가 제기된다. |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의 정홍원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 인선을 보고 하루 뒤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 카드로 맞대응을 했다. ‘저쪽’의 총선 공천 전략을 지켜본 뒤 그에 맞는 맞춤카드를 택했던 것이 강철규 위원장이다. 새누리당이 법조계 출신 위원장을 선임하자 민주당은 외부인사 중 검사 출신은 배제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강철규 위원장이 처음부터 1순위로 거론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지난 18대 총선 공천 때 민주당은 대한변협 회장 출신인 박재승 변호사를 야심차게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밀어 올렸다. 하지만 원칙과 법을 앞세운 박 위원장이 일체의 융통성 없이 그 잣대에만 맞춰 칼날 공천을 하면서 국민들의 시원한 박수는 받았지만 당에는 만만찮은 계파 갈등의 후유증을 남겼다.
이런 점에서 강 위원장 인선은 원칙론자라는 점에서는 박 전 위원장과 공통점이 있지만 전임이 법과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해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정무형 인사’로 발탁됐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실제로 강 위원장은 새누리당 정홍원 위원장처럼 비 정치권 출신이긴 하지만 여의도 정치의 생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공직활동(부패방지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을 한 경력이 이번 인선에도 작용했다.
정치적으로도 강 위원장 카드는 한명숙 대표에게 매력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친노그룹 대표라는 딱지가 붙어 민주계의 만만찮은 저항을 불러올 시점에서 한 대표는 ‘옛 민주당 사람’인 강철규 위원장을 공천수장으로 밀었다. 일종의 이이제이 전략인 셈이다. 강 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옛 민주계 인사들과도 친분이 깊다는 점에서 공천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임자였던 셈이다. 중립지역인 충남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여기에 강 위원장과 한명숙 대표의 ‘개인적 인연’까지 더해졌다. 강 위원장은 한 대표의 부군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의 서울대 상대 후배로서 한 대표가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할 때 자문그룹 멤버로서 도와준 인연이 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에서 한 대표는 환경부 장관, 강 위원장은 부패방지위원장이었고 참여정부에서도 한 대표가 총리, 강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하며 호흡을 맞추는 등 가까운 사이로 지내온 것도 이번 인선의 배경이 됐다.
새누리당 정홍원 위원장이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별다른 인연이 없어 공천 과정에서 자칫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반면, 강 위원장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한명숙 대표와 충분한 조율을 거쳐 공천을 할 공간이 커진 셈이다. 이는 두 사람 간의 친분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 대표가 안고 있는 민주당 내의 역학관계를 고려한 고육지책의 성격도 짙다. 현재 민주당 내에는 옛 민주당계 의원들과 시민단체, 친노그룹, 한국노총 등 다양한 세력이 함께하고 있다. 외부 인사는 몰라도 내부 인사에 대한 계파 안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강 위원장이 ‘친한 누이’(45, 44년생으로 한 살 차이)와 찰떡궁합을 이뤄 안정적인 공천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내에서는 강 위원장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 일각에서는 “중진 의원도 잘라낼 수 있는 깐깐한 원칙주의자”라며 긴장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부패방지위원장 시절 그는 검찰이 행사할 수 있는 ‘피의자 조사권’을 요구했을 정도로 소신과 뚝심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그에 대해 “정치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 우리도 성향을 잘 모른다. 그래도 그의 밑에서 공직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깔끔한 선비’라고 말하더라. 로비가 전혀 통하지 않고 후배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워 믿고 따르는 부하직원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천도 기대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 위원장에게도 약점은 있다. 먼저 한명숙 대표와 친분이 너무 깊어 자칫 강철규 공천의 색깔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의 친분관계가 오히려 공천의 독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독단적’ 리더십 논란마저 일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정홍원 위원장을 두고 ‘박근혜의 바지사장’ 논란이 일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주당 강철규 위원장이 한 대표의 바지사장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강 위원장 인선 초반만 해도 두 사람의 친분 관계 때문에 공천작업이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맞춰온 호흡으로 공천작업을 조율하며 순탄하게 이끌 수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개혁공천을 후퇴시키고 계파 간 나눠먹기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차라리 새누리당 경우처럼 오너와 고용사장이 서로 잘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이 옛 민주당 정권에서 공직생활을 한 것도 공천작업에서 태생적 한계를 노정할 수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계파 간 갈등의 완충작용을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발목 잡혀 어정쩡한 개혁공천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공천만 놓고 볼 때 여야 두 검객의 진검 승부는 새누리당이 우위를 보일 수도 있다. 새누리당은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박근혜 위원장이 쇄신의 칼을 ‘혼자’ 휘두르고 있다. 일부의 견제도 있고 방향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어쨌든 억지로라도 자신의 뜻대로 끌고 가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을 보면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보여준 계파 간 나눠먹기로 안주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라고 전제하면서 “한 대표가 강철규 위원장을 내세워 개혁공천을 하려 하지만 ‘지분협상’의 틀에 갇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강 위원장 또한 한 대표의 그런 한계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쪽으로 공천작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공천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강철규 위원장은 원칙과 재벌개혁의 아이콘이다. 여기에다 여의도 현실정치에도 비교적 밝은 편이다. 그런데 이런 ‘하이브리드 정무형’이 민주당의 계파 간 공천지분 나눠먹기에 가장 적임자라는 역설적 평가가 민주당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